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통광장

아시아정체론(헤겔,마르크스)

우리나라

1. 윤치호 (위인인지 모르겠지만)

 구한말 시대의 인물인 윤치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 및 미국 유학생입니다. 최근에는 민영환과 안창호에게 밀리고 있지만, 애국가 작사가일 것이라는 추정도 강하게 제기됩니다. 그는 구한말 개화파의 대표적 인사이며, 한 때 독립운동도 펼쳤습니다. 그러나 노년기에는 대동아공영권을 옹호하는 친일파로 변모합니다.

 윤치호의 인종주의는 대단합니다. 서양 학자들의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받아들여, 각 인종 간에는 선천적인 우열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앵글로 색슨 족 - 아리아 인 - 슬라브 족 - 황인 - 흑인, 대략 이런 순서입니다. 그러나 그는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이 서구화를 통해 백인들과의 우열을 줄였다면서 조선인들도 어느 정도 그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개화론도 이런 인종주의와 서구화 옹호론에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가 본래 일제에 반대한 것도, 서구에 의한 지배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열등한' 아시아인에 의한 지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점이 많습니다.

 

 윤치호 뿐 아니라, 서재필 등 독립신문을 간행했던 개화파 인사들 대다수가 서구의 학문을 맹종했기 때문에 이런 인종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2. 거의 모든 조선 중기 이전 성리학자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넣어도 무방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배운 성리학 자체가 중화사상에 철저히 물들어 있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성리학자들은 나름대로 인종주의를 발달시켰습니다. 그들에게 '중화' 중국인들은 현재 가장 발달한 민족이었습니다. '소중화' 조선인들은 중국인만 못하지만 기본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공부만 하면 중국인 못지 않게 계발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랑캐'들은 그런 능력이 부족한 열등 민족이었습니다.

 

 흔히 이런 사상을 얘기하면 성리학자들의 사대주의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사대주의는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중국은 다만 문화적으로 가장 발달한 나라이며 조선이 배울 가치가 있다할 뿐이지, 특별히 선천적으로 우등한 민족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즉, 선진국이니 따라 배우자는 얘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오랑캐에 대한 인종주의는 자못 심각합니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점점 극단화되어 아예 유목민족에 대한 경시, 과도한 학문 중시를 낳습니다. 이는 결국 탁상공론 뿐인 정치와 허울뿐인 국방력을 낳는데 일조합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청나라의 영향이 들어오면서 다소 생각이 변합니다. 청나라는 만주족도 교화되면 한족만큼 유능할 수 있다는 사상을 유포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의 학자들도 인종 간 우열은 후천적 극복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꿉니다.

 

외국

 1. 시어도어 루스벨트

 20세기 전반 이전의 모든 미국 대통령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습니다. 물론 미국 대통령들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백인들이 인종주의자들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와 자유"를 외쳤지만, 모두 버젓이 노예를 두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특히 명시한 이유는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 때문입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러일전쟁 중재 역할을 인정받아 19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과 협상하면서 필리핀을 얻는 대신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인정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댄 근거가 가관입니다. "조선인은 미개하기 때문에 타민족의 지배를 받아 근대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미 근대화를 경험한만큼 조선을 잘 지도할 수 있다."

 중요한건 이런 그의 생각이 그의 나쁜 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런 생각은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서 매우 보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조차도, 노벨상 심사위원들조차도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2. 존 스튜어트 밀

 당시대 최고의 진보적 학자였다는 존 스튜어트 밀도 인종주의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우선 철학계에서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논리를 한층 발달시켜, 당시 사회주의의 공격을 받고 있던 자유주의에 이론적 방패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뿐 아니라 정치학에서 그는 자유주의의 범주를 부르주아에서 보다 넓혀 이념의 지지기반을 넓힌 것으로 여겨집니다. 경제학에서 그는 공리주의 철학을 기초로 하여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절충을 시도했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제3의 길'을 150년 앞서 추구한 선구자라고나 할까요. 그 뿐 아니라 그는 페미니즘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 인물입니다. 그는 여성 참정권을 옹호했습니다. 마르크스와 함께 최고의 19세기 학자로 일컬어지는 밀은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위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19세기 백인이었고, 인종주의자였습니다. 그가 바로 '앵글로색슨-아리아-슬라브-황인-흑인' 순의 인종 우열 관계를 주창한 인물입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 동안 자유주의 세계에서 밀의 영향력은 지대했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사상은 윤치호, 서재필 등 조선 유학생들에게 여과없이 유입되었습니다

 

3. 프리드리히 헤겔

 변증법이라는 철학 및 역사학 이론을 만든 헤겔. 그는 한편으로 국가주의를 옹호해 뒷날 히틀러와 나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인종주의는 단순히 그의 애국주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내세운 변증법이라는게 결국 역사의 진보를 신뢰하는 사상입니다. 역사는 계속 진보한다는게 그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의 진보 혹은 발전 과정에서 앞서 있는 민족도 있을 것이고, 뒤처져 있는 민족도 있을 것입니다. 헤겔은 아시아를 '정체의 왕국'이라 불렀습니다. 발전 과정에서 뒤처져 있다는 것이지요. 유럽이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을 통해 역동적인 진보를 계속하고 있는 반면에, 아시아는 봉건적 전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헤겔 이후 많은 사상가들이 헤겔의 관점을 따랐습니다. 어느 예수회 선교사가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부른 것도 사실 헤겔의 관점과 일치합니다. 조선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조용한 아침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부터인가 이 말이 평화의 나라를 뜻하는 말로 변했지만요.

 

4. 칼 마르크스 

 한국인들에게  '진보=좌파=사회주의=마르크스'라는 등식은 상당히 익숙합니다. 그들에게  마르크스가 미국 대통령과 다름없는 인종주의자라는 주장은 상당히 놀라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통해 유럽의 인종주의를 파헤친 에드워드 W.사이드 교수는 마르크스야말로 전형적인 인종주의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이를 그의 사회주의 이론에 접목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장하는 공산주의 단계도 결국 서유럽이 거쳤던 중세-부르주아 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아시아는 여전히 중세 유럽과 비슷한 전근대 단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헤겔의 오리엔탈리즘이 분석 단계에서 그쳤다면, 마르크스의 그것은 아시아인의 특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사상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 '오리엔탈리즘'의 맨 첫 페이지에 올려진 그의 말로서 알 수 있다.

 "그들(동양인들)은 자기 스스로를 재현할 수 없고, 재현되어져야 한다"

 그들 스스로 할 수 없으니 남이 해주어야 한다. 즉, 아시아인들은 수동적이며, 능동적인 변혁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더 나아가면 '능동적인' 유럽인들이 아시아인들을 위해 혁명을 일으켜주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유럽 주도의 식민주의를 옹호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5. 막스 베버

 막스 베버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유명합니다. 하나는 합리화와 관료제라는 근대 사회의 특성을 밝힌 것입니다. 둘은 자본주의의 문화적 요인을 밝힌 것입니다.

 

 막스 베버의 명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베버의 오리엔탈리즘을 여실없이 드러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던 요인을 근면과 검약을 중시하는 청교도 윤리라고 주장합니다. 청교도가 자본주의를 꽃피울 수 있는 요인을 갖고 있다면, 다른 종교 및 문화에는 자본주의에 방해되는 요인이 있겠지요. 그래서 베버는 '유교와 도교'라는 저서에서 중국이 자본주의를 발달시키지 못하고 전근대로 남은 이유를 유교와 도교로 지목합니다. 

 서구의 근대는 아시아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그 문화 때문에 ---이게 막스 베버의 사상입니다. 아시아인의 본성에서 전근대성의 원인을 찾은 마르크스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역시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뒷날 제국주의를 옹호하는데 이용됩니다. 뒷날 선교사들은 아시아 식민지에서 "아시아가 지배받는 것은 전근대적이기 때문이다. 근대화되려면 기독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선교사들은 선교만 한게 아니라 근대적 교육도 보급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이 그 이유로 기독교를 따르게 됩니다. 개화론자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독교를 따른건 우연이 아닙니다. 

 

========================================================================

몇몇 이름을 거명했지만, 사실 인종주의자는 그들만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상징적 인물이기에 거명했습니다.

 

 

 

 

'소통광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기독교 역사, 가쿠레 기리시탄  (0) 2017.06.06
산(山) / 박목월  (0) 2017.02.16
설악부  (0) 2017.02.16
난간 위의 고양이  (0) 2016.10.30
(시)  (0) 201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