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당 - 길남 - 용화 - 황영조 기념공원 - 궁촌 - 덕산 (박) - 맹방 (19.8km)
* 삼척로, 해파랑길 30 코스, 해파랑길 31코스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
해파랑길이란 이름은 2008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모를 통해 정했다고 한다. 동해안 둘레길 이름으로 잘 어울리며, 어감이 좋은 멋진 이름이다. 지금까지 해파랑길을 걸으며 '우리나라 참 아름답다'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았다. 해안선을 지키던 군 초병이 다녔던 해안길, 스토리가 있는 숲 길 등에서 감동하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지난 3일 동안 그런 행복한 느낌보다 힘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내내 비가 온 탓도 있었겠지만, 파도소리보다 차 소리를 더 많이 들으며 걸었다. 여러모로 보행자에게 친화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정규코스를 벗어나기도 했다. 특히 지금 걷고 있는 길은 해신당공원을 보고 싶은 내 욕심에서 비롯됐지만, 해파랑길 29 정규코스에서 크게 벗어났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저 걷던 중, '갈남어촌체험마을' 안내판을 보고 해안으로 내려갔다. 모처럼 만난 포구마을은 아담하고 아름답고 깨끗했다. 해수욕장과 방파제 출입을 통제하고 바다체험장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수익도 올리고 환경도 깨끗하게 보전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객들이 쓰레기만 남기고 간다는 할머니의 하소연을 어느 포구마을에서 듣기도 했었다. 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어촌에서 휴양과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 어촌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장호항과 용화항을 잇는 해상 케이블카가 놓여 있었고, 용화에는 레일바이크가 비 오는 중에도 성업 중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레일바이크 매표소로 갔더니 한 사람만은 탈 수 없다고 했다. 용화에는 유별나게 펜션과 민박집이 많았다. 해안 경치 좋은 곳은 레일바이크에 빼앗기고, 또다시 삭막한 찻길로 들어섰다. 헤어졌던 주황색 해파랑길 리본을 다시 만났다. 뚜벅뚜벅 걷다 보니 올림픽 마라톤 영웅, 황영조 기념공원이 나타났다. 그 당시 몬주익 언덕을 재현해 놓은 듯한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결승점을 향해, 금메달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는 황영조 동상이 생동감 있게 표현돼 있었다.
다시 비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거세지기 시작했다. 원평 해수욕장을 지나고 궁촌 해수욕장에 왔을 때는 앞을 못 볼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비바람을 막아줄 나무나 건물이 전혀 없는 해수욕장이라 더더욱 세차게 몰아쳤다. 거센 비바람을 조금이라도 빨리 피해야겠다는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마을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아뿔싸, 꼭 들리고 싶었던 공양왕릉을 지나치고 말았다. 그것도 한참이나 지나서 알아차렸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무덤은 경기도 고양과 강원도 삼척 두 곳에 있다. 그중 고양에 있는 왕릉이 공식적으로 공왕왕릉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이곳이 공양왕릉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고 한다. 마을 이름이 궁촌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 란다. 이성계에게 왕위를 빼앗긴 공양왕은 삼척으로 유배를 당했고, 그 후 이성계가 보낸 자객이 공양왕을 죽이고 그 증거로 목은 개성으로 보내고 몸은 삼척에 묻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삼척에는 공양왕 말고도 고려말 역사적 인물의 유적이 두 곳 더 있다. 원 간섭기에 이승휴는 두타산 자락 쉰움산 천은사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다. 원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를 개혁하고자 하다 오히려 파직당하고 삼척으로 돌아온 그는,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내세워 우리 민족이 단군을 중심으로 한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고려말 역성혁명에 성공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의 묘지인 준경묘도 삼척에 있다. 준경묘는 풍수가들 사이에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며, 소나무 숲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준경묘를 감싸고 있는 금강송 소나무 숲을 보면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다. 준경묘 앞에는 우수 소나무 혈통 보존을 위해 보은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와 혼례를 치른 미인송이 있으며, 뒷산에는 불탄 숭례문 복원 때 잘린 '어명을 받은 소나무' 그루터기가 남아있다. 해파랑길에 준경묘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나는 준경묘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보고 싶어 세 번이나 다녀왔다.
오후 5시쯤 비에 젖고 지친 몸으로 덕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마침 비는 개었다. 둘려 보아도 모텔도 보이지 않고, 큰 건물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 밭일을 하는 할머니가 보여 식당도하고 민박도 하는 집이 있나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씻어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말리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 벽에는 유명 연예인들 사인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여기 유명한 곳인가 봐요? 했더니, 마라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봉주 처갓집 동네로 '백년손님' 촬영한 곳이라고 했다. 속초에는 올림픽 마라톤 영웅들과 인연이 많은 곳인가 싶었다. 소화가 잘되는 전복죽을 곱빼기로 먹고 막걸리가 없어 맥주도 한 병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6시, 하늘은 잔뜩 흐렸고 파도는 거칠게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일기예보에는 비구름이 동해바다로 빠지고, 온종일 흐릴 것이라고 했다. 사흘 동안 비를 맞고 걷다가, 나흘 만에 판초우의를 벗고 홀가분하게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덕산해수욕장과 맹방해수욕장 사이에는 마읍천이 흐르고 있었다. 비 온 뒤라 강물도 불어났고, 물살도 제법 빨랐다. 다리는 상당히 위쪽에 있어 돌아가야 했다. 하구에 있는 덕봉산 뒤쪽으로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을 것 같아 지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있기는 한데 물이 불어 건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안되면 도강한다는 마음으로 갔더니 통나무로 만든 예쁜 다리가 나타났다. 한 사람만 지날 수 있는 폭이 좁은 외나무다리라 아찔하고 스릴감이 느껴졌다. 맹방해수욕장은 텅 비어 있었다. 장식용 서핑 보드만 줄지어 서있고, 빈 텐트만 덩그러니 해변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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