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월요일, 친구들과 소백산 1박2일 등산가기로 한 날.
오후부터 올해 가장 매서운 한파가 몰려오고 눈까지 온다고 했다.
안해는 하필이면 이런날 산에 간다고 걱정했지만, 나는 내심 신이 났다.
이왕 가는 소백산, 그 매서운 맛을 제대로 한 번 느껴보자.
우리는 8시57분 청량리발 11시29분 희방사 도착 무궁화열차를 탔다.
오랜만에 타보는 무궁화 열차. 그런데 이외로 손님이 많았다.
월요일 이른 오전이고 기온도 뚝 떨어졌는데∼∼
등산가는 사람들, 가족끼리 여행가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좀 일찍 기차에 오른 우리는 넓게 두자리씩 염치없이 차지하고 있다가 정해진 자리로 돌아왔다.
희방사역에 내리니 역사만 덩그러니 있고, 주변은 휑했다.
같이 내린 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떠나고 나니 우리만 남았다.
역 주변에 식당이 있고, 마을도 제법 형성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평범한 산골 같았다.
역사에 다시 돌아가 물으니, 희방사길로 올라가면 음식점이 있다고 안내했다.
그리하여 찾아간 곳이 '소백산옛고을밥상'
여사장은 뱀띠, 고향은 부산이고 결혼해 대구에 살다 산이 좋아 이곳에 와서 민박겸 음식점을 하면서 즐겁게 산다고 했다.
우선 여사장이 직접 담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청국장돌솥밥으로 점심 먹고 나니,
고맙게도 귀한 삼산주를 서비스로 내 놓았다.
수제 막걸리를 1.8L 패트병에 담아 배냥에 넣었다.
등산로 주변 우람한 사과나무 그리고 주엽나무
주엽나무 가시는 어마무시하다. 지옥문을 지키는 나무가 있다면 이럴까?
우리가 흔히 보는 장미나 아까시 가시는 껍질이나 잎이 변한 것인데 비해
주엽나무 가시는 가지가 변한 것이며 자라기 까지 한다.
그래서 다른 나무 가시에 비해 훨씬 위협적이고 강력하다.
희방폭포 앞에서
희방사를 지나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짜는 기막히게 잘 잡은 것 같다.
소원대로 눈 덮인 소백산 능선도 보고, 칼 바람도 맞고.
연화봉을 거쳐 제2연화봉,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에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거의 텅 비어있을 줄 알았는데∼∼
친구 팀, 가족 팀 등등.
이곳 제2연화봉 대피소는 천문대 견학, 자연생태 탐방 등 교육적인 목적으로도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삼겹살을 굽고, 김치찜하고
금문고량주, 무겁게 메고 온 막걸리, 팩 소주 ....
많이도 마셨다.
누구는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고 하고, 누구는 밤새도록 한 숨도 못 잤다고 하고,
나는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 7시 30분, 소백능선에 해가 떠 올랐다.
온통 백색 천지.
밤새 하얀 눈이 푹푹 내려 눈 세상을 만들어 놨다.
8시30분 경 겨울 중무장을 하고 비로봉을 향해 출발했다.
연화봉까지는 도로가 연결돼 있고, 차가 지나가면서 만들어 놓은 눈 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다.
그 다음 부터는 먼저 간 사람이 러셀해놓은 눈길을 따라 걸었다.
연화봉 부근에서 본 단양쪽 풍경.
멀리까지 낮은 산들이 눈 아래로 펼쳐저 있어 전망이 툭 트여 있다.
소백산이 높기도 하지만 단양 쪽 산들은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이 소백산의 멋진 풍광을 만들고, 또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앞에서 러셀을 하면서 가던 사람들은 지쳤는지 우리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이젠 우리 팀이 맨 앞에서 러셀을 해야 했다.
어떤 곳은 등산로 흔적을 짐작하기도 어려웠고,
어떤 곳은 바람에 눈이 쌓여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곳도 있었다.
연화1봉에서 바라본 완만한 비로봉 능선.
능선의 아름다움은 소백산이 최고다.
이 부드러운 능선이 오늘 같이 춥고 바람부는 날이면 악마의 능선으로 바뀐다.
특히 천동삼거리에서 비로봉까지 600m,
비로봉에서 어의곡삼거리 400m, 전체 1km는 지옥의 능선길이다.
온도 영하 20도 이하, 바람 초속 20m.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아래로 떨어진다.
암갈색 목도리는 입김에 하얗게 변했다.
강풍에 바로 걸을 수도 없고, 얼굴은 차갑다 못해 따가웠다.
비로봉에서는 인증사진만 찍고 바로 어의곡계곡 방향으로 하산했다.
집으로 돌아온 이틀 뒤,
코등이 검게 변하면서 피부막이 생겼고 코구멍도 헐었다.
비로봉 능선 1km 그 맹렬한 추위에 코가 얼었던 것이다.
내가 겪었던 가장 추웠던 날의 등산이었다.
얼었던 코 주변은 얇게 피부가 벗겨졌다.
공짜로 미용박피를 한 셈이다.
힘든 산행이었지만, 날씨도 좋았고 풍광도 아름다웠고∼∼
추억에 남을 멋진 산행이었다.
만약 또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가겠는가?
대답은 주저없이 예스.
'생태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대산국립공원 (0) | 2018.06.30 |
---|---|
아프리카의 벚꽃 자카란다 (0) | 2018.06.25 |
설악산 겨울 눈 산행 (0) | 2017.12.30 |
벌판에 홀로 우뚝 선 돌산, 월출산 (0) | 2017.11.29 |
설악산 형성과정 (1) | 2017.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