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5일 “태백문화권”이란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답사여행지인 동해안지역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였습니다.
이 책에서 “태백문화권”은 북한강 남한강 중상류, 태백산맥 영서와 영동을 아우르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이름을 붙인 것 같이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첩첩산중이고, 양반들의 유람지인 관동팔경에 ‘문화’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나의 이런 생각은 편견과 무지의 소치란 걸 느꼈습니다.
태백지역도 엄연히 사람이 살았고, 치열한 삶이 있었고, 권력 투쟁이 있었고, 유장한 역사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지역이 역사의 주체가 아닌 주변으로서 역할을 했고, 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나 쟁점이 없었기에 관심을 덜 받은 것 같습니다.
(1) 창해 3국
약 2천년전 동해안에는 예국(강릉), 실직국(삼척), 파단국(울진)이 군장(부족)국가로 존재했습니다.
그 흔적은 지명이나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울진의 ‘왕피천’은 실직국왕이 예국의 침략을 받아 피난한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지증왕 5년(505) 신라장군 이사부에 의해 점령되어 실직주가 되었습니다.
신라에 복속된 후 이 지역에서 대규모 반란 운동이 발생하였고, 신라가 진압한 후 그 처벌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 1988년 발견되었다. 그 비문에 ‘파단’ ‘실지’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위 비석 발견 후 일본의 유력 가문인 진(秦)씨 씨족이 이 지역에서 건너갔다는 설이 제기 되었습니다. 波旦의 일본어 발음은 秦 과 같은 ‘하타’이며, 비석이 발견된 후 일본의 진(秦)씨 후손이 찾았다고 한다. 일본서기에 진(秦)씨는 백제 도래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태백영동지배세력
강릉에 ‘명주군왕릉’이 있습니다. 신라 진골귀족 김주원의 묘입니다. 그는 8세기 왕위계승 쟁탈전에서 패해 명주(강릉)으로 낙향해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명주는 그의 선조 때부터 경제적 연고가 있었던 지역이었습니다.
신라는 명주로 낙향한 김주원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 후손들은 평창 영월 등 남한강 일대를 장악하는 호족으로 세력을 키웠습니다.
김주원의 후손인 명주 호족은, 신라말 남한강 유역에서 미미한 세력으로 출발한 궁예가 명주로 들어와 세력을 키우고 태봉을 건국하는데도 결정적 기여를 하였습니다.
(3) 문수와 관음 성지
오대산 월정사는 문수보살의 성지이고, 동해 낙산사는 관음보살의 성지입니다.
오대산은 옛 부터 국내 명산 중 가장 좋은 산으로 꼽혔으며, 불법이 번창할 곳으로 여겼습니다. 7세기 초 자장은 당나라 오대산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 중 신라 동북방 오대산에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계시를 받고 돌아와 오대산에 띠로 집을 짓고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곳에 월정사가 건립되었습니다.
낙산사는 의상이 세운 사찰입니다. 강화도의 보문사와 남해의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관음도량입니다. 당나라에서 화엄사상을 공부하고 돌아온 의상은 관음보살의 진신이 동해의 굴에 산다는 말을 듣고 찾아 수행 중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아 낙산사를 창건하였습니다.
이 지역이 문수와 관음보살의 성지가 된 이유는 이곳이 세속에 물들지 않은 오지이며, 신라중후대 불교의 대중화가 확대되면서 지방에서도 불교가 성행한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4) 의병의 고장
태백지역은 조선후기 의병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전기에는 명성황후 시해, 단발령 등에 반발하여 유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후기에는 고종황제 퇴위와 군대해산등을 계기로 근대식 군사훈련을 받고 신식무기를 지닌 해산 군인들이 대거 참하였습니다.
최초의 근대적 지방군대중 하나인 원주진위대가 의병운동에 참여함으로써 태백지역 의병운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의병부대만 50개가 넘었고, 태백의 대부분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났습니다. 1908년 의병연합을 결성하여 서울진격을 주도한 곳도 원주의 관동창의대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의병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배경에는 화서 이항로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외세 반개혁사상을 가진 이항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이들이 화서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최익현과 의암 유인석이 대표적인 제자입니다. 이들은 위정척사운동을 주도하였고, 일제의 강제합병에 맞서 의병운동을 일으켰습니다.
(5) 관동별곡
관동팔경은 고려시대부터 널리 알려진 관동의 명승입니다. 일찍이 신라 화랑들이 놀았다고 할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ㅇ 통천 총석정 : 휴전선 이북
ㅇ 고성 삼일포 : 휴전선 이북
ㅇ 청관정 : 남한 땅에 관동팔경중 가장 위쪽 위치. 해돋이와 달 뜬 풍경이 아름답다.
ㅇ 낙산사 : 관음보살 성지
ㅇ 경포대 : 경포호를 낀 산자락에 위치. 달이 뜨면 하늘, 바다, 경포호, 술잔에 달이 뜬다.
ㅇ 죽서루 : 관동제일루. 삼척시와 동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절벽위에 건립. 17개 기둥중 9개가 바위위에 세워져 있으며, 기둥 길이가 모두 다르다.
ㅇ 망양정 : 울진 소재
ㅇ 월송정 : 평해
(6) 준경묘
준경묘는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의 아버지 무덤입니다.
이안사는 원래 전라도 전주에 살았는데, 총애하던 관기가 수청을 들게 되자 지주사와 크게 싸우고 식솔을 거느리고 삼척으로 야밤 도주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묘 자리를 찾아 다니던 중 어느 도승으로부터 ‘소 백 마리를 잡아 장사지내고 황금관을 쓰면, 5대손 때 왕자가 나올 자리’ 라는 百牛金冠 의 터 얘기를 듣고 백우를 흰 소 대신하고 금관은 황금색 귀리 짚으로 대신하여 장례를 치뤘다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 후 5대조 묘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고 후대 왕들도 찾지 못하였는데, 근 500년이 지난 고종 때에 이르러 이곳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준경이라는 묘호를 내렸습니다.
이곳은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으로 유명하며, 숭례문 복원할 때 이곳의 소나무가 목재로서 사용 되었습니다. 그 때 ‘어명 받은 소나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또 이곳의 소나무는 유전적으로 우수해 ‘보은 정2품 소나무’ 부인송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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