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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탐방

사량도에서 처사처럼 사는 동인


"봄 도다리 쑥국 먹으려 오소"

남창원농협 백승조 조합장으로 부터 초대를 받았다.

은퇴하고 벌써 근 2년째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마당에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남쪽으로부터의 봄 꽃소식에 마음이 들떠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장소는 사량도에 사는 김영근 후배님 집.

초대받은 사람은 백조합장이 평소 형님이라 부르는 몇 사람이었는데, 동행한 사람은 이신형 사장과 나 두사람이었다.

백조합장과 김영근 후배님은 서로 사돈간.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9시30분 발 통영행 버스를 타고 오후 2시에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백조합장의 승용차를 타고 가오치 부두로 가서 오후3시 출발 사량도 여객선을 탔다.  


통영 가오치항에서 사량도 금평항까지는 약 40분 소요.

김영근후배집은 사량도 아랫섬 맨끝자락. 최근에 개통한 사량대교를 넘어 해안길을 가다가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덥수룩한 야인 모습을 한 후배가 반갑게 맞이했다. 몇년만인가?

그는 정년퇴직을 4년이나 앞두고 갑자기 명예퇴직을 했다.

주변에선 말렸지만 그의 뜻을 꺽을 수 는 없었다.    

  



집은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배기에 풍경처럼 앉아 있었다.

마을은 전형적인 어촌 마을. 다 떠나고 두 가구만이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여기서는 모든게 다 친구처렴 느껴질 것 같았다.

바닷바람에 우는 종소리, 일직 핀 민들레, 샛노란 수선화, 튼실하게 자란 쑥, 바위틈 제비꽃 그리고 잡초와 돌맹이 들  ....

 


   


때론 방파제에 나가 낚시를 하고, 채소를 가꾸고,

토종벌도 키우고 .....








백조합장이 창원에서 직접 준비해온 소고기, 소주, 맥주 그리고 쌈채소와 양념,

채마밭에 자생하고 있는 양귀비 잎까지...

탁~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술 맛, 끝내줬다.

내 세상에 없었는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  


나 같은 은퇴한 도회인들이 가지는 로망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1평반 찻실 겸 독서방도 만들어 놓고,

바다를 향해 샷, 골프 연습망도 처놓고.


채마밭을 가꾸고, 나무를 심어 가꾸고.....

외로운 곳에서 외로움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부려웠다.  

자연과 외로움을 벗삼아 사는 모습이 현대판 처사같았다.


나이들어 욕심을 버리고 나무처럼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년을 4년이나 앞두고 은퇴한다는 선언에 모두 놀랐었다.

그런데 그는 은퇴 2년전부터 준비해왔다고 했다.

살 곳을 찾기위해 욕지도에도 가보고, 하동에도 가보고...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이곳을 정했다고 했다.

축대를 쌓고, 집을 짓고, 2년 동안 오로지 혼자서 준비했다고 했다.


그리고 무남독녀 딸을 출가시키고, 폭탄 은퇴하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매사에 철두철미했다. 그리고 매우 섬세한 성격을 지닌 것 같았다.

책장에는 나무에 관한 전문가 수준의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고,,, 공구실에는 각종 농기계와 도구들로 가득했다.

언젠가 필요할 때 쓰기 위해 보너스 나올 때마다 사 모았다고 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백조합장이 창원에서 준비해온 도다리 쑥국을 끓였다.

매년 봄마다, 백조합장이  택배로 보내줘 집에서 봄의 별미를 느끼곤 했는데, 올해는 남도 사량도에서 그 맛에 빠졌다.


이곳 양지바른 곳에서 해풍맞고 자란 쑥을 뜯어 넣어 봄 향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