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속으로] 우릴 짓누르는 유교적 가치, 충과 효 포맷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5.04.04 00:41 / 수정 2015.04.04 00:50‘니체 전문가’ 이진우 포스텍 교수
니체가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기독교 천년 세상 무너뜨렸듯이
‘정신적 샤워’ 해야 새 공동체 창조
이진우 교수는 “니체는 습관을 깨라고 했다. 자신이 익숙한 것에 대해 물음표를 치라고 했다. 그럴 때 우리는 항구를 떠날 수 있다. 바다를 가르며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양의 중세는 철저하게 ‘신(神)의 시대’였다. 모든 삶이 신에게 맞춰져 있었다. 신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그 끝자락에서 스피노자(1632~1677)는 ‘아모르 데이(Amor dei)’라고 피력했다. 희랍어로 ‘신을 사랑하라’(또는 신의 사랑)는 뜻이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서양 사회를 지배하던 절대적 가치에 맞서 “신은 죽었다!”고 외쳤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대를 관통하던 절대 가치를 향해 붕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아모르 데이’의 반대편에서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주창했다. 뜻은 파격적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지난달 26~27일, 이틀에 걸쳐 서울에 올라온 이진우(59·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독일에서 수학한 ‘니체 전문가’다. 요즘은 국내 인문학계에서 니체의 깃발을 올리고 있다. 이 교수에게 물었다. 신이 죽은 자리, 거기에 과연 무엇이 있는가.
- ‘신은 죽었다!’. 강렬한 선언이다. 무슨 뜻인가.
- 컴퓨터 포맷 같은 것인가.
“강력한 포맷이다. 포맷을 해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 수 있다.”
- 강력한 포맷을 한 자리에 무엇이 남았나.
“절망과 허무다. 절대적 가치가 무너졌으니까.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유럽에는 허무주의가 팽배했다. 그런데 니체는 허무와 절망의 밑바닥까지 닿으라고 했다. 거기가 끝은 아니었다.”
- 끝이 아니라면.
“절대적 가치, 거대한 담론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간이 지나자 뭔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건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의 중심을 창조해야 한다는 움직임이었다.”
이 교수는 절대가치가 무너진 후의 절망과 허무를 ‘창조적 절망’ ‘창조적 허무’라고 불렀다.
- 2015년 한국 사회에도 니체가 필요하지 않나. 우리에게 ‘죽어야 할 신’은 무엇인가.
“나는 ‘유가(儒家)적 가치’라고 본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충(忠)과 효(孝)다.”
- 충과 효는 우리 사회의 상식이다. 그 가치를 부정하나.
“그게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라. ‘국가에 충성해라, 부모님께 감사하라’고 하면 젊은이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왜 그럴까. 스스로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국가에 충성하는지, 왜 효도를 하는지. 진지하게 물음을 던져본 적이 없는 거다.”
- 그런 과정이 왜 빠졌나.
“강요됐으니까. 기독교적 가치가 니체를 짓눌렀듯이 유교적 가치가 우리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한 번 죽어야 한다. 철저한 개인주의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이 시대와 호흡하는 젊은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신(新)유교적 가치,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다. 21세기에 가능하고 바람직한 효의 방식을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정신적 샤워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대학 1학년 때의 경험담을 꺼냈다. 그는 74학번이다. 독문과를 다녔다. 하루는 3학년 과 대표가 몽둥이를 들고 왔다. ‘독문과가 잘 안 돌아간다’며 차례대로 엉덩이를 때렸다. 그는 강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거기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절대 가치가 깔려 있었다. 40년이 지난 요즘은 어떤가. 회사에 들어가면 먼저 묻는 게 ‘몇 살이냐’‘몇 학번이냐’다. 한 살이라도 많으면 ‘어, 내 후배네. 반말해도 되겠지?’라고 한다. 유가 초기만 해도 위로 십 년, 아래로 십 년은 친구였다.”
- 니체에겐 기독교적 가치, 우리에겐 유가적 가치. 그런 절대적 가치가 무너진 곳. 어찌 보면 텅 빈 무대다. 니체는 거기서 무엇을 하라고 했나.
“춤을 추라고 했다.”
- 춤이라니. 무슨 춤을 추라는 건가.
“춤은 그냥 추어지지 않는다. 땅이 계속 우리를 끌어당기니까. 중력을 거스를 때 비로소 춤을 출 수 있다. 니체는 중력을 거슬러 허공으로 뛰어오르라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춤을 추라. 그런 춤꾼이 되라고 했다.”
- 춤이 곧 삶인가.
“그렇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자만이 춤을 출 수 있다.”
니체는 그걸 니체식으로 표현했다. ‘위험하게 살아라.’ 익숙함과의 이별이자 낯섦과의 만남이다.
- 위험하게 살려면.
“사람들은 저마다 찾고 싶은 섬이 있다. 그걸 찾으려면 항구에서 떠나야 한다. 익숙한 항구와 헤어져야 한다. 떠남이 없다면 섬도 없다.”
이 교수는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떠남이 있다고 했다. 미국 시애틀,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바람이 일고 있는 ‘슬로 리딩(Slow reading)’을 예로 들었다.
“‘슬로 리딩’은 독서 클럽이다. 정해진 시간에 카페에 간다. 음악도 안 나온다. 토론도 없다. 인터넷도 끄고, 휴대전화도 끈다.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그저 자신이 가져간 책을 읽고 돌아온다. 나는 그게 항구를 떠날 때 만나는 바다라고 본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카페에서 5분 이상 멍 때려도 괜찮다.”
- 멍 때리다 보면.
“우리 몸은 참 재미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사유(思惟)를 하게 된다. ‘Scholar(학자)’는 희랍어로 ‘Schole(여유)’라는 말에서 나왔다. 좋아하는 대상을 오랫동안 머물러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다.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이 보고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게 사유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탁 트인 자유로운 곳에서 산책하다 불현듯 떠오르는 사상이 진짜 사상이다.” 그럴 때 여유는 바다가 되고, 섬을 찾는 통로가 된다. 여유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이 교수는 “하루에 한 시간, 일주일에 하루라도 그런 여유를 가져야 한다. 니체는 삶(Life itself)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의미(The meaning of life)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삶 자체만 강조하면 생존이 되고 만다”고 설명했다.
- 먹고살 게 있어야 사유도 하지 않나.
“그건 맞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들도 생존만 위해 사는 이가 많다.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생존이 우리 삶의 1순위가 돼 버렸다. 요즘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생존이 우리 사회의 1순위로 굳어졌다. 그래서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 무엇을 놓치나.
“잘 사는 것. 정말 잘 사는 것. 그걸 놓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건 삶의 의미를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의 문제다.”
이 말 끝에 이 교수는 삶에 대한 니체의 정의를 읊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삶이다.” 이 교수는 그게 ‘삶에 대한 독점’이라고 했다.
- 독점이 무슨 뜻인가.
“여기서는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이 세상, 이거 내 거야. 내가 가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야. 내가 주인이야. 이거다. 삶의 의미를 찾아갈 때 비로소 자기 삶을 독점하게 된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네 삶의 독점자가 돼라! 자기 삶의 의미를 독점하라!’”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진우는 …
1956년생. 연세대 독문과 졸업.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석·박사 학위. 40대에 계명대 총장을 지냈다. 한국 니체학회 회장과 포스텍 인문기술융합연구소장을 거쳤다.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 저서로 『테크노인문학』 『중간에 서야 좌우가 보인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등.
[S BOX] “신은 죽었다는 말은 허무주의 아닌 삶에 대한 무한긍정”
이진우 교수는 “니체만큼 오해를 많이 받는 철학자도 드물다”고 했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가 아니라 삶에 대한 무한긍정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니체만큼 절망적인 삶을 산 사람도 없다. 그런데 니체만큼 삶을 긍정한 철학자도 없다.” 니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루터교 목사였고, 어머니는 목사의 딸이었다. 니체는 24세에 바젤대 교수가 됐으나 학교를 그만두면서 투병 속에 고독하게 살았다. 마지막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다음은 니체에 대한 이 교수의 추천서 세 권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정동호 옮김, 책세상)=현대 철학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책. 신이 죽은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시적인 언어로 생동감 있게 풀어놓는다.
◆좋은 유럽인 니체(데이비드 패럴 크렐·도널드 L 베이츠 지음, 박우정 옮김, 글항아리)=‘환경과 기후, 지형이 한 사람의 삶과 사상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에서 니체 사상의 여정을 회화적 전기의 형식으로 파헤친다.
◆이 사람을 보라(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승영 옮김, 책세상)=니체가 광기로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쓴 책이다. 자신의 삶과 사상을 되돌아본 자서전. 전통과 도덕에 대한 광기 어린 저항과 혁명의 기운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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