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박) - 당집 - 활공장 - 안인 - 강동초교 - 정감이 숲길 - 오독떼기 전수관 (25.0km)
* 해파랑길 36코스, 해파랑길 37코스, 바우길 8구간, 바우길 7구간
* 강동초교에서 귀가후, 다시 다음달 이어 트레킹
정동진 해변에서 멋진 일출광경을 보고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아침 요기를 하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은 완만했고, 공기는 산뜻했고, 날씨도 더워지기 전이라 걷기에는 힘들지 않았다. 다만 가끔 코끝에 걸리는 거미줄이 나를 귀찮게 했다. 밤새 애써 처 놓은 거미에게는 미안한 짓이었지만,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휘휘 저어 거미줄을 걷어내고 걸었다. 오늘 산길을 걷는 첫 여행자가 나인 듯했다. 이른 아침이라 나보다 먼저 지나간 사람은 없는 듯했다. 이 길은 강릉바우길로 지정되기 오래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걷던 길 같았다. 정동진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옛 지름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에 정동진 사는 박 씨가 마른 생선이며 때깔 좋은 미역을 지고 넘기도 했을 것이며, 김씨네 작은 애기가 가마 타고 시집가던 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험한 길은 아니지만 거리는 만만찮다. 왕복 40리는 족히 되는 길이다. 그때 이 길을 나선 사람들도 나처럼 새벽에 출발하였을 것이다. 못생긴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억센 생명력을 자랑하는 신갈나무 그늘을 지나고, 오리나무 군락지 숲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 산길에서 제일 높은 산은 괘방산인데, 4백 미터가 채 안된다. 괘방산 정상을 지나자 반대편에서 나처럼 혼자 오는 사람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가볍게 목례와 인사를 했다. 그리고 완만한 산길을 내려가니 소나무 숲 속에 성황당이 나타났다. 당집은 낡았지만 누군가 정성드레 관리를 한 느낌이 들었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여행의 안녕을 기원했을 터이고, 인근 마을 사람들은 풍농 풍어와 가정의 행복을 축원했을 것이다. 나는 당집에 누가 모서져 있는지 궁금해서 문을 열었다가 자세히 보지도 못하고 엉겁결에 문을 닫아 버렸다. 성황당은 어릴 적부터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후미진 숲 속에 있기도 했지만, 성황당에 애먼 짓하면 앙문당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기에 성황당에 대한 공포심이 마음속에 내재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까이 바다가 보이고 멀리 백두대간도 보이는 전망 좋은 활공장에 '야영 절대금지' '취사행위 절대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백팩킹 열풍을 타고 늘어난 야영족들이 무분별하게 활공장에 텐트를 치고 취사행위를 하다 보니 자연훼손이 심해졌던 것 같았다.
산길을 다 내려오니 작은 어촌마을, 안인이 나타났다. '예부터 편안하고 착한 사람이 모여사는 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눈 길을 끌었다. 시간은 벌써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산길을 꼬박 4시간이나 걸은 셈이었다. 햇볕은 한 여름답게 쨍쨍 내려쬐고, 숨이 막힐 정도로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마을을 지나자 그늘 하나 없는 들길이 이어졌다. 가끔 불어오는 실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한 여름, 그늘 없는 들길은 오르내리막 산길 보다 더 지친다는 것을 절감했다.
강동초등학교를 지나니 아담한 시골교회가 나타났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차별금지법을 우리는 반대한다'라는 프랑카드가 담벼락에 걸려 있었다. 우리 사회의 각종 차별을 금지한다는 좋은 취지의 법제정임에도 반대하는 이유는 이 법이 시행되면, 성경에서는 죄악시하고 있는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동성 간 결혼 허용, 우리 사회가 과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지역사회에서 향교나 서원이 아닌 교회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여론 형성의 주체가 된 듯했다.
마을 안길을 지나 '정감이 마을 등산로'로 진입하였다. 이 길에서 연인끼리 사랑의 언약을 하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전해진다고 했다. 숲길은 완만했고, 온통 소나무 숲이었다. 숲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에서 신갈나무와 같은 활엽수림으로 바뀐다. 우리나라 숲은 이런 숲의 천이가 한창 진행 중이다. 어디로 가나 소나무와 신갈나무는 치열하게 생존 싸움을 하고 있다. 대부분 산에서 소나무는 살던 자리를 내어 주고 살기 힘든 메마른 남쪽 사면이나 바위산으로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정남이 마을 등산로 주변에는 아직도 소나무가 산을 지키고 있었다. 특이하게 능선 등산로를 경계로 남사면과 북사면의 소나무가 사뭇 모양이 달랐다. 남사면 소나무는 못생겼고, 북사면 소나무는 쭉쭉 뻗고 때깔도 붉어 한눈에 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남사면 소나무는 화목 외에는 쓸 데가 없을 듯했고, 북사면 소나무는 재목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수형이 멋있었다. 식물은 토양 중 수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메마른 남사면에 뿌리내린 소나무와 축축한 북사면에 뿌리내린 소나무는 이렇듯 전혀 달랐다. 같은 종류의 씨앗이라도 어디에 떨어졌나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 것이다. 언젠가 신문 칼럼에서 본 '자연계에서도 운칠기삼이 적용된다'는 글이 얄밉게 새삼 떠올랐다. 이런 엉뚱한 생각에 잠겨 걷는데, 생뚱맞게 태양광발전 집광판 패널이 온통 산 남사면을 덮고 있었다. 곡측전(曲則全),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 이 말도 이젠 옛 말이 되었는가. 양지바른 남사면의 못생긴 소나무 밭에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들어서고, 북사면 잘 생긴 소나무 숲은 오히려 보호받는 시대로 변하는 것 같다.
숲을 내려오자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된 논에는 벼가 자라고 있고, 밭에는 고추가 붉게 익어가고, 수로에는 벌써 들국화가 노랗게 하늘거리고 있었다. 강릉이 바닷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너른 들이 펼쳐져 있었다. 백두대간 대관령과 동해바다 사이에 형성된 들은 평야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넓었다. 강릉이 예나 지금이나 동해안 지역의 중심적인 도시로서 역할을 하고,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너른 평야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 멋있게 생긴 소나무 두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마을 쉼터인 정자나무 숲인가 생각하고 가보니, 작은 서낭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새긴 자연석이 서 있었지만 잡초가 무성하고 관리가 돼 있지 않아 쉴 수는 없었다. 숲 한 켠에 있는 서낭당은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전형적인 서낭당 모습이었다. 5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 마을마다 있었던 서낭당은 새마을운동 때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많이 파괴돼 사라졌다. 그래도 동해안 지역에는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아마 거친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고,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했기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할 성전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릉지역에는 다른 동해안 지역보다 더 많은 서낭당이 눈에 띄었다. 해파랑길을 따라 올라 오면서 본 서낭당의 당산나무는 대부분 느티나무이거나 팽나무였는데 강릉지역 서낭당 당산나무는 거의 소나무 일색인 것도 색다르게 느껴졌다. 주문진 바닷가에 본 서낭당은 파격을 넘어 충격적으로 변신해 있었다. 전통적인 팔작지붕형태를 버리고 현대적 감각을 살려 디자인한 모습으로 바위 위에 날아갈 듯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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