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2박3일 일정으로 바이칼 알혼섬으로 출발했다.
도중에 브랴트족의 성황당인 우스찌아르다에서 무사여행을 기원하고,
과일노점상에서 가이드가 추천하는 과일도 샀다.
차창밖으로 소나무, 자작나무 그리고 낙엽송 숲이 스쳐 지나가다가
어느순간부터 나무 한그루 없는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기후 조건도 특이하게 바뀐 것 같지도 않은데, 생태환경은 전혀 딴 세상으로 바뀌었다.
연락선을 타고 알혼섬에 도착, 미니밴으로 갈아타고 후지르 마을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이틀 동안 머무를 숙소, 바이칼로브 오스토록 호텔.
바이칼 호수 바로 옆에 전망좋은 곳에 자리한 통나무 집이다.
들어가는 입구쪽은 높고 뽀족한 원목 목책으로 처져 있어 영화에서나 봄직한 옛 성을 방불했다.
흑담비 모피가죽을 수탈하기 위해 들어온 코사크족들의 성채를 모방해 지었단다.
맑은 하늘, 바다처럼 넓고 파란 호수.
휴양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알혼섬에는 포장도로가 없다.
따로 길도 없는 듯했다.
차가 많이 다닌 곳이 길이 된 듯 했다.
4륜구동 미니밴을 타고 울퉁불퉁 오프로드를 달렸다.
낮은 지역은 대부분 나무 한그루 없는 초목지대였고, 멀리 산중턱 위로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어쩌다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떼가 보였고, 민가도 가축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무는 소나무와 낙엽송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알혼섬에 가면 쭉쭉 뻗은 흰색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좀 실망했다.
한참을 달려 점심 때 무렵, 바다와 산과 숲이 어우려진 마을 언저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미니밴 기사들이 시베리아 사낭꾼식 점심을 차려줬다.
우선 맥주를 한잔씩 하고, 바이칼에서 나는 생선 오믈과 감자를 넣어 끓인 수프에 검은 빵으로 요기를 채웠다.
사랑의 언덕에서 멋지게 폼을 잡아보기도 하고, 통천문 가는 길에서 여우도 만나고,
옛 소련 시절 유배자들이 내렸던 낡은 선착장에서 바이칼의 매력적인 풍경에 빠져 들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한 바위를 찾았다.
빨강 파랑 노랑 천을 감은 13개의 세르게가 하늘을 향해 일렬로 서있었다.
하늘의 기가 내리는 곳인가, 아님 신성한 불한 바위를 지키는 금목인가.
불한 바위는 알혼 섬의 상징이자, 가장 신성시 되는 곳이다.
샤먼들이 기도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다.
멀리서 보면 불한 바위는 호수가에 솟은 특별할 것 없는 둘로 나눠진 바위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니 신성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날따라 흰구름이 불한 바위를 둥글게 감싸고 파랗게 열린 하늘에서 신성한 하늘의 기운이 내리는 듯 했다.
아침 해뜰 무렵 불한바위는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해질 무렵, 바이칼호수 저쪽 건너편에 구름이 몰려 들더니 비가오기 시작했다.
낮에 보았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신비감이 느껴졌다.
아침에 맑고 청명했던 날씨가 오후들어서면서부터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저녁때에는 비를 몰고 왔다.
낮동안 바다같이 넓은 호수에서 증발한 수증기와 시베리아 원시림에서 뿜어낸 수증기가 모여
구름이 되고 기온이 떨어지자 비로 내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알혼섬에서 마지막날.
비가 오는 중에서도 캠프 파이어를 했다.
남은 보드카와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부부 노래자랑도 하고, 함께 율동하며 7080 노래도 불렸다.
그리고 중국 청뚜에서 온 학생들이 난입하다 시피 들어와 여흥을 북돋워 줬다.
바이칼호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호수다.
넓이면에서 우리나 경상남북도 면적과 비슷하며, 세계에서 가장 깊으며 담수량도 세계최대다.
바이칼호수는 2500만전 지구의 지각운동에 의해 땅이 깊고 길게 갈라진 곳에 물이 고여 만들어졌다.
알혼섬은 땅이 찟어지는 엄청난 지각변동에서도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킨 땅덩어리로 보인다.
주변의 땅은 무너지고 꺼졌는데도 알혼섬은 단단한 지반을 토대로 지금의 형태를 유지한 것 같다.
알혼섬, 특히 불한 바위가 기가 센 것은 이러한 연유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곳이 많은 민족의 시원이라는 점이다.
먼 옛날,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바지의 먼 할아버지가 여기서 살다가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참 믿기 힘든 얘기다.
그런데 전해내려오는 전설 그리고 DNA분석에 따르면 황당한 얘기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만년전, 지구상에 가장 추운 빙하기가 찾아왔다.
북반구는 온통 얼음으로 뒤덮히고, 생명이 살 수 없는 동토의 땅으로 변해 갔다.
그런데 바이칼호수는 얼지 않는 따뜻한 호수로 남았다.
빙하기 때 바이칼호수의 수면은 지금보다 3,4백미터 낮아졌고,
갈라진 지각 틈새로 엄청난 양의 열수가 솟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호수아래 열수대가 있고 그곳의 수온은 다른 곳 보다 높다고 한다.
바이칼호수는 빙하기시대 사람이 살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지역이었다.
그당시 가장 앞선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바이칼 호수 주변을 점령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수천년을 사는 동안 문명은 더욱 발전했고, 종족은 더욱 번성했을 것이며,
그래서 세상을 지배하는 종족이 되었을 것이며, 그들은 스스로 천손족이라 칭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그들은
첫 수확한 흰 순록젖을 차려놓고 눈처럼 흰 옷을 입고 하늘에 감사하고,
손잡고 둥글게 춤췄을 것이다.
그리고 빙하기시대가 끝나고 바이칼 호수가 다시 잠기게 되자 새로운 땅을 찾아 남으로 동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 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는다. (백석, 북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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