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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15. 이색, 신돌석의 고장 영해

축산항 - 대소산 봉수대 - 괴시리 전통마을 - 영해시장 - 송천교 - 고래불 해변 (16.1km)
* 해파랑길 22 코스,  영덕 블루로드 C

 

 

영덕 블루로드 마지막 코스인 '목은 사색의 길'에 접어들었다. 다시 해안길을 벗어나 완만한 오르막 소나무 숲길이 었다. 숲길은 푹신한 육산 흙길은 아니지만 걷기 좋은 단단한 흙길이었다. 소나무는 마침 적당한 높이로 자라 따가운 햇살을 막아줬고 길가 키 작은 나무들도 귀여운 아이처럼 반가웠다. 그런데 여기 소나무는 쭉쭉 뻗고 잘생긴 소나무가 아니라 뒤틀리고 가지가 많은 못생긴 소나무였다. 아마 뿌리를 내린 산이 척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어릴 때 엄마 손잡고 넘던 외갓집 가는 벌거벗은 산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옆에는 그때 따 먹었던 새콤한 맹감 열매도 보였고, 떫은 도토리를 단 졸참나무도 보였다. 6월 바쁜 모내기철을 지나, 아직도 배고픈 계절에 외가집 가던 아련한 추억이 오브랩됐다. 산길은 대소산 봉수대를 지나고, 몇 구비 오르내리막을 지나 8.1km나 계속되었다. 걸어서 약 3시간 걸리는 짧지 않은 산길이었다. 그런데 이 산길은 너무 편안했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울진 금강송길 소나무처럼 잘 생긴 10등신 미인송도 아니고, 경주 남산 소나무처럼 꼬불꼬불 과장된 몸짓 수형도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가릴 만큼 빽빽한 숲이 아니라서 좋았다. 적당히 듬성듬성 성기게 자라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래서 숲이 주는 까닭 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 않아서 좋았다. 

 

시원한 솔바람에 개망초 향이 느껴졌다.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멋진 기와집들이 모여있는 괴시마을이 나타났다. 원래 지명은 근처의 연못 이름을 따서 호지촌(濠池村)이라 불렸다. 오랫동안 중국 원나라에 머무르다 귀국한 이색이 고향 호지촌과 중국 괴시마을이 비슷하다고 해서 괴시(槐市)로 고쳤다고 한다. 지금도 주민들은 호지마을이라는 지명을 애용한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수령을 알 수 없는 왕버들이 마을의 오랜 전설과 역사를 말해주는 듯 기품 있게 서있었다. 전통마을로 지정된 이 마을에는 영양 남 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영해고등학교 앞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대진항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만 영해 읍내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해파랑길 안내 리본이 보이지 않아 미심쩍기도 했지만 그런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계속 걸어갔다. 육거리가 나타났고, 로터리 중앙에는 1919년 3.18 만세의거 탑이 세워져 있었다. 바로 옆 전통시장은 '영해 만세 시장' 간판이 걸려 있었다.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영해 3·18 만세운동은 한강 이남 최대 규모 만세운동이었다고 한다. 3천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였고, 500명 가까운 사람이 체포되었다. 지방에서는 드물게 기독교계와 유림이 뜻을 같이 했고, 유력 가문들도 힘을 합쳤다고 한다. 가문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기에 가능한 가문 중심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발현된 것일까.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돌석 장군 유적지도 있다. 영해라는 지역은 민족의식이 유별나게 강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선말 동해안 의병투쟁의 중심지였기도 하고, 일제시대에는 어느 지역보다 강렬하게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이것도 전통을 지키려는 이 지역의 유전인자인가. 멀리 고려가 저물어가던 시기 고려 왕조를 지키려고 했던 목은 이색 선생, 그리고 일본의 침략에 맞서 무장으로 맞선 신돌석과 비폭력으로 저항한 영해의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한 감응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해 만세시장 옆길을 걸어 논길로 들어섰다. 지도를 보니 해파랑길은 이 논길과 평행하게 뻗은 차들이 다니는 지방도로였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기에 그냥 논길로 가기로 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시멘트 포장 논길이라 햇볕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덥지는 않았다. 너른 들판 너머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고 시원했다. 영해들은 의외로 넓었다. 동해 바다 쪽으로는 넓은 들판이 없을 것이란 생각은 영해들을 보면 바꿔야 한다. 논에는 벼가 튼실하게 자라, 온 들은 녹색 카펫을 갈아놓은 듯했다. 

 

길은 잘 못 들었지만, 그 덕분에 영해만세운동 기념탑을 볼 수 있었고 영해 들판을 걸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진해수욕장은 가지 못했다. 이문열의 소설 '그해 겨울'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은 강했으나, 다시 되돌아가는 것은 지친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송천을 건너자 고래불해수욕장이 나타났다. 길이 약 4.6km, 폭 30-100m에 달하는 경북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수욕장이라고 안내돼 있지만 접근이 쉽지 않았고, 도로는 걷기에 너무 불편했다. 잠시 소나무 숲길을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스팔트 옆 인도를 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