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항 - 청간정 - 천학정 - 삼포해변 (박) - 송지호 - 왕곡마을 - 가진항 (24.9km)
* 해파랑길 46코스, 해파랑길 47코스
영랑호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장사항 해안길로 접어들었다. 장사항은 옛날 바다였는데 모래톱이 발달하여 육지가 된 곳이다. 모래가 쌓이고 쌓여 생긴 석호인 영랑호와 지형 생성의 궤가 같다.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와 바람에 의해 조금씩 쌓인 모래가 오늘의 영랑호를 만들고 장사항을 만든 것이다. 장사항을 빠져나오니 불에 탄 소나무와 쓰러진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부근 곳곳에도 불에 타 죽은 나무들이 남아 있었다. 산불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고성지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갔다. 특히 지난해 산불피해 지역은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역대급 산불이었다고 한다. 이 지역이 산불에 취약한 것은 양간지풍이라는 바람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양간지풍은 건조한 봄에 태백산맥을 넘어 양양과 간성 사이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특별히 일컫는 말이다. 건조한 봄에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작은 불씨라도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대형 산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들의 조그만 부주의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자연의 힘은 예측과 통제의 범위 밖에 있는 것 같다. 바닷길로 들어서니 엄청난 쓰레기 더미가 백사장을 뒤덮고 있었다. 지난 8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이 남긴 흔적이었다. 나무데크길 위까지 쓰레기가 쌓여 있고, 일부 데크길은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산불과 태풍. 천지(天地)는 불인(不仁)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연이 남긴 흔적을 애써 치우고 인간의 편리를 추구할 것이다.
하늘은 기막히게 푸르고 맑았다. 올해는 유난이 장마도 길고, 태풍도 많았지만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들에는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고 길에는 가을꽃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시원한 동해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고, 서쪽으로는 짙푸른 태백산맥이 앞서갔다. 뒤돌아 보면 설악산도 계속 따라왔다. 고성의 해파랑길은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좌태백 우동해의 아름다운 풍경길이다. 청간정을 오르고 얕은 소나무 숲을 지나 천학정에도 올랐다. 산 바다 호수가 아름다운 고성에는 볼거리가 많다. 관광 안내문에는 청간정 천학정과 함께 건봉사 화진포 울산바위 통일전망대 송지호 마산봉 설경을 고성 팔경으로 꼽고 있다. 건봉사와 울산바위를 빼고는 해파랑길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산을 좋아하는 나에겐 울산바위의 아찔한 절경과 더불어 눈 덮인 마산봉의 황홀한 설경을 잊을 수 없다.
송지호에 도착했다. 소나무가 우거진 호수길은 걷기 편했다. 전동차가 다닐 수 있는 '무장애 나눔길'까지 만들어 장애인들이 불편없이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별했다. 송지호를 따라 걷다가 얕은 고개를 넘으니 그림 같은 농촌마을이 나타났다. 둥글고 순한 두 개의 산봉우리 아래 마을이 형성돼 있고 앞 들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왕곡 한옥마을이었다. 마을 입구는 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하고 조심스레 들어가니 마을 청소를 마친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말을 건네보고도 싶었으나 분위기가 녹녹지 않아 조심스레 스쳐 지났다. 민박집 안내판도 있고, 술과 음식을 파는 집도 있었지만 영업이 중단된 듯했다. 마을 안내판을 보니 고려말에서 조선초 사이에 고려에 충성한 '양근 함 씨'가 들어와 형성한 마을이었다. 입향후 조선시대에는 누구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아 버젓한 대감집이 없고 선량한 양민들만의 마을이 되었고, 한국전쟁 때는 바로 인근에서는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이 마을은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마을 건너편 산자락에 비석이 눈에 띄어 가서 보니 뜻밖에도 '동학의 빛' 비석이었다. 1889년 2월에 천도교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이 수개월간 이곳 왕곡마을에 은거하며, 동학을 포교해 민중을 교화했다고 한다. 동학은 창시자 교주 최제우가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사형당한 후부터 기나긴 잠복기를 거쳐 1890년대 전국으로 확산되기까지 태백산맥의 산간 마을들이 그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아마 태백산맥의 험준한 지형적 특성과 함께 타 지역에 비해 반외세적 기운이 강했던 독특한 기질이 한몫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영동지역에 의병운동이 특히 강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는 고개에 '오봉 두백 숲길 종합 안내판'이 있었다. 왕곡마을, 두백산, 송지호를 도는 약 10km 숲길 안내였다. 언제가 다시 이곳에 와서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왕곡마을 나와 다시 해안길로 돌아왔다.
아야진해수욕장을 지나고 작은 어촌마을 가진에 도착했다. 뭐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배 몇 척 정박되어 있는 아담한 어항이었다. 별생각 없이 지나다 호기심에 부두로 들어갔더니 놀랍고 반갑게도 설악산 주능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고성 해안가에서는 어디서든 설악산이 보이는 것 같았다. 되돌아왔던 길을 생각해 보니, 강릉부터 계속 해안을 따라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 왼쪽으론 멀찌감치 태백산맥이 흐르고 오른쪽으론 검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그사이로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중간에 시야를 막는 높은 산이 없었다. 같은 동해안 해파랑길이지만 부산 울산지역, 경북지역, 강원도 남부와 북부의 길이 달랐다. 그것은 땅을 형성하는 기반암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았다. 퇴적암, 화산암, 석회암, 화강암은 암석의 성질과 강도가 달라 풍화와 침식의 속도도 다르다. 그중에서도 화강암은 풍화와 침식이 상대적으로 빠르다. 강원도 북부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너르고 평탄한 들이 쭉 이어지는 것은 이 지역의 기반암이 화강암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낮은 언덕 같은 고개를 넘으니 가진 마을이 나타났다. 시간은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이 마을을 지나면 언제 마을을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어 가진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니, 문어 해장국을 하는 식당이 있어 찾아갔다. 내가 첫 손님이었다. 여사장 한 분이 분주하게 점심준비를 하고 계셨다. 밥그릇을 수북이 보온 통에 넣고 밑반찬을 가져왔다. '손님이 많으가 봐요'하고 물었더니 알고 찾아오는 손님이 제법 된다고 하면서, 들어오면서 플래카드 못 봤어요 하고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고성의 유명 맛집으로 방송에도 나왔던 음식점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문어 해장국은 별미였다. 그런데 2주 후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5년 전에 한적한 이곳에 문어 전문 음식점을 내고 각고의 노력 끝에 유명 맛집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집주인이 임대료를 너무 많이 올려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 같은 대도시만 있을 것 같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동해안 작은 마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모은 돈으로 남편의 고향인 정선에 식당을 장만해 영업을 계속할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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