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7일부터 14일까지 키르기스스탄 텐산산맥 6박 8일 트레킹에 다녀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었던 해외여행이 풀리자 혜초여행사가 기획한 텐산산맥 트레킹여행 첫 번째 팀으로 참여했다. 총 17명이 참여했는데, 나는 고등학교 친구 1명 그리고 초등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참여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서 환승하여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항에 현지 시간 오후 10시 30분에 도착했다. 환승시간 포함 총 7시간 30분이 걸렸다.
비슈케크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이다. 버드나무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군데군데 서있는 미루나무를 보니 옛날 고향 농촌 풍경이 떠올랐다. 도시를 벗어나자 황량한 풍경이 나타났다. 산에는 나무 한그루 없었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번갈아 4시간을 달려 바칸바예바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스카스카 협곡으로 갔다. 오랜 풍화와 침식으로 만들어진 붉은 황토산은 거짓말 같은, 동화 같은 풍경이었다. 아주 오래전 지각변동으로 바다가 융기하여 생성된 곳이라 했다. 황토를 조금 떼어 혀에 대어 보니 진짜 짠맛이 났다.
늦은 오후에 알틴아라샨 관문 카라콜에 도착했다.
길거리 과일가게에서 100 솜(80 솜/1$) 을 주고 체리와 토마토를 샀더니 일행 4명이 며칠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다음날, 카라콜에서 알틴아라샨까지 14km 걸어서 올라갔다. 이곳은 길이 험해 일반차량은 다닐 수 없고 산악차량만이 다닐 수 있었다. 우리처럼 걸어서 가는 사람보다 산악 차량을 타고 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리도 내려올 때는 산악차량을 타고 왔다. 도중에 캠핑을 하는 외국인을 만나기도 했고, 우리나라 코이카에서 세운 실크로드 안내판을 만나기도 했다.
한가하게 풀을 뜯는 소들 그리고 키르기스스탄 유목민들의 집 유르트. 그림 같은 풍경 알틴아라샨에 오후 느지막 무렵 도착했다.
숙소를 배정받고 벽만 있는 노천 온천에 들어갔다. 공기는 차갑고, 온천수는 뜨거웠다. 온몸에 노천온천의 짜릿함이 전해져 왔다. 노천 온천의 묘미에 푹 빠져 들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흰 구름마저 한가로웠다. 별유천지가 따로 없었다. 알틴아라샨은 황금온천이란 뜻이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통신도 안 터지는 곳이었다.
아침 6시, 아라콜패스를 향해 기분 좋게 출발했다.
해발 2,600M인 알틴아라샨에서 3,900M까지 고도 1,300M를 올라가야 했다. 거리는 편도 9.5km, 왕복 19km. 예상 소요 시간은 약 12시간이었다.
개울을 건너고, 야생화와 눈 맞춤을 하고, 잘 훈련받은 독일경비병 같은 독일가문비나무 숲을 지나고......
지난겨울 늑대에게 잡혀 먹히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말 사체도 만났다. 심하게 뒤틀린 바위를 만나기도 했다. 이곳은 격렬한 지각운동의 결과 생긴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얼마나 격렬했던지 퇴적편마암이 뜨거운 열과 강력한 횡 압력을 받아 90도로 꺾여 있었다.
해발 3,000m를 넘어서자 숨도 가파지고 걸음도 느려졌다. 결국 일행 중 3명은 하산하고 말았다.
해발 3,500m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컵라면과 간편식이 나왔지만 나는 고산증으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뭔가 먹어야 하기에 에너지바 한 개를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아라콜패스까지는 고도 400m를 더 올라야 했고, 눈발이 흩날리고 가파른 너덜지대를 지나야 했다. 여기서도 2명이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분한 마음으로 하산을 결정했다.
드디어 아라콜패스. 산 정상에 신비롭게도 진한 에메랄드 빛 보석 같은 아라콜호수가 감춰져 있었다.
우리는 참 운이 좋았다. 힘들게 올라도 날씨 변덕이 심해 아라콜 호수를 못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그 비경을 허락해 주었다. 우리보다 일주일 늦게 온 팀들은 흐리고 진눈깨비가 내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오후 6시에 베이스캠프로 되돌아왔다. 올라가는데 8시간, 내려오는데 4시간이나 걸렸다. 몸은 기진맥진, 내 생애 가장 힘든 산행이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촐라패스를 넘을 때도 이보다 힘들진 않았다. 3,000m급 산행을 12시간이나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다음날 아침 좀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체력을 보충하라고 고깃국을 내놨지만, 떠나버린 내 식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맥주는 입에 맞고 술술 잘 넘어갔다. 맥주 도수 9도, 우리나라 맥주 4도에 비해 훨씬 높았다. 딱 소맥 맛이었다.
산악차량을 타고 내려와 콕투스 트레킹을 시작했다.
해발 2,000m에서 시작해서 최고 높이 2,400m까지 올랐다 내려가고, 거리는 약 11km였다.
임도를 따라 걸었다. 자작나무, 낙엽송, 소나무, 독일가문비나무 숲이 빽빽하게 이어졌고, 길옆으로는 야생화가 예쁘게 피어 있었다. 임도에는 사람이 다닌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차량 바퀴 자국만 깊이 파여 있었다.
산마루턱에 올라서자 전혀 다른 기막힌 풍경이 펼쳐졌다. 끝도 없이 펼쳐진 야생화 산록에 압도당했다. 본 적도 없고 상상도 해본 적도 없는 미친 풍경이었다. 백두산 '7월의 야생화 바다'에서 감탄했었는데, 차원이 다른 야생화 풍경이었다. 갖가지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 바람에 춤추고 있는 꽃 평원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미맹美盲.
아름다움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병.
이젠 어떤 아름다움을 보아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찍 홀로 카라콜 시내 산책에 나섰다. 지난밤에 세찬 소나기가 지나 간 후라 하늘은 맑고 공기는 산뜻했다. 길에는 아직 사람 하나 없었다. 멋없이 높게 자란 버드나무만 눈길을 끌었다. 집들은 낡고 볼 품이 없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정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간선도로를 벗어나 중심도로로 들어서니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간밤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인 텐산산맥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카라콜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산악 마을이었다.
버스를 타고 이식쿨호수 연안을 따라 달렸다. 차창 밖 풍경은 지금까지 봐 온 이식쿨 주변과는 달리 푸른 들판이 이어졌다. 옥수수밭도 보였고, 감자밭도 보였다. 이곳만 보면 키르기스스탄은 발달한 농업국가로 착각할 것 같았다.
키르기스스탄은 전국토의 90%가 산이고, 유목국가였다. 한때 소련연방의 일원이었을 때 이식쿨 주변에 밀을 집단 재배했었는데, 독립 후 초지로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농사짓는 것을 창피하게 느끼는 유목민의 풍조가 아직도 키르기스스탄 남자들에게 남아 있다고 했다.
드디어 마지막 숙박지 촐폰아타에 도착했다. 촐폰아타는 이식쿨 호수 연안에 있는 휴양도시로 구소련연방 시절에 공산당 간부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이식쿨 호수로 들어갔다. 끝없이 넓었다. 동서남북 사방이 텐산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한가운데 있는 산정 호수였다. 넓이는 제주도의 3.3배나 되며, 들어오는 강은 있어도 흘러나가는 강이 없다고 했다. 약간의 염도가 있고, 겨울에도 0도 이하로 수온이 내려가지 않아 얼지 않는다고 했다.
호수에서는 수평선이 보였고, 그 수평선 너머로 눈 덮인 천산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쉬웠다. 푸른 호수 위 선명한 눈 덮인 텐산 산맥을 보고 싶었는데, 옅은 구름이 가로막아 윤각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선명한 눈 덮인 천산산맥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이식쿨호수로 나갔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산산맥은 쉽사리 그 진면목을 보여 주지 않았다.
* 이 글은 6, 7월 한 여름, 남파랑길 여행을 쉬고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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