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
"땅을 파고 묻혀 죽고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여름 무더위속에서 읽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본 글이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느껴진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나, 따끈한 커피 한잔을 나누다 보면 엄청난 슬픔이나, 분노도 녹아내림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같다.
그리고 슬픔과 분노는 그 자체의 해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 의해 해소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여름 휴가는 서울집에서 보냈다. 너무 편하게 보내다 보니, 몸 컨디션은 오히려 엉망이 되고 마음은 왜려 불안해지더라.
직원들도 6일씩 휴가를 보내다 보니 사무실 분위기도 느슨해지고 업적도 도내에서 하위권을 맴돌아 이러다간 창피당하는 것 아닌가 초조한 마음마저 일었다.
지역본부에는 서면 대책보고를 제출하고, 본부로부터는 채권관리를 잘못한다고 지적받았다.
요즘 우리 지점 직원들은 밤늦게 까지 야근을 한다.
그리고 이 느슨한 분위기를 다잡지 않고는 안되겠다 싶어 매일 오후 5시 반에 책임있는 직원들을 모아 회의를 하고 하나하나 챙기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경영이 잘되는 것보다 잘 안되는 것이 경영수업(?)에는 도움이 되며, 직원들을 결속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꼼수가 아닌 정수 경영, 채찍보다는 당근 경영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순수와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각오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돼 불만이다.
옛 사람들은 아름다움(美)을 '양(羊)이 크다(大)'는 의미로 썼고, 모르는 것(모름)이 아니라 아는 것(아름)을 아름답다고 했다는데,
요즘은 반대로 새로움이라는 생각을 많이 갖는다.
변화가 없었던 농경사회에서 변하지 않고 생존할 수 없는 산업사회가 된데 그 근본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고인 물보다 흐르는 물이 좋으며 가끔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이 곳 생활에 때로는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아침에 걷는 남강변은 참으로 좋다. 지난 봄 유채 밭이었던 고수부지에는 달맞이 꽃이 은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영화 '해바라기꽃'에서 본 러시아의 해바라기 밭 정도는 아니지만, 달맞이꽃 밭은 오랫동안 시선을 잡고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여기에다 아침 풍경을 더욱 한가롭게 만드는 흰 두루미, 작은 붉은 꽃을 실새 없이 피우는 백일홍..... 등등.
내가 요즘 쫒기는 가운데서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얻는 원천이다.
진정한 자유란 자유로운 사람은 느낄 수 없을지 모른다. 무엇엔가 구속당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구속당함으로써 행복했노라'는 말은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일시적이며, 쾌락추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