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속의 일본, 호쿠리쿠(北陸)지방을 가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중형이었는데, 만석이었다. 나는 맨 뒤에서 두 번째 줄 가운데 좌석에 앉았고 내 옆 창가로는 짧은 머리에 어중간하게 구레나룻 수염이 자란 전형적인 일본사람이 계속 졸고 있었다. 주변을 둘려 보니 대부분 일본사람이었다.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 중년의 단체 여행객 등등, 한류의 현장을 찾은 단체 관광객이 많았다. 이번에 일본을 방문하는 목적은 일본 농협을 방문하고, 무엇보다 전통 일본을 제대로 느껴 보자는 것이었다. 아오모리와 아키다가 있는 북부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사카모토 료마의 출신지인 고치가 속한 시코쿠 지역도 고려했지만 가장 일본적인 전통이 많이 남아있고 방문기간 중 이동거리가 짧은 후쿠리쿠 지역을 최종 결정하였다.
일본 농협 방문 섭외는 한국농협 동경사무소에 의뢰하여 일본농협 후쿠이현중앙회와 JA탄난농협을 방문하기로 하였고, 일본문화체험은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 서울지소에서 관광안내 팜플렛을 참고하고 농협교류센타와 협의에 협의를 거쳐 후쿠이현의 도진보와 아와라 온천지구, 가나자와현의 야마시로 온천지구와 겐로쿠엔 그리고 기후현의 시라카와무라로 정하였다.
일본의 지붕인 3천미터 연봉의 키타 알프스를 봤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일정이 빡빡할 것 같아 아쉽지만 포기했다.
도진보의 석양 고마쯔 공항을 나오니 일본 사무소 김소장과 이과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2년만에 만나는 김소장은 여전히 웃는 얼굴에 변함이 없다. 오히려 일본 사람을 닮아 가 더 친절해진 것 같았다. 버스 차창을 통해 보는 농촌 풍경은 한국의 농촌과 그렇게 차이를 못 느끼겠다. 벼걷이가 끝난 논, 지역 특산품인 에치젠 감을 선전하는 광고판 등등. 그러나 농촌 마을은 깔끔했고, 잘 가꾸어진 스기나무 숲은 부럽기도 하고 탐나기도 했다.
입담 좋은 일본 전문 가이드 김과장의 설명을 들으며 도진보에 도착했다. 도진보는 우리의 동해쪽에 접한 아름다운 해안 절벽이다. 거대한 기둥 같은 기암이 약 1km에 걸쳐 이어져 있는 절벽에 서니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했다. 옛날 뻔뻔스런 도진보라는 스님이 어떤 아가씨를 넘보게 됐는데, 그 아가씨를 사랑한 사무라이가 어느 날 술에 취한 스님을 절벽에 밀어 숨지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삶을 비관해서 스스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기념 촬영을 하고 매점에서 아마자케(甘酒)를 마시고 주차장으로 올라 오니, 마침 수평선 너머로 석양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한 점 없는 전형적인 가을 하늘, 일본사람들은 이런 가을 하늘을 아키바레(秋晴)라고 한다. 습도가 많고 가을에도 비가 잦은 일본에서 좀체로 보기 드문 맑은 날이다.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석양을 보지 못했는데, 일본에서 완벽하게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일몰은 장엄하지 못했다. 잠시 눈부시게 바다를 물들이더니 꺼져 가는 숯덩어리처럼 빛을 잃으며 바다속으로 잠겼다. 아마 구름 한점없이 너무 맑아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었다. 구름이라는 조연이 없는 태양만의 모노 드라마는 아무래도 빛을 발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첫날 여장을 풀 아와라 온천 지구에 있는 하이야(灰屋)여관에 도착했다. 아와라지역은 원래 갈대숲이 많은 지역이었는데 물이 부족해 샘을 파다 보니 질좋은 고온의 온천이 발견돼 개발한 곳으로 일본내에서도 알아주는 온천지구다. 하루를 묵게 될 하이야 여관은 122년 역사를 가진 일본 전통 여관이다. 방은 거실에 객실이 딸렸고 다다미가 깔려 있었다. 서빙하는 여자가 오차를 내고 몸치수에 맞춰 유카타를 골라 주었다.
유카타로 갈아 입고 온천 욕장으로 갔다. 평일인 관계인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잘 정돈된 욕실에서 샤워를 한 후 온천탕에서 몸을 녹이고 노천탕으로 나갔다. 얼굴과 머리로는 찬 공기를 맞고 목 아래는 뜨끈한 물에 담그고 있으니 온 몸이 오싹하기도 하고 상쾌했다.
옛날에는 게이샤가 많았었는데 요즘은 많이 줄었다고 했다. 후쿠이현내에 등록된 게이샤는 5명이란다. 지금은 게이샤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곳도 없고, 프로덕션에 소속돼 있다고 했다. 정통적인 게이샤 양성은 6살부터 시작하여 10년간 수련을 받아야 하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고 기모노, 패물, 화장 등에 드는 많은 돈을 대줄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야 하는데 희망자도 없고 후원자를 찾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게이샤 세계에서의 인기는 늙은 게이샤 보다 춤추는 젊은 마이코(舞子)다. 방년 19세, 아스카양은 1년 정도 수련을 받았다고 했다. 전통을 지킨다는 생각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진하게 분장한 얼굴에 국화꽃 장식을 한 가발을 쓰고 있는 모습이 인형 같았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묘한 얼굴에 후리소데(긴소매) 기모노를 입고 추는 손놀림과 배면미를 강조한 춤사위에서 같은 동양권이면서도 묘한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했다. 초기 일본 개항기 무역선을 타고 온 네덜란드인, 제2차세계대전 패전 후 점령군으로 진주한 미군들도 이러한 이국적인 색다름에 환장했을 것이다.
일본 정종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일본 소주로 주종을 바꿨다. 아무래도 알콜 도수가 낮은 일본 정종은 우리 취향에 맞지 않았다. 일본 소주는 우리나라 소주와는 달리 증류주였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 소주가 있었다. 이이이치고 라는 25도 짜리 소주를 마셨는데, 술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께서 뒤끝이 좋다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이이치고만 찾으셨다.
시라카와고 갓쇼무라(白川鄕 合掌村) 날씨는 여전히 쾌청하게 맑았다. 야마시로를 출발하여 가나자와를 거쳐 기후현에 있는 시라카와고로 향했다. 지금까지 지낸 곳은 해안에서 가까운 평야지대였는데, 오늘 가는 곳은 산으로 둘려 쌓인 첩첩산중 마을이다. 도로사정이 나빴던 시절에는 접근하기도 어려웠던 곳이다. 긴 터널을 지나니 계곡을 막은 댐이 나타났고, 또 긴 터널을 지나니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아름다운 가을산이 눈길을 잡았다.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느라, 가이드 김과장과 이위원의 와이담에 빠져 조는 사람 하나 없었다. 잘 기억해뒀다 언제 한번 써먹어야지 단단히 벼렸건만 제대로 생각나는 건 몇 가지뿐이다.
시라카와고 갓쇼무라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한 것같이 가파른 지붕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태백시 부근의 어느 골짝 마을정도다. 지붕은 억새풀로 이었는데, 그 두께가 30센티는 넘었고, 내부는 4,5층 구조로 돼 있었다. 겨울에는 눈이 엄청나게 내려 가파른 지붕이 아니면 견딜 수 없고, 제대로 이동도 할 수 없기에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주택구조를 가졌다.
집을 유지하는데도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입장료를 받고 공개하는 집도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1층 가운데 거실에는 난방겸 취사용 화덕에 장작이 타고 있었고 그 위로 철냄비가 걸려 있었다. 매캐한 냄새가 집안 가득했고, 철냄비를 매단 새끼며, 나무기둥은 까맣게 그을음에 절어 있었다. 층마다 계단으로 연결돼 있었고, 2층은 침실, 3층은 창고, 4층은 누에치기 새끼치기 등 농작업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시라카와고는 청정지역이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출렁다리 아래 강물은 하늘색보다 더 파랬고, 마을 안 깨끗한 개울에는 무지개 송어가 힘차게 왔다갔다 했고, 손뚝같은 자연산 장어가 점잖게 누워 있었다. 산천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였다. 식당 주변은 온통 산천어 양식장이었다. 맑은 계곡물을 끌어들여 치어부터 성어까지 크기별로 키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먹을 수 없는 산천어 소금구이를 맛있게 넉넉하게 먹었다. 이 좋은 환경속에 좋은 안주가 있으니 술이 빠질 수야. 이젠 입에 익은 이이이치고 소주를 많이 마셨다.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 겐로쿠엔(兼六園) 일본에 온지 나흘만에 이시가와 현청이 있는 가나자와시로 왔다. 지금까지 조용한 온천지구에서 숙박을 하였는데, 마지막 밤은 일본항공 가나자와호텔에서 묵기로 돼 있었다. 한적한 온천지구에서는 젊은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거리에 사람 구경하기도 어려웠는데, 교통체증도 발생하고 바삐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보니 서울에 온 것같이 낯익어 보였다.
그런데 거리를 바삐 다니는 여자의 패션은 서울과는 색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릎 위까지 올라간 각선미를 살린 반바지에 롱부츠를 신은 여성들의 옷차림새가 눈길을 끌었고, 도회적 세련미가 느껴졌다. 요즘 한창 서울에서 유행인 짧은 치마, 레깅스, 롱부츠와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겐로쿠엔은 전형적인 일본미를 간직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100만석 카가(加賀)번의 부를 바탕으로 인공 연못을 만들고 동산을 만들고, 전국 각지에서 좋은 나무를 구해와 심고 잘 가꿔 미토의 가이락엔과 오카야마의 고락엔과 더불어 일본 3대정원이라 일컬어 지고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하나미바시(花見橋). 개울 양 옆으로는 벚나무가 줄지어 있고, 개울안에는 물창포가 심어져 있었다. 봄에 미치도록 하얀 벚꽃이 필 무릎, 우아한 보라색 창포 꽃이 필 때면 꽃구경하기 가장 좋은 장소란다.
겐로쿠엔의 명물 중 명물인 가라자끼노마츠(唐崎松)앞에는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볐다. 마침 겨울나기 준비 중이었는데,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지주대를 세우고 새끼로 소나무 가지를 매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라자끼노마츠는 옆으로 뻗은 가지 길이가 높이보다 더 길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이렇게 보호조치를 하지 않으면 가지가 상하기 때문이란다.
잘 관리된 소나무, 겨울에 꽃이 피는 후유자쿠라(冬櫻), 매화밭과 천년 묵은 매화나무, 진홍 빛 붉은 단풍나무 그리고 호수가의 찻집 등등 볼거리가 많았다. 잔디 가꾸듯 정성스레 잡초를 뽑고 빗질을 하며 이끼를 관리하고 있는 광경도 인상적이었다.
겐로쿠엔이 보이는 음식점 2층에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하였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게요리를 먹었다. 아직 겨울철이 아니라 철 이른 탓인지 맛은 별로였다. 영덕 게 보다 못했다. 게안주에 술은 별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일본 정종을 마시다 이미 입에 익은 이이이치고 소주를 많이도 마셨다.
전통을 유지하며 잘 사는 후쿠리쿠(北陸) 일본 방문 마지막날이다. 4박5일 동안 내내 날씨가 쾌청했다. 여행은 뭐니뭐니 해도 날씨가 받쳐 줘야 하는데, 이번 일본 방문은 그런 점에서 럭키했다. 하루에 한 차례 있는 비행기가 오후 3시 55분에 출발하는 관계로 오전중에 유서 깊은 일본 절과 전통 공예관을 둘려 보기로 했다.
가나자와에서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후쿠이현에 있는 에이헤이지(永平寺)로 갔다. 670년 전에 건립된 좌선수행 도장으로 1만5천 개의 말사를 거느린 일본 불교 대동종의 대본산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려 쌓인 골짜기에 70여채의 건물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사찰도 사찰이지만,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와 사찰 주변의 스기나무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수령 600년,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모습이 장관이었다.
후쿠리쿠지구는 도야마현, 이시카와현, 후쿠이현 3개 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지역은 400년 동안 전란에 휩싸이지 않았다고 한다. 에이헤이지(永平寺)의 공덕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도쿠가와이에야스의 에도막부이래 전쟁이 없었으며, 제2차세계대전에서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고 한다. 행운인지, 지도자의 선견지명과 리더쉽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덕분에 많은 문화적 유산이 남아있고 전통을 보존하고 산업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나자와는 인구 45만의 작은 지방 도시에 지나지 않지만 작은 교토라 불리는 고도이며, 자부심이 대단한 도시이다. 가나자와는 대기업의 지점이나 대리점이 별로 없다고 한다. 외부 자본을 끌어 들여 개발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개발하는 내발적 발전 모델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있다고 한다. 일찍이 섬유산업이 발전하였으나 값싼 중국산이 몰려 오자 섬유기계산업으로 전환하였으며, 소형모터 기술을 응용한 가이덴(回轉)스시 기계는 대부분 가나자와 산이라고 한다.
후쿠이현은 인구 82만, 일본내에서도 가장 작은 현중의 하나다. 큰 공장도 없고, 대기업의 대리점도 거의 진출해 있지 않다.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것 같지만, 농업소득은 전국에서 43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농가 소득은 전국 3위란다. 이해가 안되고 놀랍다. 농외소득하면 쉽게 농한기 또는 여유시간을 이용한 기업체 근로소득이 생각되는데 그렇지 않는 모양이다. 후쿠이현에서 생산되는 안경테는 일본 전체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일본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농외소득원이 많다고 한다. 연구과제다.
점심을 먹을 겸 에치젠 창작대나무인형관으로 갔다. 전시관, 기념품 매장, 식당을 겸영하고 있는 복합 전통예술관이다. 대나무의 쓰임새가 줄어들자, 활로를 찾기위해 대나무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란다.
실처럼 가늘게 뽑은 대나무줄기 7천개로 머리카락을 만든 인형은 예술이었다. 가격을 물으니 매겨보지 않았고, 팔 생각도 없단다. 내년 (멧)돼지해를 맞아 멧돼지 인형 제작이 한창이었다. 이곳을 찾는 입장객은 자그마치 년간 40만명이란다. 입장료 수입, 기념품 판매, 식당 운영 수입 등등 가늠이 잘 안된다. 이런 전통을 발전 시킨 산업이 후쿠이현, 후쿠리쿠 지역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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