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대밭교 - 십리대밭 - 삼호교 - 태화루 - 내황교 - (시내버스) - 일산해수욕장 - 대왕암 - 방어진항 - 일산해수욕장(박) (17.4km)
* 해파랑길 7코스 일부, 해파랑길 8코스 일부
4월 27일, 지난달에 이어 두번째 해 패랑 길 트레킹에 나섰다. 지난번에는 혼자서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가 동행하게 되었다. 첫 해파랑길 트레킹에 나설 때는 초행이고 혼자라 안해도 걱정했고 나도 다소 불안했었는데, 이번에는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출발했다. 이른 아침 7시 5분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10시30분에 울산역에 내렸다. 그리고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던 직행버스를 타고 10시 30분쯤 태화강 십리대밭교 정류장에 도착했다.
넓은 태화강 고수부지는 공원으로 조성돼 있었고, 막 잎을 띄우기 시작하는 팽나무 한그루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팽나무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태화강 팽나무는 단발머리를 가다듭고 맵시 있게 교복을 입은 단정한 여학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풍경은 태화강을 안내하는 시그니쳐로 삼아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화강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다. 대도시를 관통하는 강의 하류 지점이라 꽤 넓을 거라 상상했는데 한강의 지류인 중량천 정도 넓이의 강이었다. 그런데 수량은 아주 풍부하고 정비가 잘 돼 있고, 무엇보다 물이 맑고 깨끗했다. 풍광에 취해 무심결에 다리를 건너 십 대밭 숲으로 바로 걸어갔다. 당초 계획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왼쪽 강변을 따라 걷다가 태화강 전망대에서 태화강을 조망하고 십리대밭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십리대밭 숲으로 직진해버렸다.
강변을 따라 십리 넘게 조성된 대나무숲길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담양 죽녹원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 강과 대나무 숲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풍경은 가히 일품이었다. 산업화 이후 대나무의 쓰임새가 거의 없어져 대나무 숲이 많이 사라졌다. 70년대는 잘 가꾸어진 대나무 숲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대나무밭을 가진 집은 부잣집이었다. 그런데 값싼 플라스틱 제품이 쏟아지자 대나무는 가치가 없어지고, 대부분 넓은 대나무밭은 과수원으로 바뀌었다.
하구쪽으로 내려오자 강폭은 넓어지고 유속은 느려졌다. 강 가운데는 보트를 타고 카누를 젓는 한가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참 친화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느릿한 강물이 바로 곁에서 유유히 흐르고, 고수부지에는 특별한 구조물이 별로 없고, 무엇보다 자동차 쌩쌩 달리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곁에 없어서 좋았다. 서울의 한강변에서는 그냥 마음이 급해지는데 여기 사람들은 느긋하게 즐기는 것 같았다. 국제적인 문화의 도시, 고급 아파트 주택지로 변모한 부산 수영의 수영천은 아직도 역겨운 냄새가 났는데, 태화강물은 맑았고 수면 위로 점프하는 물고기 모습도 보였다. 태화강은 프렌드리 한 강이다. 울산 하면 공업도시, 오염된 환경 등등의 이미지가 머리에 많이 박혀 있었는데 너무나 잘 정비되고 정화된 울산의 모습에 놀랐다.
태화강의 지류인 동천 내황교를 지나서 401번 시내버스를 타고 일산해수욕장으로 갔다.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옆 태화강변길과 성내삼거리에서 염포산을 넘어가는 해파랑길 8코스 대부분은 스킵했다. 공장지대를 걷는 것이 내키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대왕암공원과 방어진 부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친구들과 철 모르게 하룻밤을 지낸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나 일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돼지고기, 소고기집만 눈에 띄었다. 생아구찜집을 찾아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인근에 숙소를 잡아 배낭 짐을 풀어놓고 방어진 부근 트레킹에 나섰다.
해수욕장은 한산했다. 파도에 밀려온 해초를 치우는 사람들만 땀을 흘리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여름 성수기가 돌아오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백사장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 옛날 내 키보다 조금 컸던 바닷가 해송들은 쭉쭉 자라 멋진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거대한 조개껍질처럼 깊게 갈라지고 파진 화강암 바위섬은 여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동해 거친 파도를 쉴 새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검푸른 바다, 쭉쭉 뻗은 소나무 숲,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그리고 세찬 바닷바람.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게 너무 좋았다. 대왕암 바위를 돌아가니 몽돌밭이 나타났고 언덕에는 보라색 갯무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피는 유채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꽃이다. 유채꽃은 떼 지어 웃고 손 흔드는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다면, 갯무꽃은 뭔가 사연 있는 성숙한 여인들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해가 떨어질 무렵, 방어진 어시장으로 갔다. 바닷가까지 와서 회를 먹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흥정엔 서툴렸지만 흥정을 하고 말고도 없었다. 보통 1kg에 2,30만 원 하는 이시가리(줄도다리)가 8만 원이라고 했다. 의심이 가서 가짜 아니나고 물었더니 등을 만져 보라고 했다. 등에는 우들우들 한 돌기가 만져졌다. 바다 회중에서 최고로 치는 이시가리 회에 기분 좋게 소주를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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