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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14. 암석의 자연 박물관 영덕 해변

영덕 해맞이공원 - 경정 - 축산항(박) (12.8km)
* 해파랑길 21 코스, 영덕 블루로드 B 

 

 

 

풍력발전단지를 지나고 신재생에너지 전시관을 지나면 가파른 해안 경사면을 따라 조성된 해맞이 공원이 나타난다. 1997년 산불로 폐허가 된 땅에 산책로를 만들고, 전망대를 설치하여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동해안의 대표적인 일출 명소이다. 나무 침목 계단을 내려가면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동해 망망대해를 조망할 수 있고, 해안가에는 기암괴석들을 만날 수 있다. 이미 유명세를 탔는지 가족단위, 연인끼리...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 지질명소인 영덕 해맞이공원입니다' 안내판이 나타났다. 

경북 해안지역은 국가 지질공원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특히 영덕지역은 20억 년 전 원생대 편마암, 2억 년 전 중생대 화강섬록암, 1500만 전 퇴적암 등 다양한 종류의 암석들을 관찰할 수 있는 암석의 자연박물관이다. 암석을 통해 한반도의 생성과정을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장인 셈이다. 탐방 신청을 하면 전문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탐방로는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졌다. 단단한 화강섬록암의 차별 침식으로 형성된 골짜기를 반복해서 오르내렸다. 툭 터인 바다 전망, 시원한 바닷바람, 오르 내리막 바위길, 소나무 숲 등등... 마치 해파랑길 시발점인 이기대 구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중에 웃으며 손 흔드는 초병 동상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바다로 향한 나무의자에 앉아 목을 축이고 에너지를 보충하고,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해맞이공원 해안 소나무숲길을 벗어나니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가파른 해안 절벽은 사라지고, 평평한 몽돌해변이 나타나고 군데군데 바위섬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포구마을도 나타나고, 넓지는 않았지만 논밭도 나타났다. 바다는 얕아졌고,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평평해진 바다 가운데 바위 위에 노는 어린이의 모습도 보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바위의 붉은색깔이었다. 이렇게 풍경이 바뀐 것은, 땅속 마그마가 식어 형성된 화강암지대에서 진흙과 모래가 쌓여 형성된 퇴적암 제대로 지질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강구에서부터 걸어온 숲 길도 끝이 났다. 오르내리막이 있는 산길이라 힘들기는 했지만 해파랑길 중에서는 특별한 길이었다. 내륙 평야지대 출신인 나에겐 좀 친숙한 길이었고, 과거의 추억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축산항까지는 거의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갔다. 항구를 지나고 해변을 지나고, 지금까지의 해안길과 별반 다름없는 바닷가의 풍경이었다. 특이한 것은 항구나 백사장의 규모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작았고, 차량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 축산항에 오후 6시쯤 도착했다. 얼른 숙소를 정해 배낭을 내려놓고 씻지도 않고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대부분 식당은 영업을 종료했었다. 운 좋게도 불이 켜진 소고기집에 들어갔더니 아직 마지막 손님들이 식사 중이었다. 늦은 시간에 혼자 온 내가 반가울 리 없는 여사장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설렁탕을 권했고, 선택의 여지없이 설렁탕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죽도산에 올랐다. 죽도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육지와 동떨어져 있는 섬이었는데, 모래가 점점 쌓여 연육도가 되었다. 대나무가 많다고 죽도산이라 불린다고 했다. 죽도산 대나무는 보통 대나무가 아니라 이대라는 대나무다. 옛날 담배 설대로 쓰였던 대나무이며, 화살대 재료로 쓰였던 중요한 전쟁물자였다. 나무데크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대나무와 칡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생존경쟁 광경이다. 대나무가 칡의 무자비한 폭력에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죽도산 둘레를 따라 조성된 해안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기기묘묘한 암석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도에 의해 깎여 모습을 드려낸 절벽은 다양한 퇴적암 전시장 같았다. 죽도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축산항은 정말 아름다운 미항이었다.

 

 

어디서 아침을 해결할까, 기웃기웃 음식점을 찾다가 편의점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전복죽, 요거트, 빵을 사서 간이 식탁에 앉았다. 갑자기 편의점 사장과 얘기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대게철은 지났지요"

"지난해 11월에 시작해서 5월에 끝났어요. 요즘은 찾아 오는 손님 없어요"

"맛있는 대게 먹으려면 언제가 좋아요"

"12월이 제일 좋죠. 대게는 살이 약간 덜 차야 단맛이 나고 맛있는데, 12월 지나면 살이 너무 올라 그런 맛이 덜해요"

고깃배도 타보고, 택시운전도 해봤다는 편의점 사장은 동네에 젊은이가 없어 큰 일이라고 했다. 한 때 초등학교 학생이 800명이 넘었었는데 지금은 30명밖에 없으며, 자기 딸이 다니는 중학교 2학년은 딱 1명이라 했다.

 

축산항에는 남씨 발상지가 있다. 남씨의 시조는 당나라 사람으로 통일신라 성덕왕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던 중 구사일생으로 죽도섬에 상륙하여 살아남은 사람이다. 당나라 여남에서 왔다 하여 남이란 성씨를 하사 받고, 영양현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다고 한다. 축산항의 뒷산인 와우산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비각이 세워져 있다. 또 고향을 그리워하며 달 밝은 밤에는 축산 앞바다에 비친 달그림자를 바라본 월영대 표지석이 있고, 해 뜨는 광경을 바라본 일광대 표지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