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하순, 굴업도는 온통 수크렁 천지.
인터넷 서핑하다가 굴업도 수크렁 사진을 보고 여행계획을 급히 해인사와 가야산에서 굴업도로 바꿨다.
9월 26일 용산에서 친구를 만나 6시 52분발 동인천행 급행을 타고 동인천에 내려 택시를 바꿔타고 연안부두에서 8시쯤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매점에서 김밥 두줄을 샀다.
굴업도로 바로 가는 배편은 없다. 덕적도로 가서 다시 굴업도 가는 배로 갈아 타야 한다.
8시20분발 배는 덕적도에 9시20분에 도착했고, 굴업도가는 가는 배는 11시20분에 출발한다.
굴업도 여객선은 덕적도 부근 5개섬을 운항하는데 짝수일과 홀수일 항로가 다르다.
짝수일은 시계침 방향으로, 홀수일은 시계침 반대방향으로 운항한다.
굴업도 도착시간은 짝수일은 2시간, 홀수일은 1시간 소요된다.
이런 사실을 배를 탄 후 알고 날짜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계산빠른 방문객들이 짝수일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오히러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잇점이 있기도 했다.
굴업도 오후1시20분 도착.
예약한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포터트럭을 몰고 기다리고 있었다.
민박집 예약 손님은 우리 두사람뿐이었다.
짐을 풀고 막걸리 1병에 가정식 백반으로 시장기를 해결하고 탐방에 나섰다.
별도 탐방로는 없었다.
더군다나 산자락을 따라 철조망이 처져 있었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는 철조망사이 틈새를 넘어 들어섰다.
곳곳에 염소 똥이 널려 있었고, 예상밖으로 사람 발자국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해안 백사장 남쪽 끝에 출입구가 있다는 것을 돌아오는 길에 알았다.
소사나무 숲을 지나고, 야생 들깨 잎 짙은 향을 맡으며 얕은 등성을 넘고 또 넘으니
온통 수크렁 천지였다. 난생 처음보는 광경, 끝없이 펼쳐진 수크렁 군락.
바람의 방향과 햇볕의 각도에 따라 색깔을 바꿔 일렁거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가을길.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억새 밭하고도 느낌이 다르다.
멀리서 보면 밀밭같기도 하다.
위 사진은 전날 오후에 찍은 것이고, 아래 사진은 다음날 새벽에 찍은 사진.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나 혼자뿐이었던 새벽길에 먹이 산책나온 사슴 가족을 만났다.
첫 조우에서는 예민한 사슴가족이 보자마자 도망가더니 두세번째 만남에서는 멋진 포즈를 취해 줬다.
호기심 많은 이녀석들도 내가 궁금했던가 보다.
하산길에서 (암)그렁을 만났다.
이 녀석들은 밟혀도 밟혀도, 차바퀴에 깔려도 살아남는 명줄이 질긴 놈들이다.
어릴적 풀잎을 묶어 친구들이 걸려 넘어지도록 장난을 쳤던 그 풀, 반가웠다.
'결초보은'이 아니라 '결초장난'
굴업도는 몇 종의 식물이 점령하고 있었다. 식물의 다양성이 매우 부족했다.
수크렁이 주점령종이고, 잔디가 바닥에 깔려 있고, 붉은서나물이 그나마 간혹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는 소사나무가 대부분이고 보리수, 산벚나무, 산복숭아 나무도 간간히 보였다.
섬 대부분은 나무가 없는 초지다.
백패킹족들에게 인기있는 지역이란다.
평일이라 서넛 백패킹족들만이 텐트를 치고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섬 북쪽끝 연평산에서 바라본 굴업도.
북섬과 남섬을 잇는 모래톱 백사장이 아름답다.
이 섬은 2006년 CJ그룹에서 섬의 98%를 매입했다.
이곳에 골프장을 건립할 계획이었는데,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 섬은 약 1억년전 화산 폭발로 발생한 화산재와 쇄설물로 만들어진
응회암과 집괴암으로 형성된 지형구조를 갖고 있는 지질학적으로 보호가치가 높은 곳이란다.
CJ측에서는 처놓은 철조망.
농작물을 재배했던 다락밭, 흔적만 남아 있다.
현재 이곳에는 7가구 15명이 살고 있다. 한 때는 25가구 100여명이 살았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집도, 어업을 하는 집도 없단다.
생업은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 세집은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 굴업도는 한우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외지에서 들어온 목축업자가 목장을 경영했었고, 굴업도 주민들도 한우를 몇마리씩 방목 사육했다고 한다.
목축업자도 떠나고, 한우를 방목하던 주민들이 떠나자 목장터에는 수크렁이 점령했고,
누군가 키우던 사슴과 염소가 빈 자리를 차지했다.
굴업도 여행은 국내 어느 곳보다 마음에 들었다.
수크렁의 황홀한 장관도 멋졌지만 어느곳 보다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음이 좋았다.
구름 낀 흐린 날이 아쉬웠지만 바람, 풀, 나무, 사슴, 바다........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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