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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28. 속초의 매력, 아바이마을과 영랑호

낙산사 - 외옹치 - 속초해수욕장 - 아바이마을  - 영금정 - 영랑호 - 장사항 (23.6km)
* 해파랑길 44코스 일부, 해파랑길 45코스 
* 아바이마을에서 귀가후, 다음달 이어 트레킹

 

 

드디어 속초시내로 들어왔다. 나의 해파랑길 대장정도 거의 끝자락까지 왔다. 외옹치 고개를 살짝 넘는 곳에 깔끔하게 꾸민 생대구탕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점심때는 전이었지만 새벽 5시도 되기 전에 출발했기에 식사도 하며 좀 쉬었다 가고 싶었다. 외양만큼이나 음식도 깔끔하게 나왔다. 속초해수욕장을 지나니 전망 좋은 바닷가에 예쁘게 꾸민 젊은이 취향의 펜션이 줄을 잇고, 곧이어 청호동 아바이마을이 나타났다. 마치 3,40년 전의 지방 읍소재지 풍경 같았다. 벽에는 청호동의 역사를 짐작께 하는 글귀가 쓰여 있었고,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어려운 시대를 억척스럽게 살아온 벽화 속 주민들의 표정에서는 관조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청호동은 6.25동란 이전만 해도 본래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바닷가 땅이었는데 6.25 동란 때 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면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예상하여 38선 가까이에 있는 이곳에 임시적인 움막 형태의 집들로 정착하면서 집단촌이 형성되었다. 청호동에는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으로 '아버지'의 함경도 사투리인 '아바이'를 사용하여 일명 '아바이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 청호동 아바이마을 유래비

 

지금의 아바이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변했다. 옛 것을 찾는 변화된 풍조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TV 드라마 '가을동화'와 예능프로 '1박2일'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오징어순대, 함흥 회냉면 등 맛집 음식거리가 생겨났고, 마을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갯배'는 방문객들로 만선이었다. 그런데 갯배 선착장에서 보는 속초항은 아바이마을과는 대조적으로 멋진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동해안 항구 도시중 가장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속초가 변했다는 얘기는 많이 듣곤 했는데, 눈 앞에서 보니 놀랄 정도였다. 태백산맥 넘어 휴양도시 정도로 인식되던 속초는 동해안의 거점 도시로 이미 변한 것 같았다.

 

영금정을 지나고 해변 포장마차거리를 지나 영랑호로 진입했다. 영랑호는 넓고 잔잔했다. 호수에는 카누 훈련을 하는 감독과 선수들의 목소리가 높고 굵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영랑호에서 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멀리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쉼 없이 달리고,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설악산군들이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 그리고 공룡능선까지 설악의 진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설악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영랑호가 아닐까 싶었다. 넓은 호수와 아름다운 설악산이 만든 빼어난 풍광은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오후 시간이라 역광이 비치고 구름이 약간 끼어 선명한 풍경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넓은 호수와 실루엣처럼 다가오는 산그리메는 너무 멋지고 황홀했다. 

 

영랑호 둘레길은 자그만치 7.4km였다. 중간에 가다가 되돌아올까도 생각했었는데, 계속 끝까지 돌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었고, 줄을 지어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가슴과 등에 '자연 석호 영랑호 동강 내지 마! 다리, 데크 설치 반대'라고 쓴 슬로건을 달고 걷고, 달리는 사람들도 만났다. 영랑호 개발을 반대하는 속초시민들 같았다. 만약 개발이 된다면 영랑호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동해안 해파랑길을 따라오면서 지나치게 과대하게 개발하여 경관을 해친 곳을 곳곳에서 마주쳤기에 개발 후 모습을 상상만 해도 두렵기까지 했다. 수천만 년 모래톱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영랑호 모습이 오랫동안 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응원을 보낸다.

 

영랑호 가장 깊숙한 안쪽에 범바위가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 영랑정이 앉아 있다. 범바위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 덩어리고, 그위에는 화강암 특유의 핵석 알바위가 여럿 모여 있다. 신라시대 화랑 영랑이 울산바위와 범바위가 호수에 비친 모습에 매료되어 서라벌로 돌아가는 것도 잊고 머물러 풍류를 즐겼다고 해서 영랑호로 부르게 되었고, 화랑들의 수련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범바위 위 알바위들은 풍류를 즐기며 수련을 하는 화랑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