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암 - 진천 수중보 - 동해역 - 묵호 (13.6km)
* 해파랑길 33코스
추암 촛대바위는 단연 돋보이는 풍광이다. 한 때 애국가 영상 첫 화면, 해 뜨는 동해바다 장면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뾰족하게 생긴 바위는 기이했다. 마치 오벨리스크처럼 상승미가 있고 당당한 모습이다. 수많은 세월에 걸쳐 파도에 깎기고 비바람에 다듬어져 만들어진 자연의 예술품인 것이다. 자연의 힘은 신비롭고 경외롭다. 이러한 모양의 바위는 이 지역이 석회암 지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화강암 지대였다면 촛대바위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이색적인 모양을 한 바위들이 나타난다. 이들 또한 석회암 지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지역은 5억 년 전 고생대에, 바닷속에서 산호 조개껍질 등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석회암지대이다. 석회암은 비교적 물에 잘 녹아 천연동굴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촛대바위처럼 특이한 형태의 바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주변에는 레저와 휴양시설이 많다. 솔비치 리조트가 바로 인근에 있고, 어린이들이 좋아할 이사부 사자공원도 있고, 수로부인 공원도 있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의 풍광을 느낄 수 있고, 그 옛날 신라시대로 돌아가 역사의 현장 속에서 상상 체험을 할 수 있다. 더불어 레저와 휴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았다.
추암 조각공원을 지나 철도 건널목을 지나니 6차선 넓은 도로가 나타났다. 길은 깨끗했고, 중앙분리대에는 느티나무가 심겨 있었고, 길가 가로수는 회화나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벚나무 가로수가 아니라서 좋았다. 건물도 주변 경관에 어울리게 흰색과 파란색을 기본으로 옅게 칠해져 있었다. 이게 뭘까, 연구단지인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예상 밖의 풍경에 궁금증이 갑자기 일었다. 인터넷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동해 무역자유지역이었다. 조금 더 길을 내려가니 깔끔하게 단장한 쌍용시멘트공장이 나타났고, 동해항이 나타났다. 대단위 물류시설이 자리 잡고 있고, 외항에는 큰 배도 정박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동해시는 두타산과 무릉계곡이 있고 과거 금광산 관광 출발항이 있는 곳 정도인데, 이제 보니 동해시는 공업도시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동해시는 1980년 공업이 발달한 삼척군 북평읍과 어업이 발달한 명주군 묵호읍이 합쳐 하나의 시로 탄생하였다. 석회암지대에 자리한 지리적 여건으로 시멘트산업을 주축으로 성장하였고, 항만시설을 넓히는 등 환동해권 중심 항만산업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도시였다.
강을 따라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고, 강변에서는 시민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강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는 까마득히 위쪽 멀리 있었다. 그래도 강바람이 불고 시원하게 물소리도 들려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거의 30분쯤 걸었을 때, 수중보 다리가 나타났다. 최근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려 보위로 물이 넘치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주저 없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수중보 위로 걸었다. 수중보를 걸어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수중보는 어릴 적 놀이터였다. 물놀이 재미 삼아 걷기도 했고, 학교에 가기 위해 건너기도 했었다. 유쾌한 기분과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이 오브랩 됐다. 강을 건너자 해파랑길은 기찻길 옆으로 계속 이어졌다. 도중에 만난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기차가 뜸하게 다니는 기찻길 옆 쉼터는 조용하고 편안함이 느껴졌다. 측백나무 울타리는 길손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길동무가 돼 주었다. 작은 실바람에도 논벼는 사르르 웃음 참으며 잔물결 일듯 춤추고 있었다. 이런 목가적인 풍경을 또 어디에서 봤던가. 그리고 푸른 바다, 해안경비초소, 해파랑길 나무데크, 기찻길이 함께 있는 그림 같은 풍경. 해파랑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매혹적 광경이 아닌가.
묵호항역을 지나 묵호항으로 가는 길은 시간이 멈춘 듯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마치 지나간 시대물 영화 세트장 같았다. 쓸쓸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공업화된 곳과 아직 어업이 주 산업인 지역과의 차이가 아닌가 싶었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여전히 어업을 계속하는 지역은 주민이 줄고 빈집이 늘어나고 쇠락해가고 있는 반면, 공업화되거나 레저 또는 휴양지로 변신한 지역은 멋지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8시가 조금 지나 묵호항에 도착했다. 어판장 경매시간이 지난 탓인지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고, 동해바다의 명물 곰치와 망치 몇 상자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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