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 향호배변 - 동산해수욕장 - 38선휴게소 - 하조대 - 동호해수욕장 (박) - 낙산사 (41.2km)
* 해파랑길 40코스 일부, 해파랑길 41코스, 해파랑길 42코스, 해파랑길 43코스, 해파랑길 44코스 일부
주문진 북단부터 해안을 따라 철조망이 쭉 처져 있었다. 아직도 휴전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 같았다. 해파랑길만의 독특한 풍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용한 아침나절, 철조망을 따라 걷는 길은 오히려 아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철조망 아래의 평화로움. 아이러니한가. 조금 더 걸어가니 정말 평화로운 모습의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잘 가꾸어진 운동장, 아담한 교실 건물 그리고 소나무 방풍림 너머 동해바다. 긴장감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해수욕장도 철조망에 가로막혀 있었다. 하계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동계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을 허용한 다는 공고판이 걸려 있었다. 철조망, 출입제한 등이 해수욕장 이용에 제한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모래사장에는 뛰어노는 어린이들이 있었고, 젊은 연인들이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철조망은 금단의 경계가 아니라 안전과 자유가 보장되는 보호망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철조망과 해수욕장, 부조화의 조화였다.
'서핑 이용 고객이외 출입을 금합니다.' 서핑 전용 해수욕장도 있었다. 이젠 해수욕장도 바뀌고 있었다. 주변 가게들도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요란스럽게 장식돼 있었다. 서핑뿐만 아니라 곳곳에 오토캠핑 전용 해수욕장도 흔하게 목격되었다. 휴가 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었다. 수영을 하고 몸매를 자랑하는 여름 피서지에서 취미 활동을 즐기는 사계절 휴식처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된 세태가 생경스러웠고,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점심때쯤 발길이 절로 끌리는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새마을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소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 해수욕장 출입을 관리하고, 임시 가설 텐트 식당 두 곳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젊은 남자가 경영하는 텐트 식당에는 젊은 여성 두 분이 식사를 하면서 뭔가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중년의 여자가 경영하는 옆 텐트 식당에 들어갔다. 뭐가 맛있어요, 물었더니 냉면을 권했다. 3년째 사용료를 주고 식당을 해왔는데, 올해는 아주 힘든다고 했다. 군청에서 관리하냐고 물었더니, 어떤 스님이 불하받아 관리한다고 했다.
38선, 625 전쟁 장면이 그려진 벽화마을을 지나고 곧이어 38선 휴게소를 지났다. 해안은 대부분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가끔 해수욕장을 만나기도 했지만 철조망이 처져 있었고, 길에서 한참 들어가야 했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이면도로라 걷기에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8월의 오후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할 수는 없었다. 논밭과 수풀 사이로 쭉 뻗은 길은 배고픈 어릴 적 들에 나간 엄마 기다리던 들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끈 달아오른 시멘트 포장도로를 걷는다는 것은 고행이었다. 내가 걷는 이유는 뭘까. 이런 고행에도 자기만족이 있기 때문이겠지.
강렬한 태양볕이 누그러질 무렵 동호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빈방 있나고 물었더니, 빈방 없다고 했다. 다시 터덜터덜 걸어가니 민박집 안내 전화번호가 눈에 띄어 전화를 걸어 찾아갔다. 연세 지긋한 남자 주인이 마침 장기 투숙하던 손님이 나간 방이 있다며 안내했다. 성수기기라 7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혼자니 5만 원만 달라고 했다. 오래된 TV, 간단한 주방시설만 돼 있는 방이라 비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두 말 않고 요금을 선불했다. 몸을 씻고 잠시 쉬다가 인근에 있는 횟집에 들러 섭국을 맛있게 먹었다. 오래전에 먹어본 적이 있는 음식이다. 홍합을 주재료로 만든 음식인데, 매콤 걸쭉한 맛이 입맛을 돋우고 더위에 지친 원기를 되살려 주었다.
다음날 새벽 4시가 조금 지나 눈이 떠졌다. 그리고 새벽길을 나섰다. 다른 날 보다 거의 1시간이나 빨리 출발한 셈이었다.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많이 가기 위해서였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이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어 걷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길바닥에 뭔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지렁이였다. 지렁이들도 나처럼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기 위해 땅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여명 속에 시원한 새벽 바닷바람을 맞으니 여행의 즐거움이, 걷는 희열이 온 몸에 전해저 왔다. 그리고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걷는다는 것은 몸만 걷는 게 아니라 생각도 따라 걷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몸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가 맞을 때 생각의 나래가 활짝 펴지는 것 같다. 나는 보통 시속 3km 정도로 걸을 때가 가장 생각이 활발하게 날개를 펴는 것 같다. 어러운 고민거리가 있을 때 혼자서 알맞은 속도로 걷다 보면 실타래처럼 얽혔던 고민거리가 풀렸던 적이 가끔 있었다.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어왔다. 아침해가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씨도 좋아 일출이 멋있을 것 같았다. 마침 군부대 옆으로 소나무 숲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해안 가까이로 접근했다. 바다는 철조망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아쉬운 대로 철조망 앞 소나무 숲에 배낭을 내려놓고 일출을 기다렸다. 철조망 너머로 보는 일출, 특이한 경험이었다. 검은 바다위로 서서히 얼굴을 내밀던 아침해는 어느새 철조망에 걸렸다. 그 광경이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해가 철조망에 걸린 것 같기도 하고, 철조망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낙산 해수욕장을 지나 낙산사로 접어들었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 성황당이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신당은 절 경내로 들어가고 성황당은 절 밖에서 마을과 절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행자승이 열심히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의상기념관 앞을 지나서 의상대로 갔다. 관동팔경 중 하나답게 의상대는 지조 높은 소나무 호위를 받으며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가파른 절벽길을 건너 홍련암에 들어서니 스님의 염불소리가 파도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낭랑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낙산사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해수관세음보살상이다. 현실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이기에 뭇 중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보살이 되었을 것이다.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가 관세음보살의 현생 모습이었다고 한다. 어러운 이 시기에 관세음보살이 파랑새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시 나타나기를 소원한다.
끌리는 대로, 되는 대로 걸어온 막막한 삶
동쪽바다 낙산의 길 걸으며 나를 묻는다.
길은 대답한다.
용기 있는 자만이 꿈꾸는 것이 아님을.
꿈꾸는 자에게 용기가 있음을.
파랑새 날아오르는 길을 따라 행복의 꿈을 찾는
담대한 나를 만나다.
- 파랑새를 찾아서(낙산사 템플스테이)
낙산사를 떠나기 전에 뜻밖의 나무와 비석을 발견했다. 그것은 옛날 임금님께도 진상했던 낙산배 시조목과 유래비였다.
'해파랑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파랑길 25. 굴산사지, 범일국사 그리고 단오제 (0) | 2020.10.21 |
---|---|
해파랑길 26. 커피향에 젖은 안목해변 그리고 경포대 (0) | 2020.10.21 |
해파랑길 28. 속초의 매력, 아바이마을과 영랑호 (0) | 2020.10.21 |
해파랑길 29. 바다 산 호수가 아름다운 고성 (0) | 2020.10.21 |
해파랑길 30. 거진, 화진포 그리고 끝동네 명파 (0) | 2020.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