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4일, 설악산에 갔다.
갑자기 10월이 가기 전에 설악산에 가고 싶은 욕망이 불현듯 일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중청대피소 예약사이트에 들어 가니 운 좋게 두 자리가 남아 있었다.
이런 행운이∼∼∼∼
이친구 저친구 연락을 한 끝에, 국방연구원에 다니는 친구가 휴가를 내 동행했다.
오랜만에 버너와 코팰을 챙기고,
김치 스팸 과일 그리고 소주 등등 일용할 양식을 배낭에 넣고,
일부는 비닐봉지에 담아 손에 들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마침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 급한 마음에 뛰어가다 꽈당~ 넘어졌다.
그 다음은 처참.
안경은 박살 나고, 오른 손과 얼굴은 피 투성이.
얼른 되돌아 집으로 돌아가니 안해는 기겁초풍.
우선 응급조치를 하고 이전에 끼던 안경으로 갈아 쓴 다음,
안해가 냉정을 찾아 반응하기 전에 얼른 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버스 출발 4분전에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날 보고 갈 수 있겠나고 걱정하는 친구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버스에 올랐다.
한계령과 오색을 경유하는 속초행 버스는 평일임에도 만차였다.
우리처럼 등산을 가는 사람, 편한 차림으로 단풍구경을 가는 모녀 등등
한계령에서 보는 하늘은 너무 맑고 파랳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원시의 하늘이 이랬을까?
이번 산행은 한계령을 출발해서 중청에서 1박하고 대청봉에 올랐다가 가야동계곡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잡았다.
한계령 능선에서 설악산 전체를 조망하고, 가야동계곡에서 설악을 속살을 느끼고 싶었다.
내설악을 온전한 모습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새벽 어둠속에 오르거나 안개가 자욱히 껴 제대로 볼 수 없었었는데~~
이런 행운이~오늘 아침 액땜을 한 덕분인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릉, 용아장성. 그 좌우로 구곡담 계곡과 가야동계곡이 깊이 형성돼 있다.
그리고 가야동계곡을 사이에 두고 공룡능선이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고 있다.
남설악을 눈으로 보기도 처음이다.
내설악과는 달리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46년만에 개방된 만경대, 주전골, 흘림골 암릉 계곡이 고양이 발톱처럼 저 속에 숨어 있다.
남설악쪽 산세는 첩첩, 물결치듯 이어지는 모습이 포근하고 아름답다.
해질녘 중청에 도착해서 바라본 외설악, 천불동 계곡 모습. 울산바위, 속초시가 보이고 멀리 동해 바다도 보인다.
설악산에도 높은 곳에 주목이나 구상나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잣나무가 많았다.
의외였다.
어쩌다 간혹 주목이 보이기도 했고, 구상나무도 간간히 보였지만 잣나무가 더 많았다.
흔한 소나무보다도 잣나무가 많았다.
거목으로 자란 잣나무. 잣을 생산하기 위해 조림한 잣나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바위틈에 거센 바람을 맞으며 굳세게 살아가고 있는 잣나무.
바람이 너무 심해 높이 자람을 포기한 잣나무.
봉정암 사리탑을 지키는 나무도 잣나무였다.
높은 산, 바람 센 곳에서는 뒤틀리게 자라던 잣나무도 바람 잣고 비옥한 곳에서는
멋진 거목으로 자라고 있었다.
설악의 환경에 적응하여 그 생육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잣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이곳 설악산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천수를 다 누린 잣나무 고사목과 거센 바람속에 꿋꿋하게 살아가는 잣나무.
바람은 계산하고 극복하는 게 아니라 수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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