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18일 1박 2일로 도산서원과 청량산을 다녀 왔다.
지난 10월 화산이 만들고 시간이 조각한 산, 청송 주왕산을 다녀 온 후 인근 봉화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청량산에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이왕이면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고 싶은 마음에 '도산서원에서 예던길 걸어 청량산까지' 1박2일로 여행을 떠났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7시 버스를 타고 10시에 안동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터미널에서 도산서원을 바로 가는 교통편은 없었다.
마침 버스 대합실에 몇몇 모여 계신 어르신에게 여쭈봤더니 친절하게 시내버스를 타고 교보생명앞에서 내려 67번 버스를 갈아 타라고 하셨다.
시내버스에 오르니 버스안은 왁짜지끌, 시골 어르신으로 만원이었다.
마침 안동 5일장날이었다. 안동시장통 왕복 6차선 도로도 인파와 차량으로 막혔다.
우리가 탄 버스는 가다서다를 반복, 10시 50분에 출발하는 도산서원행 버스에 가까스레 올랐다. 도산서원까지는 40분 걸렸다.
도산서당과 도산서원 탐방을 마치고 나오니 점심때가 지나, 배도 출출했다.
하지만 주변에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은 없었다.
할 수 없어 오댕과 컵 국수로 요기를 때웠다.
퇴계명상길.
이 길을 걸으며, 격물치지 궁리를 하고 사단칠정이 어떻게 발현하는지 명상에 잠긴 대철학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퇴계 종가. 평일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그런데,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 까지 길 안내가 없었다.
퇴계선생이 다녔던 길이 정비가 돼 있고 그 안내는 당연히 있을 줄로 생각했는데........난감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 물었봐도 대답이 시원 찮았다.
퇴계 종가를 뒤로 하고 아스팔트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때 이른 산불조심 계도차량이 지나고, 사람 하나 없는 길을 친구와 둘이 계속 걸었다.
한 참을 걸어 이육사문학관 부근에서 잠시 머뭇거리는데, 마침 67번버스가 왔다.
버스기사께 청량산 가는 길을 물으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
그런데, 마침 할머니 한 분이 길을 안다고 하시면서 종점에서 내라면 된다고 하셨다.
그 종점이 백운지라는 마을이다.
그 할머니는 우리가 찾던 예던길 입구에 살고 계셨다.
안동에서 백운지까지는 하루에 3번 67번 버스가 다닌다. 우리가 탄 버스는 막차였다. 운이 좋았다.
낙동강, 상류쪽이라 강푹이 좁아지고 물 흐름도 얕아진다.
늦 가을 들에는 가을 걷이가 한창이었다.
단무지용 무우를 수확하는데, 무우 뽑기가 끝나 인부는 보이지 않고 포크레인과 트럭만 보인다.
이곳 주민들은 토지를 빌려 주고 외지인이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대추도 감도 그냥 나무에 달려 있다. 경제성이 없어서인지, 수확할 사람이 없어서 인지?
덕분에 점심을 시원찮게 먹은 우리는 요기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퇴계오솔길, 예던길 입구를 찾았다.
도산서원에서 포장도를 따라 걷다가, 도중에서 67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백운지에서 내려 낙동강변을 따라 30분쯤 걸었다.
안내판도 없고, 주민들에게 물어도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었다.
어렵게 찾아왔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예던길을 접어들어 산모퉁이를 도니 눈에 익은 청량산도 반가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넓은 개활지가 나타났다. 어린 보리싹이 자라고 있는 밭, 그리고 저 멀리 농가.
한 폭의 그림이다. 봄이 되면 청보리가 물결칠 것이고.. TV에서 본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 장면이 오브랩됐다.
강 건너편 학소대. 절벽에 강하게 부딪친 강물이 만들어 놓은 여유이다.
농암 고택이다.
옛날 잘사는 양반집이라 주변에 민가가 없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가 했더니 최근에 옮겨 복원한 집이었다.
안동댐으로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후손이 어렵게 터를 구해 복원했단다.
오후 6시쯤, 청량산 입구 민박 음식촌에 도착했다.
어느 집에 갈까? 내일 아침밥을 일찍 해줄 수 있는 집으로 정하기로 했다.
전화를 해본 결과 '쉼터민불매운탕'집에서 7시30분에 해 줄 수 있다기에 그곳을 숙소로 정했다.
이틑날 아침, 민박집 사장이 추천한 코스다.
좀 힘들긴 하고 산행 안내도에도 없는 코스지만 청량산 경치를 잘 볼 수 있는 코스란다.
청량지문을 지나자 마자 왼편 등산로로 접어 들었다.
가파른 산길을 얼마간 오르니 앞이 확 트이고, 가파른 절벽이 나타났다.
아래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수직의 절벽 중턱에 아찔한 등산로가 위태롭게 이어져 있었다.
정안이라는 승려가 수도를 했고, 퇴계의 제자 금난수가 공부했다는 금강굴
여여송. 금강경의 구절, 如如不動에서 따온 이름.
수직 낭떠러지에서도 의연한게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고 있다.
코스 전망도 아름답고, 볼거리도 많지만 계단이 많은 게 흠. 계단 적게 잡아도 3000개는 될 듯.
퇴계선생은 청량산을 정말 좋아하신 것 같다. 곳곳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드디어 청량산 최고봉 장인봉.
청량산은 흔히 보는 산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산봉우리 모양이 눈에 띄게 다르게 느껴지는데, 이는 청량산이 퇴적암인 역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은 완만한 능선으로 이루어진 흙산이거나 산봉우리가 뽀족뽀족한 화강암산이 많다.
이에 비해 청량산의 모양은 가파르면서 부드럽다. 진안 마이산이 그 특징을 잘 보여준다.
화강암산은 오랜세월 침식되고 풍화되면서 바위가 쪼개지면서 떨어져 나가는데 비해 퇴적암산은 구성물질인 자갈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다.
주왕산도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응회암 절리가 떨어져 나가 형성되었기에 청량산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신라명필 김생의 흔적도 있고, 최치원의 흔적 총명샘도 있다.
옛날 청량산에는 20여개의 암자가 있는 불교의 요람이었다.
지금은 청량사와 응진전만이 남아있다.
삼각우송. 지장보살의 화신이란다.
청량사 창건시 무거운 짐을 날랐던 뿔 셋달린 소가 죽자 묻었던 곳에 자란 가지가 셋인 소나무.
讀書如遊山.
글읽기가 산을 유람함과 같다.
청량산은 퇴계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퇴계 가문의 봉산이었으며, 도산서당에서는 불과 40여리로 한나절 거리였다.
퇴계는 평생 이 산에 들어와 학문을 닦았고, 많은 시를 남겼다.
청량산은 퇴게 삶의 동반자이자 스승이었다.
스스로 '淸凉山人'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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