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팔 할은 무엇일까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시인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일부분이다.
요즘 부쩍 생각나는 시 구절이다.
종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뉘우치지도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지만 종의 아들이라는 멍에는 어린 나이에 너무나 괴롭다. 그러기에 바람처럼 방랑할 수 밖에.
하지만 그 바람이 젊은 서정주를 만든 팔 할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자기를 만든 팔 할은 고독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12살 때 “선진국 일본을 보고 배워라” 는 아버지 이병철의 지시에 따라 일본에 유학 간 그는 같이 놀아줄 사람 없는 매우 외로운 생활을 했다.
어린 시절 고독한 일본 유학생활 탓에 그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혼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생각을 해도 아주 깊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를 만든 팔 할은 무엇일까?
사랑, 적극적인 사고, 우월적 DNA, 친화력, 유머감각, 신체적 결함, 가난, 세상에 대한 불만, 열등감, 질투심 등등
나를 만든 팔 할을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일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제시해 줄 것이며,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줄 것이다.
그런데 아이너리하게 개인의 정체성은 긍정적인 면보다 어둡고 부정적인 부분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서정주의 시적 재능을 더욱 승화시킨 것은 그의 바람이었고, 이건희를 최고 경영자로 만든 것은 어릴 적 고독함에서 형성된 퍼스내리티였다.
하지만 철저함과 진정성이 없다면 자신이 겪은 경험이 자신의 올바른 자화상을 만드는데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농협이 겪는 경험은 매우 새롭고, 매우 어렵다.
이 경험이 미래 농협의 자화상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지금 우리에게 있다고 본다.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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