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
전도연의 칸 영화제 여우 주연상 수상 소식은 일찍 찾아온 무더위 속에서 청량한 바람같은 낭보였다. 영화를 본 다음날 아침 들은 소식이기에 더더욱 기뼜다.
지난 일요일, 안해와 함께 창원에 내려와 처음으로 본 영화가 밀양이었다. 요즘 영화가 젊은이 취향 위주라 선뜻 영화관 가기가 내키지 않았었는데, 밀양이라는 영화는 한 번 봐야지 했었는데 안해가 먼저 졸랐다.
지난번 임권택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도 보고 싶었었는데 상영하자마자 막을 내려 보지 못했다. 밀양도 어쩔지 몰라 미리 롯데시네마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일요일 아침 조조로 예약했다. 흰 머리가 부담스러워 모자를 쓰고 걸어서 극장으로 갔다. 아직 10시도 안됐는데 거리는 후덥지겁하고, 유흥타운 상남 거리는 버려진 쓰레기와 기분 좋지 않은 냄새로 유쾌하지 못했다.
3층 매표소는 벌써 젊은이들로 왁자지껄했다. 안해가 표를 바꿔 오기를 기다렸다가 5층 "밀양"상영관으로 가니 의외로 나이든 부부가 많았다. 반갑기도 했다. 어쩌면 이들도 젊은이 못지 않게 좋은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일 것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기념비적인 영화 "실미도" "왕의 남자" 성공요인도 중년의 힘이 아니었던가.
밀양, Secret Sunshine은 내용이 무거운 영화였다. 제목자체도 쉽지 않다. 죽은 남편, 그것도 썩 좋은 관계도 아니였던 것 같은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아들과 함께 이사를 오는 것 자체가 특이한 설정이다. 그러나 밀양에서의 새 출발은 더 견딜 수 없는 고난을 안긴다. 아빠를 그리워하고, 소심한 아들의 성격을 바꿔 보려고 보낸 웅변학원 원장은 돈을 노리고 아들을 유괴 살해한다.
이후부터가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의 연속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여주인공, 신애는 갑자기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신앙 간증을 하고, 거리 찬송을 하는 등 종교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을 유괴 살해한 범인을 용서해주기 위해 교도소로 면회를 갔다.
범인의 얼굴은 너무나 편안했다. 더구나 범인은 자신도 종교에 귀의했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피해자인 자기가 아직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은 용서를 할 수 있는가? 분하고,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신애는 맨 정신으로 살아 갈 수 없었다. 그것은 삶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여기서 신애, 전도연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 폭발하는 분노, 터지는 울음 연기는 처절하고 실감났다.
그럼에도 신애는 죽지 않았다. 이것이 보통의 인간일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죽는 것으로 돼 있는데 영화에서는 살아서 고통을 감당하는 것으로 돼 있단다. 더 처절하며, 현실적인 구성 같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신애는 밀양 옛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듯 머리를 직접 가위로 잘라 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지푸라기며 빈 세제 통으로 너절부레한 수채구멍으로 머리카락이 날려 가고 한 줄 빛, Secret Sunshine이 비춰진다. "밀양은 어떤 곳이 예요?" "뭐 특별히 다른 거 없어요." 신애와 카센터 주인과의 대화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난해한 라스트신 이었다. 여운이 남아 출연자와 제작자 자막이 끝날 때까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구원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은 아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치는 햇볕같은 것이다. 밝은 쪽은 밝게 빛나고 어두운 쪽은 어둡게 나타난다." 어느 신문에서 본 글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천국도 여러 층인가?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