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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10. 포항항과 포항제철

죽도시장 - 송도해변 - 영일대 - 용한1리(박) (24.8km)
* 해파랑길 17코스, 해파랑길 18코스 일부

 

구룡포에서 200번 버스를 타고 죽도시장 버스정류소에서 내렸다. 어제 이맘 때는 도구 해안에서 호미반도 방향으로 내려갔었는데, 오늘은 죽도시장에서 출발해서 송도를 거쳐 영일만 방향으로 올라간다. '없는 게 없는 오감 만족 문화 전통 시장' 죽도 시장은 포항에서 제일 큰 전통 시장이다. 과메기로도 유명하며 이런저런 경로로 이름을 많이 들었던 시장이라 상당히 붐빌 줄 알았는데 의외로 썰렁했다. 전통 시장이 겪고 있는 어러움은 여기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맛있는 점심을 골라 먹어야지 하고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보이는 것은 죄다 횟집뿐이었다. 어제도 회밥을 먹었기에 내키지 않았다. 시장 안을 둘러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점심 먹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기도 하였기에 송도로 가서 먹을까 하고 송도로 가는 건널목에서 보행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오른편으로 전복죽집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송도에 가더라도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발견한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이거라도 먹어 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넓지 않았고, 젊은 남녀 한 쌍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벽엔 온통 유명 연예인들의 싸인으로 도배가 돼 있었고, 맛집 전문 방송인 백종원씨가 이 집을 맛집으로 소개하는 영상이 반복 상영되고 있었다. 주인 여사장은 연세가 아주 지긋하신 분이었다. '이 집 유명한 음식점인가 봐요'라고 했더니 '우리 집 모르고 왔소'하고 반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 코로나 여파로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 요즘 빈자리가 없이 손님으로 꽉 찬 것을 보니 유명하기는 한 것 같았다.

 

 

 

 

 

인도교를 건너 송도로 들어 갔다. 거리 풍경은 지방 중소도시 구 시가지 느낌이었다. 부산 송도나 인천 송도는 아니더라도 꽤 번화한 거리일 거로 짐작했었는데, 의외였다. 입지여건으로 봐서는 고급 아파트 단지나 상가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한데도 개발 전 시대에 멈춰 서 있는 듯했다. 마을을 지나자 멋진 해송 방풍림이 바닷바람을 막고 있었고, 그 앞 쪽에 뚝 터인 동해 바다와 송도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바닷바람은 세차고 파도는 거칠게 흰 포말을 뿜으며 방파제에 부딪혔다. 한 때는 이름 있는 해수욕장이었다고 하는데, 거의 그 기능을 상실한 것 같았다. 바로 왼쪽 눈앞에 포항제철이 남쪽 바다를 가로막고 있었다. 포항제철, 산업화된 대한민국 발전의 변곡점 역할을 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포항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송도해변에서 보는 포항제철은 너무나 반 환경적으로 느껴졌다. 포항제철이 들어서기 전에는 어떤 풍경이었을까. 툭 터인 해수욕장, 형산강이 만든 긴 모래톱 그리고 울창한 송림.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풍광이 그려졌다.

 

포항 구간 해파랑길을 걷는 내내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이 포항제철이었다. 도구 해변에서는 북쪽으로 보였고, 송도해변에서는 남쪽을 가로막고 있었다. 포항제철은 포항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이며, 자부심이기도 할 것이다. 포항제철을 빼고 포항항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보는 내내 답답함이 느껴졌다. 산업화 시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름다운 항구 포항을 느끼는 데는 걸림돌이 되었다. 만약에 포항제철을 거대한 설치 예술품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늘과 바다를 캔버스 삼아 아티스트들이 모여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색깔로 공장을 꾸미고 굴뚝을 세운다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항구, 포항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공업 도시 포항이 공업과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예술인이 찾고 예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도 창출되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 봤다.   

 

 

 

 

 

황량하고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송도해수욕장 북단을 지나 다리를 건너니 동빈항이 나타난다. 많은 어선이 정박해 있어 포항항이 어항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동빈항은 형산강과 운하로 연결돼 있고 송도가 훌륭한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동빈항으로는 바다의 물산이 집결하고, 바로 곁에 있는 죽도시장에서는 이를 판매한다. 동빈항과 죽도시장은 예부터포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쌍두마차였을 것이다. 동빈항을 지나면 영일대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과거 포항 북부해수욕장이라 불리였는데 영일대를 세우고 이름이 바꾸었다고 한다. 영일대는 일출 명소이고 야경이 아름다우며 포항제철이 마주 보이는 곳이라는데, 아쉽게도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포항항을 벗어나자 엄청난 파도가 몰아쳐 바닷길을 덮치기도 했다. 동해바다 파도의 위력이 새삼 느껴졌다. 그 파도 속에서도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파도가 물러난 자갈밭에서 자연산 미역을 줍는 사람도 있었으며, 파도에 밀려온 수석을 줍는 사람도 만났다. 오랜만에 야트막한 산길이 나타났고, 그것을 넘으니 영일 신항만이 나타났다. 한창 항만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넓고 긴 항만 부지는 텅텅 비워 있었고, 걷기도 힘들 정도로 세찬 맞바람이 불어왔다. 더구나 나무 한그루 없는 넓은 도로에는 오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잘 관리되고 풍광 좋았던 포항구간 해파랑길 중에서의 최악의 길이었다. 오후 4시쯤 영일 신항 북단을 지나 용한해변에 도착했다. 오늘 최종 목적지로 정한 칠포해수욕장은 아직 1시간 정도 더 가야 했다. 혹시나 해서 칠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에 전화를 거니 게스트하우스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호텔은 코로나 때문에 영업을 중단했다고 하면서 이미 지나온 영일대 해수욕장 부근에서 숙박을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용현 해변 부근에 숙소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문을 연 식당도 있었고, 민박집 간판도 몇 군데 보였다. 그리고 낚시전문점도 있었고 문을 연 슈퍼마켓도 있었으며, 서핑 보드 렌털업소도 눈에 띄었다. 용현 해변은 서핑과 낚시로 꽤 유명한 곳으로 보였다. 

 

식당 건물 3층, 방 5개를 민박 방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사워를 하고 휴식을 취하다가 6시쯤 1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황당하게도 영업이 끝났다고 했다. 이곳 식당은 손님이 드문 평일에는 일찍 문을 닫는다고 했다. 여사장의 배려로 김치찌개 백반에 막걸리 1병을 마셨다. 방에서는 동해바다가 막힘없이 잘 보였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청회색으로 바뀌고 바다는 점점 짙은 흑빛으로 변해 갔다. 난생처음으로 오랫동안 어둠이 내리는 바다를 응시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평선이 일직선으로 그어지면서 하늘과 바다가 선명하게 나눠졌다. 수평선이 팽팽하게 당긴 실처럼 보였다. 그리고 조금 후 하늘과 바다는 깜깜한 어둠 속에 묻혔다. 신기한 자연현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구가 둥글다 해도 멀리 보이는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이 일직선인 것은 당연할 것 같다. 그런데 왜 낯에는 수평선이 다소 흐릿하게 보이고, 해진 후에는 자로 그은 듯이 반듯하게 보이는 것일까. 빛의 산란 때문에 생기는 착시현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