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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3. 소설 갯마을 무대 일광

 

죽성리 - 기장군청 - 일광해수욕장 - 임랑해수욕장 - 월내 - (택시) - 일광해수욕장 (박) (15.3km)
* 해파랑길 2코스 일부, 해파랑길 3코스, 해파랑길 4코스 일부

 

 

죽성리에서 기장군청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울긋불긋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도시에도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좀 덥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왕복 6차선 기장대로가 나타났고, 기장군청 입구가 나타났다. 군청 부근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럴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만 눈에 띄었다. 길 건너편에도 아파트 촌, 멀리 산 아래에도 아파트 촌의 스카이라인이 형성되고 있었다. 부산과 울산 사이에 위치한 기장은 주거타운으로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었다. 기장군은 부산광역시에 속한 지역이면서 '구'가 아니라 '군'이란 행정명을 갖고 있다. '군'하면 농촌지역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는데, 기장은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었다. 일광해수욕장 입구에 오니, 복요리 집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복매운탕에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아침을 샌드위치로 부실하게 때운 터라 시장하기도 했었다. 일광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백사장은 넓고 길고, 물결은 잔잔한 호수 같았다. 백사장에는 놀려 온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멀리 보이는 방파제와 등대 그리고 쪽빛 바다. 마치 커다란 항아리 안처럼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상수도 징용으로 뽑혀 가고 말았다. 허전했다.

해순이는 전 남편의 제삿날에 다시 갯마을를 찾았다.

그녀는 갯마을이 더 좋았다."

   -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 비석

 

일광은 해순의 기구한 삶을 엮은 소설 갯마을의 무대였으며, 영화 갯마을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바다에 남편을 빼았기고 억척스럽게 살아간 갯마을 여인들의 한맺힌 삶이 소설과 영화의 줄거리다. 낮은 계단 위 언덕에 성황당이 자리하고 있고, 주변에는 2,3백년은 됨직한 거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성황나무는 같은 종류가 보통인데 이곳은 특이하게 느티나무, 말채나무, 팽나무 세 가지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오래 사는 느티나무는 대표적인 당산목이고, 팽나무는 갯바람에 잘 견디는 나무이며, 말채나무는 징그러운 지네가 피하는 나무이기에 심었을 것이다. 잎 하나 없이 발가벗은 나목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마을의 수많은 비밀과 전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숙연해지기도 했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일광 성황당 느티나무 팽나무

나목이 눈길을 끈다.

 

느티나무 아래 둥치는

울퉁불퉁 삶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간절함과 억척스러움이 배어있고 

 

하늘 향한 팽나무 잔가지는

사랑에 목말라 애가 타는 듯

너무나 관능적이다.

 

바다에 남편 빼앗긴 과부의

몸짓, 손짓 같다.

 

 

 

 

 

 

방파제를 지나, 복숭아꽃 예쁘게 피어 있는 좁은 해안길로 접어드니 일광 해수욕장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해변가 바위 틈새에는 파랗게 해초가 끼어 있고, 그 해초를 따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바닷가 길옆에 정성스레 돌담을 쌓아 일군 서너 평 작은 채마밭이 있었다. 채마밭 주인은 정원을 가꾸듯 매일매일 찾아와 채마를 돌보고 바닷바람을 쐬고 가지 않을까 싶었다. 작은 어촌 마을이 계속 이어졌다. 햇살 좋은 공터엔 가오리며, 납새미를 말리고 있었다. 어촌마을 모퉁이 돌아가니 마침 해녀 세분이 물길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뭘 잡았을까 궁금증이 일어 기다렸더니 망태 안에는 제법 씨알이 굵은 전복이며 소라가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해녀들은 육십이 넘은 분들이었다. 나이가 들어 업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한달에 한 번꼴로 물길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한 번 나가면 20만원 정도는 벌어 용돈으로 쓴다고 했다. 어딘가 전화를 걸어달라고 해서 걸었더니 소형 트럭이 와서 그분들을 태우고 갔다. 

 

 

임랑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하루 여정을 마치고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영업을 하는 식당도 모텔이나 민박집도 눈에 띄지 않았다. 민박 안내 간판을 보고 전화를 걸었으나, 영업을 하지 않는다거나 혼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고리원자력 발전소 가까이 있는 월내까지 갔으나, 거기는 아예 숙박업소가 없었다. 할 수 없어 택시를 타고 일광으로 되돌아 와 민박집에 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