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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16. 인간선택 금계국과 송엽국

고래불 해변 - 후포 - 거일리 - 월송정 (21.4km)
* 해파랑길 23코스, 해파랑길 24코스 일부

 

어느새 해파랑길 울진 구간에 들어섰다. 길은 해안 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졌고, 풍경 또한 엇 비슷비슷했다. 바닷가 출신이 아니라 해안 풍경의 다양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바다는 아침저녁으로 다르고 날씨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뀌는데, 내 눈은 그 변화를 두리뭉실하게만 인식하는 것 같았다. 바다에는 슬픈 얘기도 있고, 기쁜 얘기도 있고, 잊고 싶은 얘기도 많이 있을 터인데.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바다의 변화무쌍함이 아니라 길가에 보이는 진한 주홍색 꽃이었다. 꽃 이름 찾기 앱을 통해 알아보니 송엽국이라는 외래종 꽃이었다. 사실 이 꽃은 트레킹을 시작한 초봄부터 계속 보였던 꽃이다. 바닷가 집 마당, 카페 정원 등등 가는 곳마다 단골 꽃으로 심겨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이 금계국이었다. 금계국 또한 외래종으로 요즘 전국 도로변을 점령하고 있고, 이 꽃을 심어 온통 노란색 화원으로 꾸민 골프장도 보았다. 식물이름에는 나도바람꽃, 달맞이꽃 등 순수 우리말 이름이 많은데, 왜 억지춘양 같은 한자식 이름이 지어졌을까 못 마땅한 마음도 생겼다.

 

송엽국과 금계국이 이렇게 널리 번진 것은 인간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자연계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선택받는 자가 살아남는다고 했는데, 이들은 특별하다. 자연선택이나 성선택이 아니라 인간 선택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통해 우세종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벼 밀 등 식량 식물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 심긴 벚나무, 배롱나무... 인간의 편익을 위해 선택된 종들이 너무 많고 이들이 지구를 점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를 가져 오지나 않을까 두렵다.

           

 

어제밤에는 비가 많이 온 것 같았다. 오늘도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다행히 구름만 잔뜩 끼고 가랑비만 흩날렸다. 후포항의 아침은 분주했다. 밤새 고기잡이한 배가 들어오고, 어판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오징어였다. 옆에 뒷짐 지고 서있는 사람에게 '요즘 오징어 철인가 봐요. 많이 잡았네요' 하였더니, 6천 마리쯤 된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후포항은 드라마와 예능프로에서 많이 봤기 때문인지 낯설지가 않았다. '백년손님'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있는 골목길을 올라가니 후포 등기산공원이 나타났다. 동해 바다가 툭트여 해맞이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세계 유명한 등대 모형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기미년 3.1 운동 순국열사 기념비'였다. 무슨 기념비 하면 높고 뾰족한 것이 대부분인데, 이 기념비는 아담하고 조형미가 느껴졌다. 특이하게도 이곳에서 신석기시대 매장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무덤을 쓴 것을 보니 신석기시대에도 풍수를 따졌는가 보다. 명당 무덤자리를 찾는 마음은 동서고금 차이가 없는가 보다. 터키 이스탄불 피에르롯띠 공동묘지는 아름다운 바다 골든혼이 내려다 보이는 명당 중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흐리고 해무 낀 해안길 모퉁이를 돌아서니 까만 돌비석이 눈에 띄었다. 유심히 보았더니, 1973년 '서울대학교대학원과 거일2리 자매결연' 기념비였다. 10월 유신, 격변했던 현대사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났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도 농촌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셨다. 당시 농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서클들이 연합해서 '농촌문제 연구회'를 만들어 여름 방학기간에 합동으로 농촌봉사활동을 갔었다. 그 활동 내용이 영상으로 제작돼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 대한뉴스로 상영되기도 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학기가 되자 농촌봉사활동을 주도했던 선배들은 요주의 감시대상이 되었고, 농촌봉사활동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70년대 중반 젊은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생맥주와 통기타가 젊음의 심벌이 되기도 했으며, 10월 유신 후 질곡의 시절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방황한 세대이기도 했다. 그 당시 젊은이들이 품었던 낭만과 저항은 모순적인 시대정신이었고, 은퇴세대가 된 후에도 그 모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