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 진 일보
전농노 울경본부장이 사퇴하고 노조 본부장 소속인 도산농협 노조가 해산되었다. 2월초부터 시작된 전농노의 공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부담감이 많았었는데 분위기를 반전 시키는 좋은 전환점이 되었다. 전농노와의 대치 상황에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딘 셈이었다.
5월 1일자로 인근 광도 농협에 합병 당하는 도산농협으로서는 전농노 본부장이 소속 직원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자칫 잘못되면 자율 합병이 아닌 강제 합병 당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될 경우 직원들 신분을 보장 받을 수 없었다. 도산 전무가 직원들을 설득하고 노조 본부장과 담판 짓고,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노조 본부장의 거취를 논의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한편 부실 조합을 합병한다는 반대를 어렵게 무마시킨 광도농협 조합장 입장에서는 강성 노조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노조를 해산하지 않으면 합병을 할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고, 4월 2일 결국 노조를 해산하고 본부장은 사퇴하게 되었다.
합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도산농협 임직원들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무이자 자금 회수 조치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도산 전무의 역할 또한 중요했다. 정리대상 직원이었던 자신의 신분 보장을 위해 노력한 측면도 있었지만, 공은 인정해 줄 수 밖에 없다. 왜 하필이면 경남에서 노조가 강경투쟁하고, 경남본부는 뭘 하고 있는가? 라는 질책에 전전긍긍했는데, 이젠 좀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또한 자신있고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사령탑을 잃은 전농노는 우선 직무대행 체제로 갔다. 조직을 추스리고, 새로운 전략을 짜기 위함인지 공격은 잠시 주춤했다. 일주일이 지난 4월 7일 나타난 프랭카드는 "비리 주범 비호하는 농협중앙회 경남지역본주장은 퇴진하라" 였다. 지금까지 회장님만 공격하던 것에서 전선이 확대 된 것이었다. 공격목표가 분산되었으니 우리로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지역본부를 더 강경하게 공격하겠다는 신호였다.
이와 더불어 전농노 본부가 전략적으로 전개하는 시군금고 수익 환원 투쟁을 전술적으로 행동에 옮겼다. 시군청에 금고관련 정보, 즉 예금평잔과 금리 등의 공개를 요구했다. 행정자치부에서 금고계약서는 공개할 수 있지만 구체적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지도해도 정보공개법을 근거로 재요구까지 하였다. 심의회를 거쳐야 하는 재요구를 받은 자치단체로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고, 담당 부서에서는 해결책을 찾지 못해 우리쪽을 원망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전농노는 우리측 협상파트너를 통해 요구사항을 전달해 왔다. 내용인즉 "자금회수 조치 사과하라. 지역본부장 인사조치하라. 재발방지 약속해라" 세가지였다. 수용할 수 도 없고, 또한 지역본부 단위에서 답변할 수 없는 사항이기에 본부에 요구하라고 거절했다.
급기야 이들은 4, 19일 기습적으로 지역본부 항의 방문했고 본부장실 접견실을 점거했다. 마침 본부장님은 외출 중이었다.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왔다기에 실무자를 통해 답변해줄 것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요청했다. 결국 들어 온지 2시간이 지나 요구사항을 접수하고 유감을 표현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너무 쉽게 끝났다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금 지나 전농노 홈페이지에 올라온 내용은 완전히 당한 것이었다. 경남지역본부 건물에 그들의 주장이 담긴 프랑카드가 걸린 사진이 올라 있었고, 경남지역본부를 점거했다는 내용이었다. 전농노는 당초 그것이 목적이었는데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 접견실 안에만 있으면 아무 일 없겠지 했는데, 그들은 준비 했고 우리는 방심한 결과였다.
뒷 수습이 난감했다. 전농노가 어떤 단체인데 순진하게 대처해 점거까지 당했냐는 본부장님의 질책도 있었지만, 이미 전농노 홈페이지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본부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캄캄했다. 본부 관련부서에 사정할 수 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노조 본부장 사퇴라는 궁지에 몰린 전농노의 예기치 못한 행동이다. 노조 본부장을 사퇴 시킨 공을 인정해 달라.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재삼 사정했다.
우리도 당할 수만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이들에게 밀리게 되고 연말에 있을 금고 재계약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켰다. 팀장 회의에서 전농노에 정면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모았다. 문제가 더 악화될 것을 염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기는 곪아야 낫는 법. 전농노의 공격이 귀찮아 수세적 미봉책을 펴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국면을 돌파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팀장은 전농노를 실무적으로 이끌고 있는 지역농협을 찾아가 조합장을 만나 전농노가 주장하는 금고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듣고 현재 보다 더 좋은 개선 의견이 있으면 제시해 달라, 그 방안이 옳으면 적극적으로 건의하겠다고 했다. 물론 조합장은 제시하지 못했다. 금고 예금이 얼마 되지 않는 군지역의 농촌형 농협에서 전국 어느 농협 보다 무이자 저리자금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데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본부장 직무대행 소속 지역 농협 조합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향 농협이며 내가 지부장을 했던 지역 농협이다. 과거 가공사업 실패로 합병했고, 최근에 또 인근 농협을 합병한 조합으로 경남에서는 무이자 자금을 가장 많이 받은 조합중 하나다. 소속 직원이 노조 본부장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데, 나도 참 입장이 곤란하다. 그리고 다선 조합장이고 자금 수혜를 그렇게 많이 받으면서 농협에 해를 끼치는 행동은 막아야 될 것 아닌가라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는 말을 했다.
다음날 당장 반응이 나타났다. 조합장에게 압력을 넣어 전농노를 탄압한다고 항의 전화가 왔다. 그리고 전농노 직무대행이 사퇴의사를 표명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고, 그 여파가 어떻게 번질지 곤혹스럽기도 했다. 아무튼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한 결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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