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방통신

[스크랩] 설악에서 동윤이를 바라보다

동윤아 잘있었나?

 

네가 저 너머 먼 곳으로 간, 530일 난 친구들과 함께 설악산을 타고 있었다.

마땅히 길 떠나는 너를 마중했어야 하는데,

마음 한 편에 슬픔과 미안함 그리고 두려움마저 느끼면서 학대하듯이 산을 탔다.

 

네가 화요일 급히 갔으니 난, 어쩌면 너를 제일 마지막에 본 친구인지도 모르겠구나.

일요일과 월요일 속초에서 재미있게 골프를 치고,

2시간 반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7시간이나 자동차를 운전해 덕소에 와서

만두와 칡냉면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종탁이 부부를 보내고,

일산으로 돌아와 마중 나온 네 집사람차로 집으로 간 시간이 거의 저녁 9시경이었던 것 같다.

 

그날 고속도로가 막혀 강촌에서 지방도로로 들어선 것을 후회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랑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라는 선물이었던 것 같다.

 

이번 산행에는 김순종, 문철, 진병준, 유상섭, 윤한철 5명이 했다.

최헌종은 전날 저녁에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해 막판에 포기했다.

 

설악산 한 번 가자는 몇몇 친구들의 요청에 의해 산행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대피소 예약이 안돼 포기하려 했는데,

불자인 헌종이가 봉정암 기도가는 신자들 차량을 어렵게 예약해 가게 되었다.

 

10시경 백담사에 도착해 이른 점심 공양을 하고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으로 향했다.

바로 봉정암으로 가는 것보다 1시간 반이 더 걸리는 길이지만 왠지 가고 싶었다.

 

흐렸던 하늘에서 비가 간간히 내리기 시작했다.

그 시간 먼 길 떠나는 너의 마음이 빗방울을 통해 전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졸업 후 2001년 진주에서 처음 너를 만났지.

그땐 그저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 후 창원에서 다시 만나 아주 가끔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내 집에서 같이 자기도 했었지.

그리고 산을 좋아하고 골프를 즐긴 너와는 가끔 산에서 골프장에서 만났었지.

 

 

 

 

 

그리고 내가 퇴직 후 전혀 연고가 없는 일산농협에 재 취업하게 되면서

너와 같은 동네에 살게 되었고,

동기들 터키 여행 때 부부가 같이 만나 추억을 쌓았었지.

 

 

터키에서의 아름다운 추억 기억나나.

이스탄불, 샤프란볼루, 앙카라,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에페소.

 

 

 

 

79일 동안 문화유산에 감탄하고

자연경관에 빠지고 밤늦게 까지 술 한잔 하면서 우정과 추억을 쌓았었지.

 

 

너희 부부가 다정하게 로즈밸리 언덕에서 찍은 사진.

우치히사르 계곡 동굴집 사서 별장하자고 했던 말....

 

 

 

 

 

 

 

 

 

오세암을 지나고 가야동계곡을 거쳐

봉정암으로 가는 길은 수렴동 계곡으로 가는 길보다 좀 험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물고 숲이 울창해

이 길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없이 맑은 공기, 신록이 짙어가는 숲, 기분 좋은 청량감이 느껴졌다.

 

 

 

 

좋다!”

 

정신이 맑아지고 온 몸 세포가 기쁨으로 깨어나는 것 같았다.

너와 이 길을 같이 걸었더라면 더 좋았을 터인데∼∼

먼 길, 낮선 길, 너 혼자 떠나는 길이 얼마나 외로울까?

이 좋은 길도 나 혼자라면 전혀 다른 느낌,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동행하니 외롭지 않고 힘들지 않고 기쁨이 두배, 세배 되는 것 같았다.

 

봉정암에 올라오니 벌써 저녁 공양시간이었다. 예배하려 온 신자,

우리 같이 등산 온 사이비 신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스텐 그릇 하나에 밥 담고, 미역국 붓고, 오이김치 네토막 넣은 것이 전부.

그래도 맛있게 다 해 치웠다.

그리고 또 소청으로 향했다. 일몰을 보기위해서.

 

봉정암에서 소청까지 약 1km는 정말 가파르고 힘든 길이지만 가기 싫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꼭 가야하는, 꼭 해야하는, 아니 뭔가에 이끌러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흐리고 간간히 비 뿌렸던 날씨는 쾌청해졌다.

하늘엔 별들이 송송 나타났고, 서쪽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일몰을 보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드디어 일몰.

 

슬프도록 장엄하게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다.

 

정신없이 그 장면을 찍고

뒤를 돌아보니 숨 막히는 장면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너어들 거서 뭐하노

 

두 그루 고사목 위에서

상현달이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걸고 있었다.

 

반갑다. 동윤아.”

 

, 내 곁에 동윤이가 있구나.

난 지금 동윤이하고 동행을 하고 있구나.

 

 

 

 봉정암으로 내려왔다.

숙소는 한 사람이 겨우 새우잠을 잘 수 있을 정도 뿐, 불편도 했지만 뒤척뒤척 잠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3시 반 다시 대청봉을 향해 떠났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위암 수술을 한 문철이는 제때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남아 아침 공양을 한 후

우리 주먹밥을 받아 오기로 하고,

넷은 랜턴을 켜고 새벽공기를 가르며 숨가프게 산을 올랐다.

 

소청을 지나 중청 내리막길에 들어서니 아침해가 올랐다.

아쉽게도 구름이 바다위에 걸려 제대로된 일출은 볼 수 없었다.

드디어 대청봉. 병준이와 상섭이는 대청봉이 처음이란다. 오랜 소원 성취.

 

앞으로 산행은 지금까지보다 더 힘든 코스.

순종이와 문철이는 공룡능선을 꼭 넘어야 한다고 하고,

병준이와 상섭이는 대청봉을 꼭 올라야 한다고 하니,

누구편을 들 수 없어 대청봉도 오르고 공룡능선도 넘는 것으로 했다.

좀 무리한 코스였지만 왠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너도 알겠지만 공룡능선은 우리나라 가장 어려운 등산코스 중 하나.

마치 롤러코스트처럼 생겨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다섯 번이나 반복한다.

그런데 날씨는 최고였다.

혹시 네가 신통력을 발휘한 것은 아닌가?

 

평소 산행을 자주 하는 순종이와 문철이와는 달리 병준이와 상섭이는 기진맥진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야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지나온 길보다 짧았으니.

1275봉을 넘고, 마등령을 넘고, 비선대 내리막길을 내려 서니 체력 방전.

특히 오랜만에 등산하는 상섭이는 체력소모가 심각했다.

 

 

5월 설악은 1년중 가장 좋은 것 같다.

가파른 능선길에 올라서면

수수꽃다리(라일락) 향기가 피곤을

앗아가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더덕향기가 힘을 보태준다.

 

순백의 함박꽃(산목련)아름답고,

예쁘고, 청초하고, 사랑스럽고.....

너도 이 꽃을 참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비선대까지 내려왔다.

다리에 힘이 빠져 혹시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됐는데 참 고맙게도 탈없이 12일을 잘 마쳤다.

이틀에 걸쳐 28.1km를 걸었다.

 

 

삼일째 아침은 헌종이가 예약해 놓은 콘도에서 맞았다.

 

 

무심코 커텐을 걷으니

아침해가 바다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중청에서 제대로 못 본 해,

콘도에서 창문을 통해 보게 됐다.

 

문철이가 맨발로 해변을 걷자고 해

나왔더니 산에서와는 또다른 느낌,

생쾌한 아침.

 

맨발로 백사장을 걷고 파도를 맞으니

꼭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

 

 

아침 바다는 조용하고, 맑고, 끝이 없고, 말이 없었다.

 

 

마지막, 삼일째 어떻게 하지. 해파랑길을 걸어 속초로 들어갈까.

아침은 어디서 먹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어제 저녁 우리를 태워준 택시 기사가 소개한

속초 학사평 초원순두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생각키로 했다.

 

그런데 아침을 먹는 중 불현 듯 화암사에 가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차로는 몇 번 가봤지만 걸어서는 처음, 그래도 전혀 망설여짐이 없었다.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위엄스럽게 보이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면서,

길 양옆으로 노오란 데이지 꽃 환영을 받으면서 화암사로 갔다.

 

화암사는 동해바다와 속초시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좋은 곳이기도 하고,

스토리가 있는 절이다.

 

대웅전 맞은편에 있는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고,

화암사 뒷산은 금강산 12천봉 첫 봉이며 화암사는 89천 암자 중 첫 암자란다.

 

 

동윤아 네가 먼 길 가기 바로 전전날과 전날 골프를 함께 친 한화프라자 골프장도

여기서 십리 거리에 있다.

 

 

 

 

 

첫날은 창규 상용 너와 나 넷이서 치고,

둘째날은 종탁이 부인, 상용이 부인 너, 나 넷이서 우탄과 좌탄으로

편을 나눠 참 재미있게 라운딩했었지.

돈은 네가 거의 다 따고 스코어는 내가 쪼금 나았었지.

 

 

동윤아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너와의 추억은 오랜시간이 지나도 진주처럼 빛나고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젠 너와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다.

 

 

 

 

좋은 사람 많이 사귀고,, 그리고 반갑게 다시 만나자.

 

안녕.

 

 

 

 

 

 

 

 

 

 

 

 

출처 : 부산고27
글쓴이 : 윤한철 원글보기
메모 :

'변방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방에서 - 백석  (0) 2018.08.12
신라의 3국통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0) 2018.07.30
변방통신 인사말  (0) 2013.08.21
(변방통신16호) 글이 아니고 길입니다  (0) 2013.08.21
(변방통신15호)일탈의 즐거움  (0) 2013.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