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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여행

에베레스트 트레킹3 - 하산


드디어 하산한다.

벌써 트레킹 열흘째. 오늘은 하산길이지만 17km, 약 10시간을 걸어야 한다.

만만찮은 거리다. 하지만 고도 약 1천미터 내려간다는 생각을 하니 발걸음에 힘이 생겼다.


하산길에 눈에 들어 온 색다른 풍경.

안부에 초르텐이 집단으로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불의 사고를 당해 꽃다운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초르텐이었다.

에베레스트가 좋아 여기왔고, 에베레스트에 영원히 안겼구나.




로부제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가는 길은 더 넓은 개활지의 연속이었다.

바닥돌들도 모나지 않고 반들반들 걷기에도 편했다. 에베레스트의 빙하물이 수천만년 흘려 만들었겠지?


하늘이 흐려지더니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트레킹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날씨의 패턴이 바낀 것일까?

구름이 일찍 몰려 오고, 오지 않던 눈까지 내리다니.

하지만 도중에 만난 말을 타고 야크를 모는 목동의 모습이 한 폭 그림같았다.




해발 4,240m 페리체에서 트레킹 열하루째 아침을 맞았다.

이제는 해발 3천미터대로 내련 간다. 해발 4천미터 이상은 인간이 살기에는 환경이 너무 열악한 것 같다.

간간히 야크를 키우는 목동을 만나기도 하지만 트래커들을 위한 로지외에는 주거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페리체 언덕에 오르니 이 지역을 지배하던 아마다블람이 옆 모습을 보였고,

멀리 탐세르쿠가 반가운 모습으로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불현듯 쿰부의 절대자 에베레스트는 4천미터 이상은 아마다블람이 다스리도록 하고, 3천미터대는 탐세르쿠에게 맡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내려 와, 소마레에서 부터는 아마다블람은 뒷모습을 보이고 탐세르쿠가 힘차고 넓은 가슴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상팡보체 엄홍길 학교. 팡모체 갈림길에서 고도 약 100m 위에 있다.

학생은 고작 6명. 여선생 1명이 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교 운영은 엄홍길재단과 네팔 정부 반반식 부담한다.

우리나라 많은 시골 학교가 폐교 되었듯, 가이드 말로는 이 학교도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내다봤다.

입학하는 학생이 계속 줄어 드는 게 그 원인.

네팔도 교육열이 높고, 되도록이면 남체 등 큰 도시로 보내고,

불교를 믿는 이 곳 쿰부 지역도 교육내용이 더 좋은 힌두교학교에 애들을 보내는 학부무가 늘어난다고 했다.  




상팡보체는 오래된 마을이다.

오래된 곰파가 있고, 마을 어귀에는 수백년은 됨직한 향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 쿰부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나무가 향나무, 거제수나무 그리고 날리그라스다.

날리그라스는 네팔의 국화이고, 향나무와 거제수나무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과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 하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에 향나무 잎으로 향로에 향을 피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거제수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성황목 역할을 하는 듯하고, 사람이 죽어 화장할 때 화목으로 쓴다고 한다.

이곳 메마르고 거친 땅 어디에도 향나무는 잘 자랐고,

햇볕 잘 드는 남동 산비탈에는 날리그라스가 마침 진홍빛 진달래같은 꽃을 피우고 있었고,

습기 많은 북서 산비탈에는 붉은 빛깔의 거제수나무가  무리지어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텡보체 곰파.

쿰부지역에서 가장 큰 곰파다.

16세기경 스님이 이곳에 날아와 터를 잡고 곰파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 때 스님이 처음 밟은 곳에 남은 발자국 흔적이 본존돼 있다.

쿰부지역에는 체로 끝나는 지명이 많다. 남체, 텡보체, 팡보체, 페리체 등등 27군데나 된다고 한다.

가이드 말로는 모두 스님이 날아 다닌 곳이며 어딘가에 스님의 발자국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쿰부지역에서 라마교는 절대적이었다. 첫째 아들은 곰파로 보내, 라마교 스님이 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막내 아들에게 유산을 상속한 유목민의 말자 상속제도가 풍속이었다고 한다.

 




트레킹 열하루째 종착지를 텡보체에서 컁중마로 바꿨다. 좀 무리가 되더러도 내일 이후 편안한 트레킹을 위해 일정을 수정했다.

풍기탕가까지 고도 600m를 내렸갔다가 다시 500m를 올라야 하는 만만찮은 거리다.

하지만 걷는데 이력이 생겼는지 별 어려움 없이 히말라야 하이웨이에 올랐다.

그런데 히말라야 하이웨이에서 에베레스트가 눈에 들어 왔다.

갈 때도 구름으로 가려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고, 고쿄리에서는 아예 구름으로 덥혀 전혀 볼 수 없었고,

칼라파트르에서는 카메라가 방전되어 허둥대다 볼 기회를 놓쳤었는데...  

이곳에서 로체의 호위를 받으며, 눕체 장막너머로 머리를 조금 내밀었다.

황공하게도 마지막으로 아쉬움을 앉고 떠나는 중생에게 조금이나마 배려를 하는 모양이었다.

  






히말라야하이웨이 날리구라스 터널을 지나 탐세르쿠가 넓은 가슴으로 안고 있는 캉중마 탐세르쿠로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은 만찬겸 파티가 열렸다.

돼지고기 삼겹살이 나오고, 쿰부의 막걸리 창이 나오고, 맥주와 위스키가 나오고...

그리고 가이드 파상이 가무를 하고, 여흥도 이어졌다.

힘든 트레킹은 오늘로 끝났다. 앞으로 남은 4일, 행운이 따르기를....

 





트레킹 열이틀째, 다시 남체로 돌아왔다.

일부는 남체 시장에서 선물을 사고, 나는 미용실에 들려 머리를 감았다. 열이틀만에 처음으로 씻은 셈이다.

물도 귀하고, 고산병에 걸릴까봐 참교 견뎌 왔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몰골이 형편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몬조에서 1박을 더하고 루크라로 왔다.

오는 도중 궂은 비가 내렸다. 가이드가 이런 날씨면 루크라에서 비행기가 뜰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아침 첫 비행기.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계속 내렸다. 이착륙하는 비행기는 없었다.

11시까지 기다려보고, 그 때도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헬기를 타기로 했다.

헬기는 요금이 1인당 500$. 비행기 요금 150$을 제하고 350$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그래도 모두 헬기를 타고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하늘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오전 12시쯤 비행기가 떴다.

이번 트레킹에서 여러가지 행운이 따랐지만 가장 큰 행운은 뭐니뭐니해도 날씨 행운이었던 것 같다.  

    

 *  *  *  *  *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는 높고 깊은 산이다.

수많은 깊은 계곡은 많은 부족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산맥이다.

약 5천만년전 아프리카대륙판에서 떨어저 나온 탕아 인도판이 겁없이 유라시아판을 머리로 치받아 생겨난 히말라야산맥.

이로인해 지구 환경은 엄청난 지구사적 변화가 일으났고, 특히 동남아시아는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적도부근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히말라야를 넘지 못하고 동으로 동으로 이동하여 아시아 몬순기후대를 만들어 비를 뿌렸고,

충분한 물을 공급받은 동남아시아에서는 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는 지역이 된 것이다.

만약 히말라야 에베레스트가 없었다면 열대지방 증발 수증기 중 상당부분은 바로 중앙아시아로 빠져 나갔을 것이고,

동남아시아 몬순기후도 없었을 것이고,

한반도는 지금과는 완전 다르게 자연이 잘 보존된 캄차카반도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에베레스트는 멀리 높이 있지만 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