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 거진 - 화진포 - 제진검문소 - 통일전망대 (차량이동)
10월 중순, 차량으로만 갈 수 있는 제진검문소에서 통일전망대를 가기 위해 차를 직접 몰고 집을 나섰다. 안해와 함께였다. 3월부터 시작한 해파랑길 트레킹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데는 안해의 공이 크다. 같이 트레킹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응원해 주었고, 좋은 풍경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면 같이 공감해 주었다. 안해도 함께 가는 것을 좋아했고, 기대했다. 이왕 같이 가는 거라면 안해에게 멋진 풍광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함께 여행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우선 속초 학사촌 순두부마을로 갔다. 아침이었지만 식당에는 사람들이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여행을 온 사람이라기보다는 인근에 사는 주민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10년 전 친구 가족과 우리 가족이 속초에 놀려 왔다 들렸던 그 집을 다시 찾았다. 집 모양, 맛은 그때와 거의 변함이 없었다.
영랑호로 갔다. 풍광이 빼어난 영랑호는 이번 여행에서 안해에게 보여주고픈 첫 번째 장소였으며, 나에겐 다시 보고픈 장소이었기도 했다. 지난 트레킹 때는 날씨도 흐렸고, 오후 역광이 비칠 때라 선명한 풍광을 제대로 못 봐 아쉬움이 남았던 곳이었다. 평탄한 영랑호 산책길을 따라 걸어 나무데크 전망대까지 갔다. 아침 햇빛을 받은 설악산 산군과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영랑호는 정말 아름다웠다. 안해도 흡족해하는 표정이었다. 호수 물도 깨끗했다. 어릴 적 집 앞 냇가에서 봤던 모래무지도 호수 바닥에 보였다. 이른 오전임에도 중년의 여성분들이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어 주고 품앗이 사진을 찍어 받았다.
임차료를 너무 올려 식당 문을 닫기로 했다던 문어 전문 식당이 궁금해 다시 가보니 정말 문을 닫고 간판도 내리고 썰렁한 빈 집이었다. 태풍에 온갖 쓰레기가 밀려와 백사장을 보기 좋게 망쳐 놓은 해변은 여전히 설치 예술품을 보는 듯 생경스런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가진, 반암 해수욕장, 거진을 거쳐 화진포에 도착했다. 햇살은 여전히 강렬했지만 바다와 숲과 호수의 풍경에서는 제법 가을이 느껴졌다. 왕성하게 내뿜는 여름의 색조가 퇴조하고 속으로 익어가는 가을의 색조가 느껴졌다. 화진포 소나무 숲은 걷기 좋았다. 숲 속 이기붕 별장은 작고 소박했다. 그렇게도 심했던 권력욕에 비해 과시욕은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화진호 주변을 드라이브하고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별장은 밖에서 구경만 하고 막국수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통일전망대출입신고소에 신고하고 제진검문소를 통해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통일전망대는 두 번째 방문이다. 7년 전 친구와 후배와 함께 속초부터 해파랑길을 걸었고, 친절한 민박집주인 차량 안내로 통일전망대까지 방문했다. 그 당시 나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준비 없이 맞이한 은퇴에 어찌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었다. 이미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는데, 그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현직에 있을 땐 직원들에게 답을 알고 일을 하자고 다그치기도 했는데, 정작 나는 내 노후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극심한 불안에 빠졌고, 마음도 몸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자꾸 나빠져갔다. 좋은 일이 생겨도 슬픈 일이 생겨도 생각의 끝은 극단적인 선택을 어떻게 할까였다. 생각의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불안할 땐 안해와 아이들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순간을 극복했다. 체중도 빠지고 평소와 점점 달라져 가는 내 모습에도 안해는 용하게도 침착하게 내 곁을 잘 지켜줬다. 그러던 중 내가 선택한 것이 해파랑길 트레킹이었다. 어쩌면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나보다 1년 먼저 은퇴한 친구는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었고, 나와 같은 해 은퇴한 후배는 관련 회사에 재취업해 여유 있게 노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은퇴 후 하드랜딩 해야 하는 나에겐 이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트레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존경하는 선배님으로부터 지역농협으로 가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반갑고 고마운 전화였지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제안이었기에 망설이고 있는데, '내가 자네 나이라면 지역농협에 가서 협동조합 운동을 제대로 한번 해보겠네'라는 말씀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행운이었다. 재취업과 함께 내 우울증은 사라졌다. 은퇴 후 근 1년 동안 몸과 마음이 극도로 몸살을 앓은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렇게 아파했는지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나는 고양이 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무리 지어 다니는 개과가 아니라 혼자 외롭게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과인 것 같다. 이번 트레킹을 혼자서 한 것도 이런 내 성격이 한 몫했을 것이다. 그 원천은 어릴 적부터 형성된 나의 내재적 열등감일 것이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계획이 서지 않으면 불안한 것도 이러한 나의 열등감에서 오는 증세가 아닌가 싶다. 이런 나에게 계획을 세워서 하는 여행과 등산만큼 편하고 즐거운 것은 없다. 그런데 낯선 사람을 만나고,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은 아내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조그마한 내 기분의 변화도 깜짝 놀랄 정도로 잘 캐치한다. 그것이 고마울 때가 많다. 내가 고양이과라면 아내는 개과인 것 같다.
나는 아내를 집에서 부를 땐 이름을 부르고, 글로 표현할 때는 '안해'라 한다. 이십여 년 전 박노해 시인의 책 '오늘은 다르게'에서 아내의 어원 풀이를 보고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아내'라는 말은 '안해'라는 뜻이구나.
'안해'는 내 안에 떠있는 밝은 해인 거야.
제진검문소를 통과하고 잠시 후,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운 좋게 날씨는 맑고 청명했다.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상이 있던 자리엔 십자가에 고통받는 예수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성모 마리아상과 김대건 신부상이 세워져 있고, 해수관음보살은 여전히 자비로운 표정으로 북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망대는 새로 높게 신축해 멀리 금강산 일만 이천봉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과 해금강이 선명하게 내려 보였다. 망원경으로 보니 금강산도 뚜렷하게 보였다. 금강산 관광을 갈 기회도 몇 번 있었지만 감시받는 것이 싫어 포기했었다. 자유롭게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통일은 언제나 올까. 서로가 희망한다고 하지만 실제 여건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든다. 북에서는 핵무장에 열을 올리고, 남에서는 반목과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니. 하지만 언젠가 통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같은 공동체로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도자 또는 지도층의 역할이 나라의 운명을 많이 좌우했다. 고구려의 멸망은 귀족들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국론 분열로 시작됐고, 백제의 멸망은 왕권강화로 인한 귀족세력의 이탈에 따른 국력 쇠약이 빌미를 제공하였고, 통일신라의 멸망은 왕권 다툼으로 인한 국정 혼란이 주요 원인이었으며, 고려의 멸망도 왕권 약화와 외척의 횡포로 인한 민심의 이반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이 땅을 지키는데 온 힘을 다했다. 다행인 것은 삼국통일 이후, 왕조의 교체가 전쟁이 아니라 왕권을 스스로 물려주는 선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의 밈(meme)이 변하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정치가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정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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