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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찬란하고 위대했던 신라, 경주 탐방

           

찬란하고 위대했던 신라, 경주 탐방

 

 

지난 3월 백제 도읍지 공주와 부여 방문에 이어 12일 경주 탐방여행에 나섰다.

경주는 수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고, 또한 주변에 보고 싶은 명승지가 많아 두 차례로 나눠 답사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월성, 동궁과 월지, 대능원, 경주 남산 그리고 경주박물관 등 경주 중심지에서 가까운 유적지를 답사하고, 가을에는 불국사, 석굴암, 감은사 그리고 양동마을 등을 답사할 계획이다. 탐방대상 선정, 일정짜기는 물론 해설까지 동기인 동국대 김봉건 교수가 전적으로 맡았다.

 

서울에서 각자 편한대로 KTXSRT를 타고 오전 10시가 좀 지나서 신경주 역에 내렸다.

중부 지방은 비가 오고, 남부 지방도 간간히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에 걱정이 됐었는데,

경주는 비온 뒤라 오히려 더 없이 화창하고 하늘은 맑고 파랬다.

 

맨 먼저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장군을 알현하고 쪽샘유적지로 갔다. 쪽샘유적지는 대능원 길 건너편에 있는 고분군으로 2007년부터 지표 조사, 2014년부터 정밀 학술발굴을 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44호분은 발굴후 돔 건물을 지어 발굴과정을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고 있다. 신라고분은 대부분 시신과 부장품을 넣은 목곽을 안치하고 돌을 쌓고 흙으로 덮는 적석목곽분이다. 이러한 형태 덕분에 도굴의 피해를 적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고구려나 백제는 돌을 쌓아 만든 적석분이 많다.

 

다음 목적지는 첨성대. 높은 건물이 없어 툭 트인 경주역사유적지구에서 단연 돋보였다. 몇 번의 지진에도, 625전쟁 때 옆으로 전차가 지나갔어도 끄떡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문대 역할을 했다는 주장에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 당시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었을 것이며, 경주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자부심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대능원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봉분의 능선이 참 아름다웠다. 이렇게 멋진 문화유적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해졌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경주에 대한 기억은 20여년 전 우리애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가 마지막이다.

 

점심을 먹고 남산으로 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산은 산자체가 노천박물관이며 신라시대 경주사람들에게는 불국정토였다. 먼저 삼릉으로 갔다. 삼릉은 박씨왕릉으로 꾸불꾸불 소나무가 이색적이다. 曲卽全.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 경주 지역 소나무는 좀 특이하게 못 생기고 굽었다. 화강암 척박한 땅에서 뒤틀리게 자란 이곳 소나무를 안강형이라 한다. 신라의 전성기 때 곧은 소나무는 집짓는 목재로 베어 쓰고 못생긴 나무만 남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삼릉 계곡에는 곳곳에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신라인들의 불심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느끼게 했다. 신라사람들은 어떤 소망을 갖고 불탑을 새기고, 기도를 하였을까? 신라의 영광을 천세만세 이어달라는 소망? 아니면 현세는 고통스럽지만 내세에는 극락세계에 가게 해달라는 소망?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제일 큰 수박 3통을 사서 신라왕궁터인 ()월성 발굴현장으로 갔다. 김 교수가 소장으로 있었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직접 발굴하고 있는 현장이다. 퇴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도 발굴은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직원이 직접 나와 친절하게 발굴현장을 설명했다. 일행중에서 왜 신라가 망했는가?” 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한 해설자의 말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잦은 왕권다툼과 권력층의 부패가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밤에 보는 동궁과 월지, 월정교는 화려했다.

월성이 좁아 동궁을 지었고, 연회장으로 월지를 만들었다. 폐허가된 황성옛터, 월지에 기러기만 날아 들어 한 때 안압지라고 불렸었다. 월지에서는 수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 14면체 酒令具가 이채로웠다. 三盞一去 . 술석잔 한번에 마시기. 혹시 後來者三杯가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은 아닐까?

 

신라는 금관의 나라였다. 세계 금관유물 14개 중 6개가 신라 경주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유독 금관이 신라 왕릉에서만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뭘까? 황룡사 용마루에 얹었던 거대한 치미에 새겨진 사람 얼굴과 토우 모습은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다른 왜 낯선 얼굴일까? 월성, 월지, 월정교 등 유적지 이름에 자가 왜 많이 들어갔을까? 경주문화답사에서 많은 것을 보고 알았지만 새로운 궁금증도 생겨났다.

 

천년 신라의 왕궁터인 경주. 우리역사의 비밀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참으로 소중한 곳이다. 반경 2Km이내에 왕궁, 왕릉, 왕사, 박물관이 모여 있는 곳은 경주밖에 없을 것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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