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 - 양포 - (택시) - 구룡포(박) - 양포 (32.9km)
* 해파랑길 12, 13 코스
감포를 지나고 계속 찻길로 걸었다. 오후가 되자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했으면 하고 마트를 찾았지만 문을 연 곳은 없었다. 마침 영업을 하고 있는 카페가 보여 커피나 한 잔 하고 쉬었다 가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대학생 또래의 젊은 청년이 친절하게 맞았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혹시나 하고 맥주 있나고 물었더니 팔지는 않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맥주가 있다면서 고맙게도 2병을 가져왔다.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유쾌하게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우리 또래의 남자가 들어왔다. 카페의 사장이자 젊은 청년의 아버지였다. 공무원 출신으로 국장으로 퇴임했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등산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바빠서 산에 못 간지 오래됐다고 했다. 퇴임 후를 대비해 이곳 땅을 사서 건물을 직접 지었다고 했다. 옆에 있는 풀 빌라도 자산의 소유라고 했다. 군부대가 철수 한 곳을 불하받아서 땅을 매립하고, 자재를 사고, 인부를 사서 몇 년에 걸쳐 공사를 했다고 했다. 바닷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건물벽을 돌로 쌓았다고 했다. 공무원 출신답게 꼼꼼해 보였으며, 수완이 대단해 보였다. 나무는 이것저것 심었는데 대부분 못 살고 줄사철나무만 살았다고 하기에 해파랑길 이기대 구간에서 본 송악과 사스레피나무를 소개했다.
전망 좋은 곳에 카페가 심심찮게 눈에 띄지만 대체로 해파랑길 포구 마을은 한적했다. 곳곳에 빈집이 목격되고, 강아지들이 낯선 길 손이 신기한 듯 멀뚱이 쳐다보다가 졸졸 따라오기도 했다. 가끔은 부동산 매도 입간판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런데 대지 가격은 평당 500만 원 수준으로 꽤 높았다. 매매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별장을 지어도 좋음직한 전망 놓은 바닷가에 위치한 빈집은 모양새로 보아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았다. 마을은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공동화 현상이 곳곳에서 이미 나타나 있었다. 반면 전망은 좋으나 사람이 살 수 없었던 해안가는 카페나 풀빌라가 착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해안가 마을에도 개발과 낙후의 이원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었다.
양포에서 트레킹을 마치기로 했다. 시간상으로는 더 갈 수 있었으나 다음 목적지가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양포에서는 마땅한 숙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할 수 없어 택시를 타고 구룡포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양포로 다시 내려오기로 일정을 바꿨다. 구룡포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래잡이였고, 고래잡이가 금지된 후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구룡포항은 해파랑길에서 본 어항중에서 가장 컸고 사람들도 붐볐다. 수협조합장 당선자 축하 플래카드가 20m 간격으로 걸려 있는 것에 눈살이 찌뿌러지기도 했는데, 구룡포가 그만큼 어업이 번창하는 곳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느끼게끔 했다.
근대문화거리와 일본인 가옥거리는 구룡포의 굴곡진 역사를 보여 주는 유산이자 삶의 현장이었다.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살던 거리를 보전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고육지책 같기도 했다. 아픈 역사에서 교훈도 얻고 지역 경제도 살리고.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았다. 일본식 적산 가옥거리는 나름 색다른 풍경이었고, 눈을 두리번거리게 했다. 일본풍이 물씬 풍기는 공원 계단의 입석에 새겨졌던 일본 사람들의 이름을 뭉개고 한국사람 이름 새긴 것이나 시멘트로 덧칠한 일본인 송덕비는, 구룡포가 안고 가야 할 지우고 싶은 역사 같기도 했다.
이번 트레킹에 함께 한 친구와 마지막 날, 좀 근사하게 저녁을 먹었으면 하고 두리번거리며 식당을 찾았으나 마음에 드는 식당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삼일 동안 계속 바닷가를 걷다 보니 몸에 비릿한 냄새가 배였느지 횟집이나 바다 음식점은 눈길이 가지 않았다. 시장을 두 바퀴나 돌고 돌아 뒷골목에서 쇠고기 정육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좀 외진 곳에 가게는 작았지만 그래도 동네에서는 이름 난 식당인지 계속 손님이 들어왔고, 기분 좋게 질 좋은 소고기 안주에 소주를 저녁 삼아 먹고 마셨다. 지난달 혼자 트레킹 후, 계속할 수 있을까 자신감도 좀 떨어졌었는데 친구가 동행해줘 외롭지 않게 트레킹 할 수 있게 되었고, 다음 트레킹을 할 수 있는 힘도 얻었다.
아침 일찍 양포로 향해 출발했다. 날씨는 아주 맑고 청명했다. 마침 4월 초파일 휴일이였기 때문인지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바닷가 방파제, 해수욕장, 갯바위에는 부지런한 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해수욕장 백사장은 몽돌이 아니라 모래로 바뀌었다. 울산 주전해수욕장에서 손가락마디 크기의 몽돌이 북으로 올라올수록 콩알 크기로 잘아지더니 구룡포 부근에서는 모래로 변했다. 오늘 걸을 거리는 약 20km, 12시쯤 양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지금까지 남에서 북으로 태양을 등지고 걷다가 북에서 남으로 태양을 마주하고 걷으니 바다의 색깔과 느낌이 다르게 느껴졌다. 햇살을 받은 바다는 눈부시고 좀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포구마을을 지나고 콩알 몽돌 해수욕장을 지나고, 육당 최남선 선생이 조선 10경 중 하나로 꼽았던 장기 일출암에 도착했다. 해수욕장 끝자락 바닷가에 자리 잡은 기암과 그 바위 꼭대기에 자리 잡은 몇 그루 소나무. 그 위로 뜨는 아침해, 상상만 해도 멋진 일출 풍경이 펼쳐질 것 같았다. 신선의 정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를 따라 놀려온 두 어린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었다.
마침 문을 연 마트가 보였다. 해안가 마을에서 문을 연 마트는 참 오랜만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들어서니 할머니가 마트를 지키고 계셨다. 맥주를 시켰더니 마른 미역귀를 안주로 내주셨다. 낚시 손님도 제법 오는데 장사가 좀 되냐고 물었더니, 요즘 차에 다 싣고 와서 팔리는 거는 없고 쓰레기만 쌓인다고 하셨다. 낚시 온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그럴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목적지 양포는 거의 다 왔다. 해수욕장을 지나고 멀리 보이는 산자락을 넘으면 양포였다. 그런데 그 뻔한 목적지가 거의 다 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참 멀게 느껴졌다. 양포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하고 노선버스를 탔다. 포항역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었고,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데 그만 잘못 내리는 머리에 다시 택시를 타고 포항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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