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최저 기온 영하 6.8도, 바람은 초속 12m.
입춘을 지난지도 열흘이 됐는데 왜 이리 춥지. 지난 며칠간 봄날처럼 포근했기에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는 되는 것 같았다. 청조산악회 시산제하는 날은 원래 이렇게 추운건가? 그래도 최근 3년중에는 올해가 가장 포근한 날씨라고 집행부에선 알려줬다. 지난해에는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었단다.
올해 동기 산우회 총무를 맡은 책임감 때문인지 아침 8시에 집을 출발해 9시30분에 구기치안센터앞에 도착했다. 올해 청조산악회 회장을 맡은 김종탁 동기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귀여운 산적 박의만 총무는 부인과 함께 떡, 김치, 돼지머리고기, 막걸리 등을 기수별 참여인원수에 맞춰 나눠주는 수고를 하고 있었다.
이 때쯤이면 등산객들로 붐빌 시간인데 갑자기 닥친 한파 때문인지 등산로입구는 한산했고, 정류장에 마을버스가 도착하면 두터운 겨울 등산복에 장갑, 목도리를 한 동문들만 한 무더기씩 내렸다. 반쯤 인도를 점령하고 있는 우리 일행 사이로 짧은 치마에 아이보리색코트를 걸치고 손에는 예쁘게 포장한 초콜릿 상자를 든 소녀가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밸런타인데이’. 직장 부하 여직원으로부터 고작 ‘의무초콜릿’ 정도 받아본 내가 소녀의 ‘밸런타인데이’ 감성을 알리 있겠나? 사랑하는 님을 향한 심쿵한 소녀의 마음은 이 추운 날씨에도 봄처럼 따뜻했겠지.
등산로는 보기보다 미끄러웠다. 요 며칠 비가 내려 습도가 높았고, 등산로 돌맹이에 흡착된 수분이 얇은 얼음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도 계곡물은 얼음장밑으로 콸콸, 여름철보다 세차게 흘려 색다른 겨울 등산 맛을 안겨줬다.
우리 동기는 9명이 참석했다. 이재욱 청조인 편집장이 동기가 총 산악회 회장됐다고 축하겸 오랜만에 참석했다. 한 30명은 참석해 축하해줬으면, 바랬는데 지난해 보다도 적은 인원이 참석해 아쉬움이 컸다.
비봉능선에 올라서니 아래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푸른 솔잎에 상고대가 맺히고 있었다. 높은 습기, 강한 바람, 영하의 온도가 만들어 내는 작품이었다. 특히 강한 바람에 그대로 맞서고 있는 비봉, 그 아래 상고대로 덮인 숲은 한 폭 진경산수화였다.
드디어 포금정사지. 매년 청조산악회 시산제를 하는 곳이다. ‘세기의 굽잇물에 산맥처럼 부품 높다’ 예사롭지 않은 내용의 플래카드. 여기가 부산고 산악회 시산제장소임을 알려줬다. 위로는 11회 차석배 고문님 아래로는 56회 막내 김수홍 후배님, 200여명의 동문들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석했다.
먼저 총회를 열어 전년도 결산보고와 승인절차를 이행하고 시산제에 들어갔다. 김종탁 신임 산악회장의 인사말, 안병로 산행대장의 산악인선서, 금년도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축문 낭독, 강신제순으로 이어졌다.
고사상 중심에 자리 잡은 복스럽게 생긴 파안대소 돼지머리에는 입 가득 돈봉투가 채워졌다. 많은 분들께서 개인 찬조를 하였고, 기수별로도 거의 빠짐없이 찬조했다. 특히 김종탁 회장 200만원, 27회 산우회에서 100만원, 청조경제인회 50만원, 동창회 30만원 찬조하는 등등 약 850만원 거금이 금년 청조산악회 발전을 위해 모아졌다.
12시 30분에 시작한 시산제는 13시30분에 끝났다. 많은 동문들이 참석하고, 찬조하고, 축원하는 가운데 성황리에 마쳤다. 앞으로 있을 매월 정기산행도 더도덜도 말고 오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나눠준 떡과 막걸리로 허기를 채우고 하산 뒤 두부전골, 라면사리를 안주삼아 뒷풀이를 하고 헤어졌다.
올해 우리동기는 많은 친구들이 진갑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참 열심히 살아왔다. 육십갑자를 꽉 채운 을미년을 보내고 새로 시작하는 병신년, 욕심내지말고 즐기면서 또 한 해를 채워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아프지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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