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국립공원(五臺山國立公園)
오대산은 1975년 2월 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은 298.5 ㎢로서 이 가운데 평창군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140.4 ㎢를, 명주군이 113.7㎢를, 홍천군ㆍ양양군 일부가 44.4㎢를 차지하고 있다.
오대산국립공원은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지구, 척천리 방아다리 약수지구, 도암면 병내리지구, 황계리 황병산 지구와 양양군 현남면지구, 홍천군 내면지구, 명주군 연곡면 소금강지구 등 7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태백산맥의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차령산맥의 교차접을 이루는 지점이 오대산의 주봉 비로봉(毘盧峰: 1,563m)이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하여 호령봉(虎嶺峰: 1,560m)ㆍ서대산(西臺山: 1,402m)ㆍ상왕봉(象王峰: 1,485m)ㆍ북대산(北臺山: 1,402m)ㆍ두로봉(頭老峰: 1,422m)ㆍ동대산(東臺山: 1,434m) 등 고봉들이 중대(中臺)를 감돌며, 동대ㆍ서대ㆍ‘남대ㆍ북대가 오목하게 원을 그리고 있어서 마치 다섯 잎에 싸임ㄴ 연꽃 같은 산세를 이루므로 생겼다고 한다.
오대산 일대의 주요 산정(山頂)은 거의 대부분이 둥그스레한 평정봉(平頂峰)이어서 설악산이 남성적인 데 비해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대산의 지질 기반은 굳은 화강ㆍ편마암으로, 암반의 노출부가 적고, 오랜 서월에 걸친 풍화작용의 침식으로 평탄부가 많아 산 전체의 토질이 비옥하여 우리나라 제일의 천연 산림지대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오대산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도 다양하고 풍부해 자연경관을 더욱 훌륭하게 해 준다.
서식하는 동물은 포유류 17종, 조류 33종 142개체, 곤충 134과 474종, 담수어 20종 등이며, 특히 월정사 바로 옆의 금강연은 열목어의 서식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금강연은 이 밖에도 메기ㆍ괘리ㆍ탱수ㆍ뱀장어 등이 서식하여 특별어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식물은 64과 217종, 이 가운데 한 대성 침엽수림대가 50%로,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활엽수림이 31%, 혼효림이 19%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오대산에는 주로 전나무ㆍ분비나무ㆍ신강나무ㆍ자작나무 등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도 비로봉 정상 일대의 눈측백나무와 주목 군락, 두로봉과 상왕봉 능선의 철쭉ㆍ금강초롱이 가장 유명하다.
오대산에서는 한강의 수원(水源)이 되는 오대천(五臺川)이 북에서 남서로 흐르고 있고, 내린천(內麟川)이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동쪽에는 연곡천(連谷川)ㆍ청학천(靑鶴川)이 동해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오대산에는 월정사를 비롯하여 상원사ㆍ중대사가 있으며, 연꽃 모양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자리잡고 있다. 오대산 지역에는 대관령스키장ㆍ방아다리약수터ㆍ고랭지작물시험장ㆍ대관령목장ㆍ호프재배단지ㆍ채소단지ㆍ표고버섯단지ㆍ봉산서재ㆍ청심대(淸心臺)ㆍ송학루(松鶴樓) 등 국보와 보물을 소장한 고적과 문화재와 볼 만한 명소가 많다.
한편 오대산과 한동아리로 묶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인 1970년 1월 10일에 이미 명승지 2제1호로 지정된 바 있는 소금강은 노인봉에서 흘러내린 기암절경의 긴 계곡이 아름답다. 이 소금강은 율곡(栗谷)이 소금강이라 이름짓고, <청학산기(靑鶴山記)>를 남기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소금강 청학골의 식ㄷ강암에는 율곡의 필적이라는 각자(刻字)가 남아있다. 노인봉에서 발원한 청학천은 동북으로 흘러내려 연곡천 본류와 합쳐져 동해로 들어간다. 청학천을 따라 발달된 기암괴석ㆍ층암절벽ㆍ폭포ㆍ담소(潭沼) 등은 마치 금강산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소금강은 다시 무릉계곡(武陵溪谷)을 경계로 내ㆍ외 소금강으로 구분된다. 외소금강의 명소로는 금강문ㆍ취선암ㆍ비봉폭포ㆍ외용수폭포ㆍ옥조대ㆍ내용수폭포ㆍ칠자소ㆍ연주대ㆍ옥수연 등을 꼽읋 수 있고, 내소금강은 백운대ㆍ삼폭ㆍ광폭ㆍ낙엽폭포 등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명소를 빚어 놓았다. 이 중에서 특히 9폭 9담의 구룡폭포와 만물상 일대는 절경ㆍ비경을 이룬다. 오대산이 부드러운 능선과 장중한 산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소금강은 동해를 바라보며, 태백산맥의 동쪽 경사면에 위치한 까닭에 경사가 매우 급하고, 곳곳에 화강암반이 노출되어 있어 험준하면서도 수려한 산세를 보인다.
소금강 지역 역시 수려한 자연 경관 못지않게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모두 50과 90속 129종의 관속식물과 포유류 6종을 비롯하여 조류 24종, 곤충 160종 등 동물이 살고 있다. 특히 금강사 주변은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의 서식자로 알려진 곳이다.
- <신한국의 여로(旅路)>(한국일보사.1989) -
오대산을 중심으로 하여 강원 평창군ㆍ홍천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면적 298.5 ㎢. 오대산에는 동쪽에 만월대(滿月臺), 서쪽에 장령대(長嶺臺), 남쪽에 기린대(麒麟臺), 북쪽에 상삼대(象三臺), 중앙에 지공대(知工臺)가 있어 이들 5개의 대를 꼽아 오대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고, 또 중ㆍ동ㆍ서ㆍ남ㆍ북의 5대(五臺)에 각기 석가ㆍ관음ㆍ미타ㆍ지장ㆍ문수의 부처가 상주하며 설법하는 성지이므로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비로봉(毘盧峰: 1,563 m)을 주봉으로 하여 남서쪽으로 소대산(小臺山: 1,270 m)ㆍ호령봉(虎嶺峰: 1,560 m)ㆍ소계방산(1,490 m)으로 뻗어내리고, 동쪽으로 상왕봉(上王峰: 1,493 m)ㆍ두로봉(頭老峰: 1,422 m)ㆍ동대산(東臺山: 1,434 m)ㆍ노인봉(老人峰: 1,338 m)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들이 모두 높이 1,000 m가 넘는 준령으로 이름난 명산이다. 이 산들이 마치 분지를 에워싼 것 같은 지형을 이루고, 그 사이의 분지를 북한강(北漢江)의 지류인 오대천이 비교적 깊은 협곡을 이루면서 남류한다. 다만 동대산과 노인봉 사이의 안부(鞍部)인 진고개는 오대천의 한 지류와 연곡천(連谷川)과의 분수령이 된다. 이 진고개는 오대천ㆍ연곡천 등의 연안을 거쳐 동해안 지역을 연락하는 또 하나의 교통로를 이루고 있다.
진고개를 경계로 오대산국립공원은 오대천 계곡과 연곡천 계곡으로 양분된다. 영동고속도로의 진부령(珍富嶺) 인터체인지에서 오대천을 따라 8 km 가량 북쪽으로 들어가면 월정사(月精寺)에 이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에는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유명한 팔각9층석탑(국보 48)과 석조보살좌상(石造菩薩坐像: 보물 139)이 있다. 또한 월정사에 딸린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자장이 석가진신사리(釋迦眞身舍利)를 봉안한 곳이다. 월정사의 말사(末寺)인 상원사(上院寺)에는 한국 동종(銅鐘) 중에서 일품으로 꼽히는 상원사 동종(국보 36)과 상원사 중창 권선문(上院寺重勸善文:보물 140) 등이 있다.
월정사 경내의 무성한 전나무숲을 따라 동쪽으로 동대사를 바라보며 5 km 가량 더 오르면 길 서쪽에 오대산 사고지(史庫址:사적 37)가 있는데 이곳에는 사고사(史庫寺) 대신 영감사(靈鑑寺)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부터 오대천 계곡의 경사는 갑자기 급해지고 계류도 급단(急湍)으로 변한다. 가파른 산비탈에는 상원사를 중심으로 서대사(西臺寺)ㆍ중대사(中臺寺)ㆍ북대사(北臺寺) 등 월정사의 말사들이 모여 있다.
오대산 일대는 식물이 우거지고, 각종 야생동물도 많은 곳인데, 주된 것으로는 비로봉 일대의 눈측백나무ㆍ주목나무의 군락(群落), 두로봉에서 상왕봉에 이르는 사이에는 철쭉․금강초롱 등이 유명하며, 동물로는 멧돼지ㆍ사향노루ㆍ원앙새ㆍ오색딱다구리ㆍ칼새 등이 서식하여 남한에서는 지리산ㆍ한라산과 함께 동식물 분포의 보고(寶庫)로 일컬어지고 있다(포유류 14종ㆍ조류 35종ㆍ곤충 474종ㆍ담수어 20종ㆍ각종 고산식물 217종). 공원은 아니지만 영동고속도로에 면하는 횡계리(橫溪里)에는 대관령(大關嶺) 스키장을 비롯하여 방아다리 약수장ㆍ고랭지 작물시험장ㆍ대관령목장 등이 있고, 홉ㆍ아마(亞麻) 등도 재배하고 있다.
강릉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연곡천(連谷川) 계곡은 무릉계(武陵溪)라고도 부르며, 오대산국립공원의 동부를 형성한다. 소금강 입구의 주차장에서 700 m 가량 오르면 이 무릉계가 나타나고, 이어서 십자소(十字沼)ㆍ연화담(蓮花潭)ㆍ금강사(金剛寺)ㆍ식당암(食堂岩)ㆍ구룡연(九龍淵)ㆍ군자폭(君子瀑)ㆍ세심폭(洗心瀑)ㆍ구곡담(九谷潭)ㆍ문수담(文殊潭)ㆍ선녀탕(仙女湯)ㆍ촉대석(燭臺石)ㆍ만물상(萬物相)ㆍ만폭동(萬瀑洞)ㆍ상팔담(上八潭)ㆍ백운대(白雲臺)ㆍ삼폭(三瀑)ㆍ학소대(鶴巢臺) 등의 명소가 있으며, 산정에는 아니산성ㆍ망군대(望軍臺) 등이 있다.
【평창 오대산사고(平昌 五臺山史庫)】
사적 제37호. 소재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 1.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실록>은 조선 전기에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에 나누어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1592)으로 전주사고에 보관하고 있던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선조 39년(1606)에 다시 만들어 춘추관·태백산·묘향산·강화 마니산·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 이괄의 난(1624)과 병자호란(1636)으로 <춘추관본>이 불타 없어졌고, 그 후 정족산ㆍ태백산ㆍ적상산ㆍ오대산에 보관하게 하였다.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현재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어 있고,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중 없어졌으며, <오대산본>은 일본에서 거의 불타 없어졌다.
오대산 사고가 있던 곳은 원래 물·불·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상서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사고를 지을 당시에는 실록각ㆍ선원각ㆍ별관, 그리고 사고를 지키던 수호사찰로 영감사가 있었으며, 참봉 2명과 군인 60명, 승려 20명이 사고를 관리하고 지켰다.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탔으나 1992년에 사각과 선원보각으로 이루어진 사고의 건물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朝鮮王朝實錄 五臺山史庫本)】
국보 제151-3호. 소재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규장각. 이 책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이 오대산본은 27책으로, 태조부터 명종까지 실록은 선조 36년(1603) 7월부터 39년(1606) 3월 사이에 전주사고본을 토대로 만든 4부 중 하나이다. 그 이후 고종 2년(1865)에 만든『철종실록』에 이르기까지 실록이 편찬되는 대로 첨가되어 온 것으로 선조 39년(1606)부터 1910년 일제시대까지 계속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어 왔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일본 동경대학으로 반출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화재로 인해 거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 중 30책은 동경대학에 보관되어 있으며, 27책만 1932년 5월 경성제국대학에 보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134호
【오대산중대불량문(五臺山中臺佛糧文)】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4호. 소재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월정사성보박물관. 이 책은 조선 후기 오대산 적멸보궁의 중창사실과 이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일반 시주자 및 인근 사찰의 시주스님을 기록한 책으로, 오대산 적멸보궁(중대)에서 보관용으로 기록한 것이다. 각 장 8행(行)에 글자 수는 16∼25자로 불규칙하며, 모두 2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에는 재물을 출연하여 시주하는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발문, 일반 대시주자의 이름과 소원문이 보이며, 이어서 본사 비구를 비롯하여 인근의 사찰 및 경상도 은해사 스님들의 시주명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이를 증명하는 각 사찰명이 지역별로 기재되어 있다. 이 책이 만들어진 시기는 책 끝부분에 보이는 연대를 통해서 대략 19세기 초반으로 생각된다.
조선 후기 오대산 적멸보궁의 중창사실과 이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일반 시주자 및 인근 사찰의 이름을 알 수 있고, 당시 사찰 연혁을 살필 수 있다.
제135호
【오대산중대불량계원수복문(五臺山中臺佛糧계員樹福文)】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5호. 소재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월정사성보박물관. 이 책은 오대산 신앙의 중심인 적멸보궁의 관리를 위해 같은 사찰 안에서도 암자와 암자 사이에 부동산을 옮긴 것을 보여주는 문건이며, 당시 사찰 승려들의 명단도 싣고 있어 조선후기 도내 사찰의 현황 등을 살필 수 있다.
조선 순조 25년(1825)에 오대산 서대에 소속된 논을 중대로 영원히 옮기면서 그 목록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부처의 법신이 상주하는 적멸보궁의 쇠락을 안타까이 여겨 스님들이 앞장서 시주자를 모아 기부한 내역을 적은 오대산적멸보궁불량연기와 이와 같은 취지에 동참한 인근 사찰과 소속 승려들의 명단을 수록하였다.
이 책은 1825년(조선 순조 25)에 작성된 것이다. 이 책은 오대산(五臺山) 신앙의 중심인 중대(中臺) 적멸보궁(寂滅寶宮)의 관리를 위해 사찰 내에서도 암자와 암자 사이에 부속 부동산을 옮겼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시 적멸보궁의 세력권을 추정할 수 있는 문건이며, 또한 각 사찰에 소속되어 있는 승려들의 명단을 실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도내 사찰의 현황 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과 계선(界線)은 검은색으로 그렸고, 반곽(半郭) 6행(行)에 글자 수는 12자 내외로 불규칙하며, 모두 1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부분에 1825년 서대(西臺)에 소속되어 있는 논을 중대(中臺)로 영원히 옮기면서 그 상세한 부동산 목록을 작성하였다. 이어서 취봉 민현(鷲峯 愍玹)이 쓴 오대산적멸보궁불량연기(五臺山寂滅寶宮佛糧緣記)가 있는데, 이 글은 모연(募緣)의 의의를 강조한 것으로 그 내용은 부처의 법신이 상주하는 적멸보궁이 점차 쇠락하자 본사의 화주(化主) 영담(瀛潭) 장로가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을 보고 그의 문인(門人) 신운(信云) 등이 앞장서서 권선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뒷부분에는 이와 같은 취지에 동참한 인근 각지의 사찰과 소속 승려들의 명단을 수록하였다.
겉장은 황색(黃色) 표지로, 표지에는 “중대불량계원수복문(中臺佛糧계員樹福文)”이라고 필서하였다. 오대산적멸보궁불량연기를 쓴 날자는 간기에 “도광오년을유유월상한(道光五年乙酉六月上翰)”으로 되어 있어 1825년(조선 순조 25)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
국보 292호. 소재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월정사. 세조 10년(1464) 세조의 왕사인 혜각존자 신미 등이 학열, 학조 등과 함께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상원사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지은 글로,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세조가 쌀, 무명, 베와 철 등을 보내면서 쓴 글과 함께 월정사에 소장되어 전한다.
각각 한문 원문과 번역으로 되어 있는데, 신미 등이 쓴 글에는 신미, 학열, 학조 등의 수결(지금은 서명)이 있으며, 세조가 보낸 글에는 세조와 세자빈, 왕세자의 수결과 도장이 찍혀 있다. 한글로 번역된 것은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 유명하다. 세조와 상원사 및 신미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며, 당시의 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가장 오래된 한글서적이면서도 보존 상태가 완벽하여 1996년 11월 28일 보물 제140호에서 국보 제292호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오대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산줄기의 대간을 이룬 태백산맥의 중간에 위치하고 1975년 2월 1일 우리나라 11번째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공원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강릉시, 평창군, 홍천군에 걸쳐 있고, 면적은 298.5Km에 달하며, 주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해발 1,563m이다.
오대산은 크게 월정사 지역과 소금강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월정사 지역의 산새는 여성다운 부드러움을, 소금강은 남성다움과 화려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지역은 해발고도가 1,000m 내외의 봉우리가 다수 자리하고 있는 고지대이고, 동해와 인접하고 있어 월정사 지역은 내륙성 기후 특성을 띠고, 소금강 지역은 해안 기후의 영향을 받는 등 대조적인 현상을 나타낸다.
오대산 지역의 기상은 평균기온에 있어 월정사 지역이 6.3도C, 소금강 지역이 13.1도C로 양 지역간의 온도 차이가 심하며, 연평균 강우량은 월정사 지역이 1,933mm이며 소금강지역이 1,433mm로 월정사 지역의 강우량이 많다.
오대산을 구성하는 지질은 주로 선캠브리아기의 편암류 및 편마암류와 쥬라기의 화강암류로 구성되어 있다.
오대산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비롯하여 많은 문화자원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특히 월정사 지역의 전나무 숲은 삼림욕장으로 손색이 없으며, 소금강 계곡은 장관이 수려하여 연간 약 1백만 명 이상의 탐방객들이 오대산 국립공원을 찾아오고 있다 한다.
월정사와 상원사를 옆에 둔채 먼저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찾았다.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가운데서도 대표적인곳으로 부처의 정골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정골과 불사리를 직접 봉안한 것이다.
적멸보궁은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능선 위에 위치하고 있다. 예로부터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저 온 곳인데 일설에 의하면 이 일대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며, 적멸보궁은 바로 용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한다.
주위를 다른 능선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안온하면서도 표현하기 힘든 어떤 숙연함을 느끼게하는 곳이다.
적멸보궁을 탐방하고 내려오면서 상원사(上院寺) 에 들렸다.
상원사는 월정사와 더불어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가 행행(行幸)하여 여러 전설을 남긴 곳이며, 일제말의 대선사 방한암 (方漢岩)스님이 주석(主席)한 곳이기도하다. 월장사에서 주봉인 비로봉을 향해 약 10Km정도 올라간 곳에 있으며,적멸보궁을 참배하러 가는 탐방객들의 경유지이다.
경내에 상원사 동종(국보36호), 문수동자좌상(국보221호)등 국보2점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을 비롯 보물2점이 있으며,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중심지다.개보수공사가 진행중으로 어수선하여 사원의 엄숙함을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주차장 까지 하산하여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계곡의 물소리와 산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내려오니 월정사가 보인다.
월정사(月精寺)는 오대산의 관문이라 할수 있다. 산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어 이 곳을 지나지 않고는 오대산의 절경과 유적들을 만나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대산 만월대(滿月臺)에 떠오르는 보름달이 유난히 밝아 월정사라 이름했다는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한다. 절 입구의 울창한 전나무 숲이 고찰(古刹)의 품격을 한층 높혀 주며, 월정사 바로 앞에 있는 금강연(金剛淵)은 오대천(五臺川)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열목어 등 천연 기념물로 보호되는 생물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또한 경내에는 국보 48호로 지정된 팔각구층 석탑과 석조보살좌상(보물139호)등이 보전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출처] 오대산국립공원(五臺山國立公園) |작성자 재봉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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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은 힘찬 기세로 금강산, 설악산을 지나 대관령, 소백산, 태백산으로 이어지는데 태백산맥이 대관령을 넘기전에 곁가지 하나를 늘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차령산맥으로 이 산맥은 치악산을 걸쳐 충청남북도를 관통해 서해의 대천 앞바다로 이어지는 성주산에서 마감한다.
태백산맥이 차령산맥으로 갈려나가는 지점, 즉 차령산맥의 발원지가 되는 곳에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오대산이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국내 제일의 명산으로 꼽는 성산이다.
일찌기 신라 선덕여왕 때의 자장율사 이래로 1,330여년 동안 문수보살이 1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살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으며, 이름하여 오대신앙의 본산지이다.
오대산은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동쪽으로 따로 떨어져나온 노인봉(1,338m)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이 자리한다.
원래 오대산은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별칭으로 신라시대에 자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당시 공부했던 곳이다.
그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태백산맥의 한가운데 있는 산의 형세를 보고 중국 오대산과 너무나 흡사하여 이 산을 오대산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시, 홍천군, 평창군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오대산은 1975년 2월 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면적이 298.5평방 킬로미터에 달한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을 비롯해 온 산이 아름드리 전나무로 빽빽이 들어차, 수목군락의 절경을 보여주며, 병풍처럼 둘러선 봉우리를 잇는 능선의 완만한 곡선은 한국의 미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노인봉을 시발로 동쪽으로 펼쳐진 소금강은 기암들의 모습이 금강산을 보는 듯하다고 해서 소금강이라 부르고, 또 학의 날개를 펴는 형상을 했다고 해서 일명 청학산이라고도 불리운다.
산에는 절이 있다.
산은 절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절은 산이 필요하다.
불교가 태어난 인도에서부터 세상의 중심에는 수미산이 높이 솟아 있다고 믿어왔듯, 산은 오래도록 불교적 세계관의 중심에 있었다.
오대산(五臺山)이 한국 불교에 각별한 것은 이 땅에서 극락정토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이 산이 꼭 필요했다는 뜻 아닐까.
오대산 가는 길은 그렇게 산과 산사의 인연을 곱씹게 한다.
산으로 가는 길 대부분은 절로부터 열린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찾는데 목마른 산사람들은 그곳을 비켜 가고 싶어 한다.
국립공원입장료에 문화재관람료까지 보태야 하는 게 불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대산에서만큼은 한번쯤 차근차근 산사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도 아깝지 않다.
산문 안으로 안내하는 월정사 키 높은 전나무 숲에서 옷깃을 여미고 구도자의 길을 따라 산으로 간다.
울울창창한 나무들의 짙은 그늘 속으로도 볕이 잘 드는 양명한 길이다.
생의 밑바닥 깊은 근심 속에서 깨달음의 빛줄기를 찾아 들어가는 구도자의 길답다.
그 숲의 키 높은 나무들은 온갖 부질없는 생의 곁가지들을 내버리고 오로지 맑고 청아한 세계를 향해 뻗어가는 날카로운 정신의 표상이다.
그래서 산은 부드러우나 그 속에 품은 정신은 높고 멀어 그지없이 그리운 산이 오대산이다.
오대산의 이름은 자신들의 땅을 불국토(佛國土)라 믿었던 신라인들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그 씨앗을 처음 이 산에 뿌린 사람이 자장율사다.
그가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중국의 오대산을 찾아가 오랜 기도 끝에 얻은 해답이 신라 명주 땅에 만 명의 문수보살이 산다는 계시였다.
백두대간 동남쪽 변방의 좁은 땅에서, 멀고 먼 광활한 대륙으로 진리를 찾아 떠났던 그는 바랑 가득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돌아온다.
제 살던 부모형제의 나라에도 문수보살이 있다, 더불어 부처의 사리까지 선물로 안고 돌아왔으니 그 기쁨이 어떠했을까.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들어가 풀로 집을 짓고 문수보살을 기다린 터가 지금의 월정사 자리다.
그가 이 산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난 뒤로 신라 사람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선덕여왕은 신라 땅이 곧 부처의 나라라는 자장의 뜻을 증명하기 위한 불사들을 잇기 시작한다.
오대산 신앙은 그렇게 신라의 왕권강화와 삼국통일을 위한 튼튼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이를 섣불리 탓할 필요는 없다.
종교와 정치가 깊이 엉겨 붙어 있는 것이 불교뿐인가.
자장이 이 땅에 심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부처는 멀리 있지 않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그는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부귀영화를 버렸고, “내 차라리 계를 지키면서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년 살기를 원치 않노라!”며 왕실의 부름을 끝내 거절하고 산에 남은 사람이다.
자장이 신라 땅에서 찾은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는 만월봉·장령봉·지로봉·기린봉·상왕봉이었다고 한다.
지로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연꽃처럼 펼쳐진 다섯 봉우리에 부처를 모신 다섯 암자가 세워지면서 비로소 오대산의 이름이 완성된다.
동대 관음암, 서대 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그리고 그 한가운데 부처의 사리를 품은 적멸보궁이 있는 중대 사자암.
각각의 암자마다 관음, 미타, 지장, 석가, 문수를 모시는 불상이 다르고 그에 따라 읽는 경전도 달랐다.
불교에 문외한인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십자가 하나면 족한 교회당과 달리 절에는 불상마다 부처의 이름이 다르고 그를 모신 절집의 이름 또한 각양각색이다.
석가모니 말고도 여러 보살에 나한, 사천왕에 산신각까지….
한국 불교는 온갖 숭배의 대상이 한데 모인 잡다한 종교라는 오해를 불러오는 독특한 가람 형식을 갖고 있다.
그 속에 숨은 뜻은 무엇일까.
오대산은 그것을 풀이하는 좋은 교과서다.
대대로 마을마다 높은 산자락을 섬기며 살아온 소박한 민중 신앙을 대신해 먼 나라의 이상야릇한 신을 세우려는 권력자의 뜻은 충돌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신은 자신만을 최고로 고집하지 않았다.
모든 토속 신들을 부처의 집안에 끌어안은 지혜가 한국 불교의 특징이고, 지혜를 다스리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실현한 오대산 신앙의 뿌리다.
모든 섬김의 대상을 한데 아우르면서도 그 중심에는 부처의 뜻을 꼿꼿하게 세운 곳, 이런 오대산 신앙의 형식은 이 산의 생김새를 그대로 닮았다.
오대산은 강골의 바위산이 갖는 화려함 대신 살진 흙산의 소박함이 미덕이다.
그래서 묵직하고 깊다.
부드러우면서도 듬직한 산이다.
산줄기는 백두대간의 허리 아래에서 강원도 강릉시·홍천군·평창군에 걸쳐 있고, 평창 땅을 향해 입을 벌린 말굽모양으로 뻗어 있다.
옛 기록 속의 다섯 봉우리 대신 지금은 호령봉·비로봉·상왕봉·두로봉·동대산 다섯 개의 산마루가 오대의 이름을 대신하고 있다.
모두가 1000m가 넘는 높고 우람한 산마루들이지만 어느 곳 하나 모나게 치솟은 곳 없이 반반하다.
그래서 높은 산길을 걸을 때도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걷던 사색과 소요의 느린 발걸음 그대로 쉼 없이 이어나가면 된다.
그래서 돌덩이를 부둥켜안고 높은 곳으로 억세게 몸을 끌어당기는 역동적인 바위산과는 다른 풍경들이 이어진다.
장쾌하고 화려한 산줄기가 한눈에 펼쳐지는 자극적인 풍경을 탐닉하는 사람에겐 자칫 심심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대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너른 경계는 진고개 너머 노인봉을 포함하고 있어, 다섯 봉우리로 이어지는 육산의 넉넉한 품새에 소금강지구 골산의 화려함을 보탰다.
성정이 부드러우면 많은 것을 품고 아우르는 것은 산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유순한 오대산의 살품도 기름지고 풍요롭다.
우리나라 산마다 흔하디흔한 소나무가 많지 않다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소나무는 가장 척박한 땅에 먼저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종자다.
대신 높고 추운 곳에서도 꼿꼿이 자라는 전나무가 이 산의 비옥한 품을 비집고 구석구석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전쟁의 광기어린 화마 속에서 온몸으로 오대산 상원사를 지켰던 방한암 큰스님이 마지막 가는 길에 꼿꼿하게 좌탈입망에 든 건도 이 산 전나무들의 기품을 닮았다.
오대산은 그가 꽂은 지팡이 자락에도 싹을 틔웠다.
오대산 신앙의 고갱이 터인 중대 사자암에는 방한암 선사의 지팡이에서 피어났다고 믿는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다.
전나무뿐만 아니라 두로봉 일대의 천연보호림인 주목군락과 100년을 훌쩍 넘긴 튼실한 잎갈나무와 구상나무 그리고 금강초롱과 앉은부채 같은 귀한 고산식물들까지 보기 드문 원시림을 자랑하는 생태계의 보고가 오대산 숲이다.
다른 유명 산들과 달리 등산로가 단순한 것도 오대산의 신성한 숲을 지킬 수 있던 이유다.
산세가 부드러워 이 산을 얕잡아 본 사람들이 겁 없이 달려들었다가 겨울이면 울울창창한 숲의 감옥에 갇혀 목숨을 잃는 이들도 많았다.
청정한 숲은 맑은 물을 기른다.
오대산 물은 동자로 화한 문수보살이 상원사 앞 개울에서 세조의 등을 닦아 병을 고쳤다는 전설로 그 청정함을 자랑한다.
세조는 창병(瘡病)으로 돋은 종기 뿐 아니라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피 묻은 칼날의 과거 또한 이 산에 의지해 깨끗이 씻어내고 싶었으리라.
신라의 보천과 효명태자가 날마다 문수보살에게 차를 끓여 바쳤다는 우통수의 샘물은 또 어떤가.
깊고 단단하고 무거워 다른 어떤 물과 섞여도 그 맛을 잃지 않는다는 이 물은 바다에 가 닿을 때까지도 오대산이 기른 차고 맑은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신선골·호명골·동피골·서대골·조계골을 구석구석 쓸어내린 오대천 물줄기는 정선을 지나 남한강으로 흘러간다.
한때는 오대산 우통수가 남한강의 발원지라 여겼다.
지금은 비록 태백산 검용소에 학술적 자리를 넘겨주었어도 그 맑고 깊은 물에 대한 경외심은 변함이 없다.
오대산이 속살 깊이 품었다 뿜어내는 방아다리 약수, 송천약수들도 병든 이들을 불러 모아 그 아픈 속을 어루만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대산은 일찍이 길이 열린 산이다.
신라의 태자들이 들어온 것부터 그렇고 조선시대에는 세조의 영험한 체험 이후 왕실의 출입이 잦았던 만큼 사람의 마을 가까이 열려 있다.
그럼에도 번잡하지 않다.
● 월정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창건한 고찰로서 10여 개의 사찰과 암자들을 말사로 거느리고 있다.
동대산의 만월대에 떠오르는 보름달이 유난히 밝고 좋아서 월정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월정사는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화재로 중창을 거듭하다가 한국전쟁 당시 칠불보전을 비롯한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17동의 건물과 각종 문화재들이 전소되는 비운을 겪었다.
지금의 월정사는 1964년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그 뒤로 꾸준히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 상원사
옛이름은 진여원(眞如院).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가 수도하다가 훗날 효명태자가 성덕왕이 되어 705년에 창건했다.
월정사에서 주봉인 비로봉을 향해 약 10km정도 올라간 곳에 있으며 적멸보궁을 참배하러 가는 탐방객들의 경유지이다.
월정사의 말사이지만 깊은 산사의 숙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선원으로 명성이 높다.
근세에는 대선사 방한암 스님이 27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수도 정진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용안수”’라 불리는 상원사 샘물은 물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다.
이 동종은 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 신종보다 45년이나 앞선 725년에 주조되었다. 높이 1.68m, 구경 91cm, 무게 3,300근으로 주악비천상의 문양이 우아하고 섬세할 뿐 아니라 계절에 따라 종소리가 두 세갈래로 다르게 울리는 특징이 있다.
상원사 서쪽 비로봉에서 동으로 뻗어내린 곳에 있는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묻혀 있어 우리나라 사찰 중 제일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 세조와 문수동자
조선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괴질에 걸려 치료하려 월정사를 참배하고 상원사로 가던 도중 계곡의 물이 너무 맑아 목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홀로 물 속에 들어가 몸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운 숲속에서 동자승 하나가 이 광경을 지켜보기에 불러서 등을 밀게 하고 목욕을 마쳤다.
세조는 왕의 체면에 남에게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법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동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동자는 “대왕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보았다는 말을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하고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세조는 깜짝 놀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보이질 않았고 그제서야 몸의 괴질이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세조는 병이 나은 것이 부처의 덕이요, 등을 밀어준 동자야말로 문수보살의 화신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세조는 석수에게 그가 본 문수동자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조각하게 하니 그것이 바로 지금 상원사에 보존되어 있는 국보 221호의 문수동자좌상이다.
● 오대암
월정사에 딸린 유서 깊은 암자들에는 중대 사자암(獅子庵), 동대 관음암(觀音庵), 서대 수정암(水精庵), 남대 지장암(地藏庵), 북대 미륵암(彌勒庵) 등이 있다.
중대 사자암은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로 20분쯤 걸으면 나타난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앞마당에는 방한암 선사가 심었다는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다.
동대 관음암은 월정사에서 큰길을 따라 상원사 쪽으로 400m 가량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골짜기와 함께 산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약 2km 정도 올라가면 된다.
일만의 관세음보살이 계시는 곳이다.
남대 지장암은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올라가는 큰길로 200m쯤 가다 보면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지장교(地藏橋)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 200m 가량 들어가면 된다.
일만의 지상보살을 모시고 있다.
1995년에는 기린선원을 새로 중창해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처로 이용하고 있다.
서대 수정암은 상원사에서 중대 사자암으로 오르다가 왼쪽으로 난 조그만 길을 따라 40여 분쯤 올라가면 나온다.
무량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대세지보살이 모셔진 수정암은 암자라고 하기엔 초라한 너와집으로서 염불암이라고도 부른다.
근처에 빛깔과 맛이 특이한 우통수(于筒水)라는 우물이 있다.
북대 미륵암은 상원사 입구에서 두로령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4km 가량 올라가면 왼쪽 상왕봉 중턱에 있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상두암(象頭庵)이라고도 부른다.
석가모니불을 수반으로 한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왕사를 지낸 나옹화상이 수도하던 곳으로 오대(五臺)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다.
현재 월정사 일대의 암자들은 11월 30일부터 100일간 동안거 참선에 들어가 있으므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 영감사와 오대산 사고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2km 지점에서 서북쪽으로 1km 가량 떨어진 남호암 기슭에 신령스런 거울이라는 뜻의 영감사(靈鑑寺)가 있다.
영감사 아래 있는 오대산 사고(史庫)는 조선 후기 5대 사고의 하나인 외사고로 1606년(선조 39년)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1605년 10월 재인쇄된 실록의 초고본을 봉안할 장소로 오대산 상원사를 선정하였다가 다시 월정사 부근에 사각(史閣)을 건립하여 초고본 실록을 보관하였다.
오대산 사고 실록 봉안은 태조대부터 명종대까지의 실록 초고본을 1606년 봉안한 뒤 1805년(순조5년)에 정조실록을 봉안하기까지 59회 가량 행해졌다.
그러나 이곳에 봉안되었던 실록은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강제로 접수하여 1913년 10월 동경제국대학 부속 도서관으로 옮겨 놓았다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때 소실되어 버리고 마침 대출되었던 45책만이 화를 면하는 수난을 당했다.
오대산 사고의 수호 사찰인 월정사는 사고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 실제로 영감사에서 수호하기 때문에 영감사를 일명 사고사(史庫寺)라 하였다.
이곳은 물, 불, 바람의 삼재가 침입하지 못하는 길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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