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의 아침
아침에 여유가 많다는 것이 서울 생활과 크게 다른 점이다. 서울에서는 출근 시간이 1시간 이상 돼, 아침은 언제나 쫓기는 듯 바쁘게 보냈었는데,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사무실이 있고 게다가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니, 때론 아침의 한가함이 더 외롭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게다가 챙겨주는 사람없으니 되려 늦잠을 잘 수 없고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새벽 5시도 되기 전에 일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아침시간 죽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요즘 나는 인근 산복 도로를 산책하면서 아침을 보낸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신선한 냉기를 맞으면 온 몸의 세포가 되 살아나고 산뜻하다. 언덕길을 따라 몸을 풀다가 가볍게 조깅을 한다. 아침이면 더 바빠 종종걸음으로 산보하는 주부들을 만나기도 하고,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하는 젊은 부부의 행복 넘치는 모습을 마주치기도 한다. 새벽산책 겸 운동은 몸과 마음을 맑게 한다.
산복도로는 하동읍내를 조망할 수 있고, 양지바른 남향이라 계절의 변화를 빨리 느낄 수 있어 좋다. 지금은 매화꽃이 골짜기를 따라 번지고 있어 새벽 찬바람 속에서도 봄기운을 느낀다. 가로불빛을 받은 매화꽃은 요염하기조차 해 조용한 아침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산복도로가 끝나는, 섬진강이 넓은 백사장을 만들고 급하게 부딪쳐 만든 벼랑 위 쉼터는 전망 좋고 맨손체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두팔 벌여 싸늘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때 짜릿하고 상쾌한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어둠을 몰아내는 여명을 따라 유유히 섬진강이 모습을 드러내고 부지런한 물새가 여유 부리며 강을 따라 낮게 활주하는 아침 풍경. 지리산 골골을 거쳐 산 내음 강 내음을 싣고 불어 오는 신선한 아침 바람. 이런 아침에 섬진강 이쪽 저쪽 하동땅과 광양땅에 지천으로 번지고 있는 매화꽃을 바라 보면서 아침을 시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특별한 행운이며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는 자연의 변화를 느끼면서 자연의 리듬 감각을 되찾는 것 또한 바쁜 도회지 생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창조는 행복한 조건 속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며 많은 실패는 행복한 나태에서 생겨날 경우가 많은 것이기에, 복된 아침이 오히려 나를 나태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2002.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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