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추석연휴동안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를 봤다.
사무실 여직원에게 그 영화얘기를 했더니 뻔한 얘기라면서 별로라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
영화속에 폭 빠졌다가 마지막 제작자, 엑스트라 출연자 이름까지 다보고 나오면서 상당히 괜찮은 영화라고 했는데,
그런 평가를 들으니 내가 이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릴 때 보아온 대나무숲, 보리밭, 산사 등에 그렇게 친근감이 갈 수 없고, 뭔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는데 우선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다.
마치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 어린 딸에게 손목을 잡히고 들판 길을 걸어가는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면.
그리고 아름다운 시절의 억새꽃 핀 가을 길 장면,
625때 먹고살기 위해 미군에게 몸을 팔고 군부식 조금 얻어 머리에 이고 가는 슬프고도 억센 어머니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던 슬픈 자연미를 이 영화에서도 느껴졌다.
그런데, 무엇보다 요즘처럼 엽기가 유행하고 다 바꿔야 살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인데,
유지태가 이영애한데 '사랑이 변하는 거니'라고 고리타분하게 말하는 장면에서 아 이거구나 하는 멍한 충격을 받았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야 식의 가벼운 사랑이 아니라 멍청하리 만큼 우직한 일편단심의 사랑.
이것이 바로 요즘 같은 어지러운 세상에 소금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은 아닐까.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매일 오후면 역에 나가 바람나 집 나간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한 세대전의 여인의 지순한 사랑.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사랑을 하는 여인에 비해 할머니대의 사랑을 하는 남자의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게 보이면서
요즘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역시 변하는 세태중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