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하다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하이젠베르크는 맥주잔을 앞에 놓고 잡답하는 것을 즐겼고, 연구가 벽에 부딪혔을 때 동료 과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하였다고 한다. 질서정연한 자연과학을 탐구하는 과학도에게도 혼자 실험하고 궁리하는 것 못지 않게 다른사람의 한 마디 조언이 효과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수다를 떨기보다 과묵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전통 탓인지 대화가 어색할 때가 많다. 외국에서 공부한 어느 대학교수는 채터링을 할 수 없어 다시 돌아갔다는 글을 본적이 있고, 요즘 "대화가 필요하다"는 개그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대화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지난 봄 내내 전농노와 대치하면서 느꼈던 것 중의 하나가 대화 부족이다. 애당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전농노는 별개로 치더라도 우리 내부의 대화 부족에서 오는 오해와 혼선이 많았고, 이로 인해 겪은 곤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농노가 두번째 본부장실을 점거하였을 때, 본부와의 전화통화시는 '죄송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끝났다. 설명도 필요 없고, 어째서 두번이나 점거 당했냐는 호통만 들어야 했다. 물론 점거를 막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방 건물 구조에서, 예고없이 들어 닥친 그들을 막기란 역부족이었다고 본다.
으레 사건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진단하기 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번에도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든지, 아니면 몸으로라도 막아야 될 것 아니냐는 추궁을 들었다. 그럴 때는 말문이 막힌다. 말을 하면 변명이고 책임회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승인받은 사람만 들어 갈 수 있도록 본부장실 출입문에 지문 인식 차단문을 설치해 또다시 무단 점거당하는 일이 없게 되어 다행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만 근본 대책을 세웠으니 또다시 점거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농노와 대치하는 것도 골치 아픈 와중에 느닷없이 회원지원부 책임론이 부각되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자금회수에서 시작되었고, 이는 회원지원부에서 결정한 일인데 회원지원부는 뒷짐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본부와 전농노와 싸움을 경남 지역본부에서 대리하고 있고, 경남지역본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 놓을 수 없는데 중앙본부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데 대한 불만이었다.
전농노의 중앙회에 대한 부당한 공격도 참기 어려운데, 비상근무까지 해야 하고, 금고수익 지역 환원이라는 미명하에 지방자치단체에 금고관련 정보공개 요구를 하게 되자 불만은 더욱 고조되었고 불평이 들려 왔다. 결국 이러한 분위기는 중앙회 노조를 통해 회원지원부에 전달 되었다. 그러나 회원지원부라고 뾰족한 대책을 세울 수 없음은 불문가지였다. 하지만 중앙회 노조는 소속 조합원들의 불만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기에 강력히 항의했을 것이다.
교섭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 아니냐, 직원들에게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성도 들려 왔다. 대치상태가 장기화되고, 과격해지자 회원지원팀만의 일이 아니고 전체의 관심사로 부각된 것이었다.
'천냥 빚도 말만 잘하면 갚는다' 고 하지만 투쟁의 목표가 있는 전농노와의 협상은 노력에 의해 성사되기는 어려웠다. 어디까지나 명분이 있어야 했는데 그들의 요구는 들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전농노와 대화도 중요하지만 내부 직원들과 대화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원들이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은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당장은 귀찮지 않아 편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럴 경우 문제가 해소되더라도 직원들의 불만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직급별 여론 주도 위치에 있는 직원 회의를 개최했다. 지역본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주무팀장 회의를 먼저 열고, 노조 집행부와 직급별 상조회 집행부 회의를 열었다. 지금까지 경과 그리고 앞으로 대응 계획을 설명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나왔다.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전 제시와 훌륭한 개혁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에 대한 홍보라고 한다.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참여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개혁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의 위기 극복도 이와 마찬가지다. 위기에 대한 공감대 그리고 공동의 노력, 이것이 위기 극복의 필수 요건일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조직내 대화가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다.
'창원광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승진 (0) | 2013.08.21 |
---|---|
도동지점 고객과 재회 (0) | 2013.08.21 |
길고 길었던 설 전날 (0) | 2013.08.21 |
글이 아니고 길입니다 (0) | 2013.08.21 |
궁하면 통한다 (0) | 2013.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