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지점 새출발
도동지점은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다. 아니, 나의 첫인상은 뭐 아직도 이런 지점이 있는가 였다. 지금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지만, 꼭 새마을회관 구판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럭저럭 손익을 맞춰가기 급급한 지점에서 고정투자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가 보다. 지점장실은 손님을 모시고 상담하기에는 너무 누추했고, 직원 휴게실은 창고 같았고, 객장과 영업장 어디 할 것없이 금융기관 지점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
지점장으로서 첫번째 과제는 바로 영업점 환경을 바꾸는 것이라 판단하고 지역본부에 자문을 구하고 총무부, 금융기획실에 설명과 설득을 해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사무실 인테리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경험 많은 총무과장이나 차장이 잘 할 줄 알았는데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어 업체에 자문했더니, 왈 배정된 예산으로는 내부 전체 공사는 할 수 없단다. 벽은 아쉬운대로 페인트 칠만 해주겠다고 했다. 또 업자는 농협 공사는 배정된 예산이 부족해 으레 그렇다고도 했다. 할 수 없이 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 대금 결제문제로 계약을 포기했다. 업자는 자기 외에 맡길 업체가 없다고 자신했는지 상당히 뻣뻣하게 나왔다.
반쪽만 공사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배정된 예산으로 내부공사를 전부 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우선 인테리어 사업을 한 경험이 있는 우수 고객 김사장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행복하게도 김사장은 자신에게 자문을 구해 온 것에 대해 대단히 고마워 하며 토일요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월요일 만난 김사장은 사무실에 타일이며, 천정 보드며, 필요한 자재 샘플을 손수 구해 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예산으로는 넉넉치는 않지만 가능은 하겠다고 하면서 지점장이 결정을 해줘야 한다면서 3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예산이 빳빳하여 돈을 남길 수 없다. 예산을 배정한 쪽에 인사를 안 해도 되는가? 또 사무실 빚도 있고 직원들 회식도 해야 할 것인데 비용 조달을 안 해도 되는가? 마지막으로 업체에 맡길 경우 이 돈으로 도저히 할 수 없다. 천정공사, 벽체공사, 바닥공사 따라따로 공사해야 하는데 감사에 지적당하지 않겠는가? 였다.
비용을 조달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수용할 수 있지만, 내부 규정위반 여부는 판단할 수 없었다. 계약규정을 확인하니 부분발주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 있고, 본부 계약담당자에게 문의한 결과 지점장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답변을 듣고 김사장에게 공사를 맡기기로 했다.
참으로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 보통 사람 같으면 돈도 안되는 일을 맡지 않을 터인데, 김사장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고 일을 맡긴데 대해 오히려 감사하는 것 같았다. 인테리어가 잘된 은행지점을 같이 방문하기도 하고 자재상에까지 가서 맘에 드는 자재를 고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자기 일도 느지막하게 오전 10시쯤 시작하고 토일요일은 쉬는 사람이 나보다 일찍 자재를 챙기고 그 날 할 일을 점검했다.
기존 건물 영업점 인테리어는 신축건물에 비해 여러 가지로 어렵다. 우선 월요일에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공기를 맞춰야 하고, 영업대 등 설치물을 둔 채로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까다롭다. 특히 타일공사는 높낮이와 줄을 맞춰야 하는데 진주에는 그런 기술을 지닌 전문가가 없어 부산에서 웃돈을 주고 모셔 왔다.
공사를 통해 나도 배운 것이 많다. 벽체를 직각으로 세워 석고보드를 붙이고, 천정자재는 뭐가 좋고, 타일은 어떻게 붙이고, 몰딩은 어떤 것이 좋으며, 하다못해 지점장실 벽지는 어떤 종류를 어떻게 붙이는지를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김사장은 모든 공사를 FM대로 했다. 그래야만 오래가고 품위를 느낄 수 있단다.
공사가 끝나고 월요일 출근한 직원들은 눈이 둥그레 졌고, 나 또한 고급 갤러리 같은 우아함이 느껴졌다.
새로운 탄생을 자축하고 고객을 더욱 친절하게 모시겠다는 마음으로 김일군 부본부장님과 김영길 지부장님 그리고 고객들과 함께 '새출발다짐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김사장에게는 은으로 만든 감사패에 온 직원의 이름으로 그 고마움을 담아 드렸다. 김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 자축연을 했는데 김사장이 내논 술과 안주가 더 많았다.
<새출발다짐행사 인사말> 새단장와 함께 새출발다짐행사를 갖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히 바쁘신 중에도 저희 도동농협을 격려해주시기 위해 오신 김일군 부본부장님, 김영길 진주시지부장님께 직원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번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내일같이 도와주신 김종국 사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과 공사중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마디없이 계속 이용해주신 고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도동농협 새출발다짐대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이 도동농협의 선배지점장님과 직원들의 노고가 밑받침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우리 도동농협이 전환점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행권은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영업전략을 펴고 있으며, 관내 주요 고객인 중소기업은 종래의 약속어음 발행을 줄이고 기업구매자금대출제도를 도입하는 등 금융관행 또한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주시청이 이곳 도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진주지역의 중심 권역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만약 저희 도동농협이 이러한 변화의 추세에 맞춰 변하지 않는다면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우선 점포환경을 개선하였습니다만, 이것은 껍데기고 시작에 불과하며 고객을 유치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는 일은 앞으로 남은 과제입니다.
저는 도동농협의 비전을 앞으로 1년이내에 예금 1,000억원, 대출 800억원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지점장이 앞장 설 것을 약속 드리며 직원 여러분께 2가지 당부를 드립니다. 먼저 자기 능력의 70% 정도는 도동농협 발전을 위해 쏟아 주십시오. 그리고 부단히 자기개발을 하고 창조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도동농협은 분명히 발전할 것이며 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농협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직원 여러분 힘을 합쳐 새로 출발한다는 자세로 한번 해봅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