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
의령농협 총회 참석키로 했던 일정을 바꿔 남해로 갔다. 의령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선대의 산소가 있는 곳이라 겸사겸사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 중앙본부로 출장가신 본부장께서 남해군지부장이 남해전문대학 졸업식에 참석하신 지사님과 관내 유지들에게 오찬을 베푸는데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화를 걸어와 참석하게 되었다. 지사님도 남해군수도 대학 동문이기에 이 참에 인사하고 알아 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정을 변경해다.
아침 티미팅을 간단히 마치고 9시 40분경 출발했다. 날씨는 화창하고 벌써 봄기운이 느껴졌다. 며칠전 화개에 갔더니 동백식당 김사장이 올해는 예전에 비해 벚꽃이 일주일은 빨리 필 것이고 했는데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일찍 피면 장사에 좋지않냐고 했더니 늦게 피면 필수록 그만큼 벚꽃시즌이 길어져 장사에는 유리하단다.
남해군지부에 들렸다가 식당으로 갔다. 아직 군지부장도 지사님도 군수님도 오지 안았고, 서너분 낯선 사람과 인사를 하고 멀쓱하게 밖에서 서있니 방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안내를 했다. 그런데 내 자리가 이상했다. 메인 테이블이 아니라 따로 어색하게 만들어진 4인용 상에 내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참으로 황당하고 막막했다. 지사님과 함께 들어온 남해군지부장은 자기 자리를 양보했지만, 오늘의 호스트가 군지부장인데 그럴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전에 두세번 뵌적이 있는 지사님과 악수를 하면서 아는 사이라는 뉘양스를 풍기면서 본부장님께서 보내서 왔다고 하니 잘 오셨다고 했지만 알아보지는 못하는 느낌이었고, 대학 동기인 남해군수도 마찬가지였다. 외톨이 상에 앉아 있으니 테이블 배치도에서는 도청 국장이 옆자리에 앉는 것으로 돼 있었는데 행사 진행 남해군청 공무원만 내앞에 앉는 것이 아닌가.
이 상황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색한 내색을 밖으로 표출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 천만. 잔치집에 객으로 초빙돼 말석 한 귀퉁이에 앉아 있는 비참함이 들기도 하고, 경남 농협을 대표하는 위치에서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괴감마져 들었다.
지사님의 인사말, 군수의 건배제의 그리고 환담, 덕담, 남해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달라는 지역유지들의 건의사항 등등을 들으면서 가시방석 같은 자리에서 애써 평상심을 유지하며 빨리 끝나기를 기다려도 시간은 왜 그리 더딘지. 어색함을 잊을려고 이 음식 저 음식 젖가락질을 해봐도 불편함은 여전했고, 음식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찬이 끝난 후 분하고 섭섭한 마음에 지부장에게 왜 이런 자리에 나를 불렸냐고 불평반 항의했더니 자기도 군청에서 지역단위 행사에 도단위 인사가 참석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않다고 난색을 표하는 것을 지역본부의 요청이 있고 해서 어렵게 자리를 만들었고, 자리를 바꿔 앉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미리 지역본부와 협의했어야 옳았는데 아쉽고 아쉬웠다.
의전이 얼마나 중요한데. 개인의 창피함은 별개로 치더라도 기관의 위신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는데. 70분간의 오찬시간은 나에게 악몽이었다. 그리고 이 악몽같은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 것인가.
분한 마음에 일분이라도 일찍 남해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런 내색을 내는 것도 옹졸한 생각이 들어 새남해 농협 서면지소에 들렸다. 마침 새남해 조합장이 지소에 계셨고, 오래전부터 여러가지로 신세를 져온 유옥근 과장을 그곳에서 만나 반갑고 반가웠다. 내가 도동 지점장으로 있을 때 미조 해녀횟집에서 고객들과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남겨 주었으며, 지난해 조감위원들을 모시고 남해에 왔을 때 좋은 숙소며, 자연산 전복맛에 기분 좋게 일박을 하고 간 것도 유과장 덕분이었다.
시금치 선별포장장을 방문했다. 사오십대 주부들이 시금치를 다듬어 포장을 하고 있었다. 양지 바른 곳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이곳 시금치 맛은 전국에서 알아 준단다. 남해의 상징인 보물섬 상표를 붙인 시금치는 이곳의 주요 소득작목인데, 수집하고 선별표장하여 유통시키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란다. 마을마다 순회 수집해야 하고, 일일이 수작업하여야 하고, 매일 농협 유통이나 공판장에 출하는데 담당 상무는 밤잠을 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였다.
마늘가공공장에 들려 작업 현장을 견학하고 전임 조합장 출신 군의회 의원이 같은 윤씨라고 소개해 인사하고 종친회 얘기, 이런저런 농협 얘기를 하다가 창원으로 돌아왔다. 오면서도 내내 찝찝한 마음 가시지 않았다. 그냥 없었던 것으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에 남해 군수에게 전화를 걸어 뒷 수습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다음날 본부장님 실에서 티 미팅을 마치고 남해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군 기관장과 유지들의 오찬에 내가 참석하여 자리를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대학 동기라는 말을 건넸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하면서 동기인 줄 몰라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전에 도동 지점장으로 있을 때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더니 자기도 안면이 많았다고 하면서 다음에 자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나니 답답함이 풀렸다. 오히려 잘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만나야 할 사람인데, 평범하지 않게 만난 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