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정기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지역본부에 근무하는 23명의 직원이 참여했다. 평소 등산을 하지 않던 사람도 다수 동참하였는데, 본부장님의 강한 의지가 한 몫 했다.
아침 5시 30분 출발하여 문산 휴게소에서 아침밥을 먹고 8시 5분전에 중산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을 배려하여 중산리와 법계사 중간쯤에 위치한 자연학습원까지 버스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관리사무소 직원이 통제했다. 법상 18인승 이상 버스는 운행을 할 수 없고, 또 주차장이 만차라 대형버스를 돌릴 수 없다고 하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두는 농민신문사 이연한 부장이 섰다. 혼자서 지리산 등산을 즐긴다는 이 부장은 차림부터가 달랐다. 반바지에 수륙양용 신발을 신었고, 배낭은 다른 사람 2,3배는 되었다. 음료수, 구급약, 비상시 필요한 장비 등등 전문산악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차림이었다.
몇몇은 이번 산행을 위해 새로 등산복과 등산화를 마련했다. 쿨맥스 셔츠, 스판 바지, 고어텍스 등산화 등 기능성 소재를 이용한 장비가 대세였다. 창원 주변 3,4 시간 산행에는 장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7,8 시간 걸리는 지리산 산행에는 장비가 나쁘면 그만큼 고생을 더 할 수 밖에 없다.
등산로에 들어서니 우거진 녹음이 햇볕을 가려 주었고 떼죽나무 꽃, 찔레꽃, 후박나무 꽃 향기가 은은하게 반겨 주었다. 기분도 상쾌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자연을 즐긴다는 기분으로,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천왕봉에 갈 수 있도록 천천히 천천히 정상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첫 휴식처인 칼바위 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물을 마시고, 초콜렛으로 당분을 섭취하고 다시 출발했다. 왼쪽으로 가면 장터목 산장이고 오른쪽 길이 천왕봉 가는 길이다. 여기서 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내리막이나 평지 길이 없는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칼바위에서 법계사까지가 첫 고비이자 가장 힘든 코스였다.
선두는 최대한 천천히 간다고 했지만 후미는 자꾸 뒤 처졌다. 대오를 형성해 갈 수도 없었다. 선두는 선두대로, 후미는 처져 힘들게 뒤따랐다. 힘들기는 누구나 마찬가지. 천왕봉을 정복해야 한다는 의지, 정신력으로 버틸 수 밖에. 나는 후미 선두에 서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전진했다.
두번째 휴식처인 망바위까지 힘겹게 도착했다. 천왕봉 정상까지의 중간쯤이다. 첫번째 난관을 돌파한 셈이다. 뭐든지 시작과 처음이 힘든 법.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중도에 그만 둘 수야 있겠는가. 로타리 산장 샘에서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법계사를 지났다. 본부장님 일행은 법계사에 들어가고 선두 그룹 몇몇은 법계사 입구에서 쉬고 있었다.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다. 부처님 말씀, 즉 법이 지배하는 불국정토와 인연에 따라 움직이는 사바세계와의 경계에 있는 사찰이라는 의미다. 지금은 등산로가 잘 나 있어 쉽게 접근 할 수 있지만 그 옛날에는 아무나 갈 수 없었고, 천국에 가기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선두를 추월해 법계사 위쪽에 있는 전망 좋은 너럭바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중산리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오는 바위 끝에 서니 온 몸이 서늘해지고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 좋은 전망대에서, 공기 속에서 담배를 기분 좋게 들어 마시는 별난 취향의 사람도 있다. 담배가 피로회복제란다. 한 때 담배를 피웠는지라 그 기분은 알 것 같지만....
이제 정상까지는 2키로 남았다.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지금부터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여기까지 올라와서 신체적 부상없이 힘들어 하산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진 것일 것이다. 수차례 동료들과 천왕봉 산행을 했지만 힘들다고 되돌아가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정상에 가까워질 수록 정상을 정복해야 겠다는 정신력은 강해지는가 보다.
우리가 쉬는 동안 선두는 다시 우리를 앞서 나갔다. 천천히 걷는다고 했지만 되돌아 보니 조금씩 조금씩 뒤쳐지고 있었다. 나도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지라 속도를 내 페이스에 맞출 수 밖에 없었다. 호흡과 발걸음을 맞춰가며 뚜벅뚜벅 전진했다. 휴식을 취하는 선두를 만났지만 쉬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아 쉬지 않고 계속 올랐다.
드디어 천왕봉 정상. 출발한지 3시간 10분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혼자 쉬지 않고 2시간 40분만에 올라온 적도 있지만, 단체 산행 치고는 빠른 편이었다. 가픈 숨을 고르고 둘려보니 경제부본부장이 눈에 띄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우리보다 2시간 먼저 중산리를 출발했다고 했다. 천왕봉을 함께 꼭 올라야 겠다는 집념은 알아줘야 한다.
천왕봉에서 기념사진찍고, 천왕봉아래 헬기장에서 고사를 지냈다. "유세차 이천칠년 정해년 유월 육일에 경남 농협 지역본부장 이재관과 직원 일행은 지리산 청왕봉에서 삼가 천지신명께 농업, 농촌, 농협의 발전과 직원 화합을 비는 고사를 올리나이다." 본부장님이 제주가 되고 우리는 따라 정성스레 고사를 올렸다.
지혜롭고 경이로운 산인 지리산은 어머니 품같이 푸근한 산이다. 경남, 전북, 전남 3개도에 걸쳐 넓은 치마자락처럼 넉넉하게 감싸고 골골마다 마을을 이뤄 삶의 터를 제공하고 있다. 이상향을 찾는 사람도 세상을 등진 사연 많은 사람도 지리산을 찾았으며, 독립군도 남부군도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요즘은 사업 하는 사람, 승진을 앞둔 직장인들도 지리산의 기를 받기 위해 천왕봉을 오른단다.
충무김밥으로 점심을 하고, 소주를 몇 잔 마시고 장터목 산장을 거쳐 하산했다. 맑은 날인데도 불구하고 천왕봉 주변과 지리산 능선은 안개 구름에 쌓였다 개였다 수시로 변했다. 장터목산장에서 중산리까지 하산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크고 작은 돌밭길이라 조심스러웠지만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길은 아름다웠다. 뱀사골 계곡도 멋지고, 칠선계곡도 빼어나지만 장터목 계곡도 마음에 들었다.
폭포 아래 계곡에서 휴식을 취했다. 명경같이 맑은 물에 맨발을 담그니 얼음같이 차가웠다. 이보다 더 시원한 세족은 없을 것이다. 이 좋은 곳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산사나이 이연한 부장이 준비해 온 것이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자연은 나를 싫다 하지 않지만 나는 자연에 동화될 수 없어 아쉬운 발걸음으로 하산했다.
산행은 무사히 끝났다. 다들 성취감에 피로함은 잊었고, 기뿐 표정이었다. 단지 뒷풀이 겸 저녁 식사자리에서 일어난 꺽지회 해프닝으로 당황스럽기도 했다. 1급수 민물에서만 사는 깨끗한 고기지만 민물회를 안 먹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천왕봉 산신령이, 기념에 남을 천왕봉 등정을 오랫동안 잊지 않도록 배려해준 해프닝인지도 모르겠다. 천왕봉 등정과 꺽지회, 지역본부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으면 한다.
<< 축 문 >>
유세차 이천칠년 정해년 육월육일에 경남농협 지역본부 본부장 이재관과 직원 일행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삼가 천지신명에께 농업, 농촌, 농협의 발전과 직원 화합을 비는 고사를 올리나이다.
우리 농업은 인간과 환경을 지키는 생명산업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협상 타결 등 개방화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농업의 위기에 대처하고 우리 농업인들이 더욱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 경남농협 전 임직원은 경영혁신을 위해 온 열정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노사간, 계통조직간 인화단결과 원활한 사업 협력을 통한 상생 속에서 2007년도 경남농협이 모든 부문에서 1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고,
무엇보다 우리 경남 농협이 무사고 농협으로 올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간절히 소망하오니 감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저희 경남농협 임직원이 활기찬 마음과 건강한 몸으로 사업추진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가정에도 평안과 행복이 함께 하도록 도와 주소서.
이제 경남농협 전 임직원은 정결한 제수를 정성껏 마련하여 천지신명 올리오니 삼가 흠향 하소서.
상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