(변방통신4)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는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 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가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1996년) ===문정희
올 겨울은 정말 유난스런 한 해 인 것 같습니다.
춥기도 추웠고, 지난주에는 동해안에 100㎝가 넘는 눈 폭탄으로 피해가 속출했으니...
그런 와중에 TV로 1박2일 설악산 종주편을 보면서 한계령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너무 한가한 생각인가요.
하지만 한계령에서 중청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내설악의 절경. 생각만 해도 마음 설레게 하네요.
‘한계령을 위한 연가’. 2008년도 카드분사장 시절, 카드업무에 한번 푹 빠져 보자고
직원들에게 메일로 보냈던 시입니다.
저의 안해는 내 블로그에 올려 논 이 시를 보고 '어 이 사람'하고 잠시 오해를 했다고 합니다.
평범한 것은 두려울 수가 없으며, 황홀해질 수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가슴 설레게 하는 한계에 도전.
거기에 빠지면 세상이, 인생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것입니다.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에 폭 빠진다는 것은 정말 엔돌핀이 솟는 일입니다.
<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