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 - 호산 - 임원항 (박) - 해신당 (18.1km)
* 해파랑길 28코스 일부, 해파랑길 29코스 일부, 삼척로 해신당가는 길
월천교에서 해파랑길 안내 앰블렘을 다시 만났다. 고포에서 길을 놓치고 다른 길로 들어선 지 30분쯤 뒤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울진군을 지나 삼척시로 들어섰다. 고포와 월천이 울진과 삼척의 경계다. 월천교를 지나 호산 삼거리에 오니 기사식당이 눈에 띄었다. 교통량이 많은 고갯마루 삼거리에 건물 하나에 명색뿐인 마트와 같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손님도 없었다. 6천 원짜리 김치찌개를 시켰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나고 물었더니 주로 트럭 기사님이 손님인데, 비 오는 날은 대부분 기사들이 쉰다고 했다. 그러면서 술은 팔지 않고 밥만 파는데, 비 안 오는 날이면 하루 100그릇은 판다고 했다. 한적한 고갯마루 식당에 손님이 있을까 싶었는데, 여사장의 표정을 보니 제법 쏠쏠한 장사 재미가 있는 듯했다.
호산 버스정류장을 지나 호산천을 따라 걸었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에 누런 흙탕물이 꽤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비를 맞은 식물들은 초록빛 생기가 넘쳤다. 갑자기 농촌 풍경이 보고 싶었다. 가던 길에서 벗어나 농촌길로 들어섰다. 잠시 비가 멈추고, 살포시 안개구름이 마을 뒷산을 감싸고 있는 마을 풍경은 아름답고 목가적이었다. 야트막한 산, 벼 고추 콩 등 작물들이 싱싱하게 자라는 들판 그리고 예쁜 집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해파랑길로 되돌아왔다. 다시 비 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도로 옆으로 블루베리 밭이 눈에 띄었다. 검푸른 색으로 익은 열매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개망초가 군데군데 밭 가운데로 침입해 있었다. 어쩌면 일손 부족으로, 타산이 맞지 않아 수확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들은 굉음을 뿜어내며 쌩쌩 달렸다. 파도소리는 들을 수 없고 웅웅 차 소리만 귓전에 맴돌았다. 또 웬 공사는 그렇게 많이 하는지. 지난해 태풍에 유실된 제방과 길 보수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노곡 교차로에 도착하니 어지럽게 걸린 플랑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원덕읍민을 호구로 보는 남부발전은 각성하고 물려가라!' 화력발전소인 남부발전의 피해 보상에서 제외된 지역민들의 불만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빗줄기는 더욱 강해졌다. 지은 지 오래된 빌라단지는 텅 비어 있었다. '낭만가도'라는 자전거도로 안내판도 보였지만, 낭만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비 오는 날 해파랑길은 여러모로 심란했다. 그래도 가끔 만나는 청초한 무궁화 꽃은 반갑고, 바람결로 전해지는 칡꽃 향기에 새로운 기운을 얻었다.
오후 2시 30분쯤 임원항에 도착했다. 점심 식사 후 거의 3시간 만이다. 그새 쉴 곳이 없어 쉬지도 못했다. 횟집 골목에 들어섰더니 초췌한 내 몰골이 안쓰러운지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고, 판초우의 매무새를 고쳐 줬다. 저녁에 오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빠져나왔다. 좀 이르긴 해도 오늘 일정은 임원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숙소를 잡고, 젖은 옷을 갈아 입고 수로부인 헌화 공원에 갔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지난해 닥친 태풍 '미탁' 피해복구를 위해 당분간 휴관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적어도 10개월 전에 발생한 자연재해를 아직도 복구하지 않았다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추억에 남기고자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핸드폰마저 작동 불능 상태가 돼 버렸다. 습도가 높은 비 오는 날이라 핸드폰에 습기가 차서 나타난 현상 같았다.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와 핸드폰을 분해해서 헤어 드라이로 말렸다. 일주일 전 친구들과 삼척 덕풍계곡을 트레킹 했을 때도 이런 경험을 했었다. 계곡물에 빠뜨린 핸드폰이 작동 불능 상태가 돼서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응급처치 방법을 알려줬다. 천만다행 이번에도 핸드폰은 살아났다. 만약 고장 난 핸드폰을 고치지 못했다면 트레킹을 중단하거나, 새로운 핸드폰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다. 기쁜 마음으로 임원항 횟집에 갔다. 회센터 긴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작은 어촌 마을에 이렇게 많은 횟집이 장사가 될까 싶었다. 가게가 몇 개 나고 물었더니 41개라 했다. 그래도 전국에 소문이 나서 휴일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느다고 했다. 소주도 한잔하고 저녁도 먹을 수 있도록 3만 원 정도로 해달라 했더니, 회에 매운탕까지 4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푸짐한 회에 소주 1병 그리고 매운탕에 밥 1그릇을 기분 좋게 비웠다.
다음날 새벽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오늘 가야 할 길을 인터넷 앱으로 확인해 보니, 해안길이 아니라 내륙 차도였다. 어제와 엇비슷한 코스였다. 거기에다 해신당공원이 코스에서 빠져 있었다. 해파랑길에서 가장 상징성 있는 곳을 뽑으라면 단연코 수로부인 공원과 해신당 공원을 꼽을 것이다.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절벽 진달래를 꺾어 헌화가를 바치고, 동해 바다의 용왕도 반해 납치한 절세미인 수로부인을 못 본 것도 원통한데, 해신당공원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코스를 변경해서라도 해신당 공원은 가기로 했다. 임원천을 따라가다가 임원교를 지나 해파랑길과 헤어저 삼척로로 들어섰다. 그리고 1시간쯤 걸어 신남 해신당공원에 도착했다. 발열체크를 하고 방문자 기록을 하고 들어갔다. 코로나 19 이후 생긴 새로운 절차이다.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남성 성기가 앞을 가로막았다. 상스럽기보다 해학적인 느낌이 들었다. 해신당은 벼랑 끝 소나무 숲 속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전설의 주인공 처녀 애랑이 얌전한 자세로 모서져 있고, 벽에는 나무로 만든 남근이 다발로 매달려 있었다. 해신당 뒷 쪽을 돌아가자 바위섬들이 보였고, 세찬 파도가 쉴 새 없이 바위를 때리고 흰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해초를 따던 애랑 처녀가 거센 파도에 휩쓸러 죽은 곳이 저 바위섬일까.
옛날 신남마을에 결혼을 앞둔 처녀 애랑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해초를 따러 나간 애랑은 거센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이후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자 마을 사람들이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나무로 남근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풍어와 다산을 바라는 어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해신당은 마을 사람들에겐 성스러운 곳이었을 것이다. 신화가 사라진 오늘날, 해신당공원은 신앙의 터가 아니라 해학의 터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성 신앙이 이어저 온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삼척이다.' 어촌민속전시관에 전시된 자료에 쓰여 있는 말이다. 삼척 관내 곳곳에 남근 신앙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두타산 쉰움산 정상에 있는 50개의 우물, 오십정이 여곡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와 조화를 이뤄 남근석 신화가 형성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쉰움산의 오십정은 화강암 바위가 오랫동안 침식과 풍화의 결과 생겨난 자연의 조각품이다. 옛사람들은 다산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일부러 큰 바위에 성혈을 파서 숭배했는데, 자연이 만든 거대한 성혈을 숭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을 것이다. 이렇게 여근과 남근 숭배는 자연스레 삼척지방의 풍습이 되었고, 해신당이란 독특한 전설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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