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이야기(2)
지리산 깊은 골, 화개골짜기
화개면은 주로 화개동천을 따라 길게 형성돼 있다. 화개동천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발원한 물과 남부능선에서 발원한 물이 합쳐 이룬 섬진강 지류다. 화개면의 소득원은 여타 농촌지역과 다르다. 잔설이 남아 있는 2월부터는 고로쇠물을 채취하고, 곡우 무렵부터는 녹차잎를 따고, 가을에는 밤을 수확한다. 그리고 연중 화개를 찾는 사람들을 상대로 관광 수입을 얻는다.
화개동천 주변은 농경지는 드물고, 녹차밭이 대부분이다. 전에는 벼 농사를 짓기도 했으나, 녹차 소득이
높아지자 녹차밭으로 바뀌었다. 화개 녹차는 보성 녹차와 구별하여 야생녹차라 한다. 보성 녹차는 일제시대 조성된 일본종인데 비해, 화개 녹차는 신라시대 대렴공이 중국으로부터 가져온 씨앗을 심어 야생상태로 오늘날 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쌍계사 밑 산 기슭에 차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5월초에 하동야생녹차 축제가 열린다.
화개의 별미는 은어와 참게다. 은어는 수박향이 나는 회유성 민물고기로 보리가 팰 무렵이 회로 먹기
가장 좋다고 한다. 요즘은 양식이 대부분이고 자연산은 찾기 힘든다고 한다. 버드나무횟집에 예약을
하고 잘 부탁하면 사장이 직접 잡은 자연산 은어를 맛볼 수 있다. 참게도 양식이 대부분인데, 최근 어린
치어를 많이 방류해 자연산이 늘었다고 한다. TV '맛대맛'에 출연한 적이 있는 동백식당 참게장과 참게탕이 일품이다. 뜨거운 쌀밥에 참게장을 얹어 파래김에 싸 먹는 맛, 끝내준다.
화개장터에서 벚꽂길 터널을 지나 4㎞쯤 가면 쌍계사 입구에 도착한다. 화개동천 다리를 건너 조금
오르면 쌍계(雙溪)라고 크게 새긴 석문이 나타난다. 쌍계(雙溪)는 최치원이 썼다고 한다. 계속해서 숲속
길을 따라가면 대웅전에 이른다. 쌍계사는 1000년 이상 된 신라 고찰이지만, 옛 맛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쯤 불일폭포로 올라가는 경내 돌다리 부근에는 주황색 상사화가 피어 있을 것 같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지는 2.5㎞쯤 되고 중간에 주막집이 있다. 불일폭포는 60m 높이의 지리산에선
보기 드문 장쾌한 폭포다. 전에는 폭포 밑 까지 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폭포 옆 전망대에서만 관찰 할
수 있다.
불일폭포에서 계속 올라가면 내삼신봉이 나타나고 다시 삼신봉이 나타난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산하면
청학동이다. 삼신봉에 서면 완만한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치 쥘부채의 손잡이같이
지리산 주능선을 향해 중앙 부근에 위치해 있고 지리산의 기운이 모여드는 느낌이 든다. 삼신봉은 지리산 주능선 중간 부근을 가로 지르는 남부능선에 위치해 있다.
쌍계사 입구에서 화개동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좁은 계곡에 들어서게 된다. 마을도 사라지고 음식점
도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계곡옆 도로변에 '쉬어가는 누각'이 나타난다. 차를 마실 수 있고, 식사를 할
수 있고, 숙박도 할 수 있는 운치 있는 모텔이다. 2층 테라스에서 차 한잔 하면서 바라보는 지리산 자락
신갈나무 숲은 멋있다. 특히 5월 신록이 절정인 무렵, 바람에 일렁대는 신갈나무 잎은 물결치는 호수 같다.
신흥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칠불사로 가는 길이고, 지금은 길이 끊겼지만 옛날 보부상이 등짐을
고 화개재로 넘던 길이다. 칠불사는 토끼봉 아래 해발 약 80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대웅전 옆에는
아자방(亞字房)이 있는데 이곳은 亞 자와 같은 형태의 2중 온돌방으로, 한번 불을 때면 약 3달
이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칠불사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장유보옥을 따라 들어와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해
지고 있다. 절 아래 천비연이란 원형의 연못이 있는데, 허황후가 왔다가 연못에 비친 성불한 아들 그림자만 보고 돌아 갔단다.
신흥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세이암이 나타난다. 최치원 선생이 귀를 씻고 지리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과 같이 도로가 없었던 시절에는 정말 첩첩 산중이었을
것이다. 쇠락할대로 쇠락한 신라말, 개혁의 꿈은 있었으나 신분상 제약으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었던
선지식인 최치원이 속세와 인연을 끊었던 곳이 여기가 아니었을까?
세이암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편에 쇠점터 입구가 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70년대 초반 시월유신 공포 후 암울했던 시절, 대학을 막 졸업한 신혼 부부가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았던 이곳에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쇠점터 앞 계곡은 유속이 완만하고 넓어 가족 여름피서하기 안성맞춤이고, 꼭 서부영화에 나오는 사금채취 외딴집 같은 느낌이 든다. 또 대나무 숲으로 은폐 된 화장실에서 느낄 수 있는 배변의 쾌감은 노상 배설의 쾌감, 선암사 해우소 보다 상쾌하다.
다시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오른편에 대성골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대성골은 계곡이 깊고 숲이 울창하다. 등산로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계곡 등산 느낌이 덜한 것이 아쉽다. 계속 올라가면 남부능선을 만나게 되는데,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청학동 뒷산 삼심봉과 만나고, 왼편으로 능선을 타고가면 세석평전으로 연결된다. 대성골 입구에서 세석대피소 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
화개골 마지막 동네는 의신이다. 벽소령까지 2시간 정도면 올라 갈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지리산역사관에는 빨치산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주능선이 가까워 이동이 용이했고, 남부능선을 통해 보급투쟁이 용이했던 빗점골, 대성골, 산청의 거림골이 빨치산들이 많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은 의신 마을 위 빗점골에서 사살되었다.
토지의 무대, 악양 평사리
악양은 화개와 하동읍 중간에 위치해 있다. 앞 쪽은 섬진강과 맞대고 있고, 뒤쪽은 1000미터가 넘는 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이들 산 아래 악양면 전체가 분지처럼 생긴 골짜기 하나에 들어서 있다.
산과 강으로 다른 지역과 차단된 평사리들은 농사짓기에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봉감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최근 우리밀 재배를 많이 하고 있으며, 농약을 덜 쓰고 비료를 덜 쓰는 자연농법이 널리 보급돼 있다. 이렇게 생산한 농산물은 찾는 사람이 많아 말 많은 유통걱정은 덜 한다고 한다. 농협을 다니다 그만두고 자연농법으로 단감농사를 짓고 있는 분으로부터 ‘왜 농민이 유통까지 신경 쓰나? 유통업체가 서로 가져가겠다고 하도록 농사를 지으면 되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악양은 뭐니뭐니 해도 소설 토지의 주 무대이다. 평사리 들이 내려다보이는 형제봉 중턱에 최참판댁이 있다. 최참판은 실존 인물이 아니고 순전히 소설 속 가공인물이며, 최참판댁도 소설에 맞춰 최근에 조성되었다.
2001년부터 늦가을에 토지 문학제가 열리고 있는데, 그 해 처음으로 평사리들을 방문한 박경리 여사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평사리들이 아름답다고 했다고 한다. 진주여고의 전신인 일신여고를 다녔던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해 평사리들을 소설의 주무대로 만들었고, 덕분에 악양은 문화탐방지로 유명해졌다.
최참판댁 뒷산이 형제봉이다. 성제봉이라고도 부르는데, 백두대간의 정기가 마지막으로 불끈 솟아 올랐다. 섬진강 건너 호남정맥의 정기를 받은 백운산과 서로 마주 하고 있다. 형제봉 능선 중턱에 있는 고소성에 오르면 평사리 들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섬진강 맑은 물과 흰 백사장을 볼 수 있다. 형제봉 정상 까지는 약 3시간 등산 거리다.
평사리공원은 평사리들과 섬진강 사이에 조성돼 있다.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넓은 백사장이 일품이다. 흰 강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섬진강 모래채취가 성행했는데, 상태보전 차원에서 모래채취를 중단해 엄청난 모래가 쌓여 있다. 평사리공원 벤치에서 섬진강의 멋을 느낄 수 있다.
평사리들 안쪽에 매암차문화박물관이 있다. 차와 관련된 유물을 관람하고, 차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는 곳이다. 잘 가꾸어진 다원에 조성된 다실에서 마시는 차 한잔은 참으로 운치 있다. 위안부할머니 초청 행사도 개최하는 등 차문화 보급과 동시에 나눔의 행사도 함께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악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먹거리는 맑은 물로 빚은 탁주와 이곳에서 생산된 콩으로 만든 손 두부다. 여기에 솔잎 한우 등심도 일품이다.
악양 사람들은 악양 골짜기가 옛 사람들이 찾던 청학동이라고 한다.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지형이며 백두대간의 정기마저 받고 있으니 한 눈에 명당 터임을 느낄 수 있다. 이웃 화개 사람들은 최치원 선생이 신선이 된 화개골이 바로 청학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청학동이란 마을이 실제로 존재하는 횡천 묵계골짜기를 대부분 청학동으로 믿고 있다.
'아는 것 만큼 보인다.'
하동 출신인 내가 졸업 35주년 기념으로 하동을 찾는 동기들에게 하동 이야기,
특히 이번 방문지인 화개와 악양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것이
더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이 글 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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