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가을이다. 가을은 앞으로 나아가는 계절이 아니라 되돌아 보는 계절인 것 같다.
이제 숲의 색깔도 발산하는 푸르름이 아니라 안으로 숨기는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가 오만해질 수 있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구나 한고 감사한다.
지난 봄 이곳에 와서 뭘 모르기도 했지만 바쁘게 보냈는데 지금와서 돌아보니 서툰 짓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기대만큼 신통치 않아 맥 빠지기도 하는데, 이것도 분수 모르고 조급증만 앞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난 8월말부터 실적이 안좋아 일을 챙기고 회의도 자주 하는데 주변에서 그런다고 당장 나아지는 것 아니니 슬슬하라고 충고한다.
그렇게 하니 여유가 생겨 좋기는 좋다만, 이제 뭘 할까 시간이 남아 불안하다. 참 팔자 좋은 고민인가. 어쩌면 사람은 바쁠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다른 잡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니까.
아무튼 요즘은 실적은 안 좋지만, 사무실 형편도 나아지고 업무도 어느정도 파악되니 여우가 생겨 좋다만, 한편으로 불안해지는 것 같다.
天高馬肥. 여기에는 중국인들의 두려움이 숨어 있다고 한다.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 수확을 마칠 때면 북쪽 변방의 유목민들이 여름동안 잘자란 풀을 먹여 살찐 말을 타고 침략해 오는 그 공포감이 한자성어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인의 이 북방 컴플렉스가 원인이 되어 지구상에 가장 큰 구축물인 만리장성을 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숱한 인민의 목숨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쏟아 부으면서.
아무튼 가을은 중국이 만리장성을 쌓았듯이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본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지키는 길이며 봄이 되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