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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여행

에베레스트 트레킹2 - 촐라패스넘어 칼라파트라까지


트레킹 일주일째.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촐라패스를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넘은 한국 단체 트래커들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힘든 코스 다 걷고 내려갈 일만 남은 자들의 여유가 한껏 느껴졌다.

근데 일행 중 세명이 고산증 이기지 못해 헬기를 타고 하산했다는 무서운 말을 했다.

과연 우리는 모두 무사히 촐라패스를 넘을 수 있을까?



빙하가 만들어 놓은 모레인 너덜지대를 건너는 것이 오늘의 여정이다.

어제 고쿄리를 미리 올라 오늘 걸을 트레킹거리는 보통때 절반 정도다.

하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어느정도 적응할만도 한데 콧물감기, 설사에 어깨와 허리 근육통, 식욕부진이 나를 힘들게 했다.

 


드라그나그에 점심 때가 조금 지나 도착 했다.

오늘 트레킹은 일찍 끝난 셈이다.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체력을 비축해 내일을 대비해야 한다.

내일은 이번 트레킹 중 가장 힘든다는 촐라패스를 넘는 날이다.

일찍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다.

수천 아니 수만 마리 양을 세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머리는 밤이 깊어갈수록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자야해' 하는 '나'와 고산에서는 '숨을 열심히 쉬어야 해'하는 '나' 사이에 밤새 씨름을 했다.

결국 한 숨을 자지 못하고 새벽을 맞았다. 그래도 이상하게 머리는 상쾌하고 맑았다.

밤새 열심히 호홉을 해 몸에 쌓인 피로를 잘 풀었으니 오늘 트레킹은 무난히 마칠 수 있을 거야.

애써 나자신을 위로했다.


새벽 4시에 아침을 대충 먹고, 오늘 점심으로 간편식 도시락을 받아 출발했다.

낙석 위험 구간을 땅이 얼어 있는 시간에 통과해야 하기에 새벽 일찍 출발했다.

길은 바위돌 너덜지대 그리고 오르막이고 매우 험했다.

짐을 나르는 동물들은 이 길을 가지 않고 먼길을 돌아간다. 오직 사람들만 이길을 기어 올라 넘는다.

이 길은 과거 차마고도와 연결됐고, 이 험한 길을 통해 중국과 인도의 물자가 교류했다고 한다.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어제 잠을 설친 휴유증이 얼마가지 못해 나타났고, 대열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수직의 가파른 오르막이 가로막았다. 이곳은 빙판길이라 아이젠을 차야만 오를 수 있었다.

고개마루가 어럼풋이 보였다. 하지만 저 곳은 보기보다 훨씬 멀고 힘든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나는 이제 생각없는 아바타다. 몇 발자국 올라가고 숨고르고 또 몇 발자국 올라가고 숨 고르는 아바타.

힘들고 지친 '나'가 아니라 '저 곳까지 가야해'하는 또다른 '나'의 명령을 단순히 수행하는 로봇처럼 느릿느릿 올라갔다.     



겨우 어렵게 해발 5,420m 촐라패스에 올랐다.

환호하고 기념사진 찍고 나름대로 자축하고 있는데, 기진맥진 기력이 방전된 나는 서있기 조차 힘들었다.

일본에서 온 젊은 친구들은 즉석 라면을 끓어 먹는 퍼포먼스를 하고, 

일행중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도 이들에게 부탁해 '촐라패스 라면' 이벤트사진을 남겼다.

  





이제는 내리막길.

오른쪽으로는 촐라피크가 수직으로 아찔하게 솟아있고, 계곡 사이로는 넓고 순탄한 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내 걸음걸이는 느릿느릿 힘이 없었다. 체력은 방전되고 식욕이 없어 점심도시락도 먹지를 못했다.

너무 힘들 때는 식욕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몇년전 덕유산 눈길종주 때, 대피소에 도착해서 친구들은 라면을 맛있게 먹을 때 나는 너무 힘들어 젓가락도 들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한참을 걷다보니 개활지가 열리고, 기막힌 풍경이 나를 놀라게 했다.

몽라에서 마지막으로 본 아마다블람이 정중앙에 나타났다.

충성스런 에베레스트의 신하처럼 보였던 아마다블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그만의 왕국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니!

양 옆으로 신하들이 도열하고, 이 계곡의 왕처럼 위엄있는 자세로 군림하는 듯 했다.


이곳에서 보는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야 하이웨이에서 보는 아마다블람과는 느낌이 완전 달랐다.

에베레스트를 향한 건장하고 충직한 장군 타입의 뒷모습과 달리

날카로운 각선미와 균형미를 지닌 모습은 그리스의 조각처럼 멋있고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하기야 세계3대 미봉중 하나로 꼽힌다니.








종글라에서 트레킹 여덟번째 밤을 맞았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지났고, 4천미터 이상에서 네번째 밤을 맞는다.  

하루만 더 자면 최종 목적지 칼라파타르에 오르고, 하산한다.

이런 생각을 하니 바닥까지 떨어진 기력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이드 말로는 이제는 어려운 고비는 다 넘었다고 했다.   

 



칼라파타르를 오르는 마지막 숙소, 고랍셉 가는 길은 산허리를 감싸고 쭉 이어졌다.

계곡 건너편 텡보체에서 올라오는 길은 끝없는 오르막길이다.

저 길을 오르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우리는 내일 저길로 내려갈 것이다.

빙하 너덜길을 올라 마지막 숙소, 해발 5,140m 고랍셉에 도착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내일 아침이면 칼라파타르에서 에베레스트를 볼 것이다.

기분이 업되고, 다소 익사이팅해졌다.

가족들에게 카톡으로 무사함을 알리고 멋진 사진도 날렸다.



새벽 5시 랜턴을 켜,여명을 밝히며 칼라파타르에 올랐다.

숙소에서 고도 410m를 더 올라야 하는 만만찮은 오르막길이다.

뽀족한 산, 푸모리 아래에 있는 검은 색 봉우리가 칼라파타르다.


서서히 아침이 밝아왔다.

저 아래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보였다.

드디어 해발 5,550m 칼라파타르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아풀사! 카메라가 방전되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망연자실, 이럴 수가! 이 멍청이 바보∼

칼라파타르에서 아침햇살에 붉게 물드는 에베레스트를 보고, 그것을 사진에 담는 것이 최종 목표였는데.

허탈감, 실망감에 주변이 모두 하얗게 페이드아웃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려 동료에게 부탁해 기념사진 하나를 남겼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구름이 에베레스트를 가렸다.

에베레스트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가보다.



일행에게 부탁해, 칼라파트라에서 푸모리 배경으로 인중삿.

일행이 찍은 에베레스트 사진. 눕체와 로체사이 에베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