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파랑길

해파랑길6. 다시 걷고 싶은 강동사랑길

 

일산해수욕장 - (시내버스) - 남목1동 버스정류장 - 주전 몽돌해수욕장 - 제전장어마을 - 정자해변공원 - 나아 - (택시) - 문무대왕 수중릉 (박) (29.7km)
* 해파랑길 9코스, 해파랑길 10코스, 강동사랑길 2 4 5구간

 

4월 28일,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왔다. 어제와는 반대편 정류장에서 401번 버스를 타고 남목1동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했다. 마침 출근시간이라 현대중공원 직원들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지나갔고, 노조복을 입고 검은 두건을 두른 노조원이 도로 한복판에서 속보라고 큼직하게 인쇄된 소식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울산이라는 도시는 현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 느껴졌다. 아파트 뒷길을 지나 봉대산에 올랐다. 지금은 주민들의 등산겸 산책코스지만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쓸 말을 키우는 남목마성이 있었던 곳이다.

 

 

 

해변 마을로 내러서자 아침해를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동해바다를 마주하게 되었고, 특이한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주전마을이었다. 옛날 마을 제당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제당을 형상화한 조형물이었다. 반농반어 마을이었던 주전마을엔 자연부락단위로 제당이 10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농업을 주로 하는 산 쪽 마을 제당은 할배신을 모셨고, 어업이 주업인 바닷가 마을 제당은 할매신을 모셨다고 한다. 마을의 위치에 따라 다른 독특한 민간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민이 줄어들고 젊은이가 마을을 떠남에 따라 마을마다 동제를 지내기가 어렵게 되자 새로 지은 경로당 2층에 모든 제당의 위패를 모시고 함께 동제를 지내게 되었고, 그 후 자연스레 제당도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2005년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기위한 사업을 하면서 사라진 제당터에 표지석과 조형물을 세우고 옛 제당터를 둘려보는 둘레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영험하고 신성시되었던 아랫마을 제당터에 대표 제당 조형물은 세웠다. 새로 세워진 제당 조형물 네 개 돌기둥 사이로 옛 제당의 모습이 보였다. 

 

주전마을의 또다른 명물은 몽돌해수욕장이었다. 손가락 마디 크기의 작은 몽돌들이 포물선 해안을 따라 넓고 길게 깔려 있었다. 거제 학동 몽돌해수욕장의 참외 크기의 몽돌, 보길도 예송리 몽돌해수욕장의 주먹만 한 몽돌과는 느낌이 달랐다. 질감이 거칠지 않고 깨끗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걸을 때 발목이 푹푹 깊게 빠져 모래 백사장보다 걷기가 더 힘들었다.

 

 

'여기는 제전 장어마을입니다' 라는 벽화가 그려진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장어집은 없었고 미역을 말리는 여인들의 모습만이 눈길을 끌었다. 미역 다듬고 말리는 사람들은 모두 나이 든 할머니들이었다. 보행 보조용으로도 쓰는 짐싣는 캐리어가 바닷가 계단 입구에 놓여 있었다. 미역 수확기를 맞아 포구 마을마다 미역 수확으로 분주했다. 몽돌 해변에는 어촌 할머니들이 모여 미역 다듬기에 여념이 없었고, 포구 곳곳에는 미역을 말리는 건조대가 놓여 있었다. 어촌의 봄은 농촌의 가을처럼 분주했다. 이곳에서는 양식 미역은 재배하지 않고 자연산 미역만을 채취한다고 했다. 미역어장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추첨을 통해 채취구역을 정하고, 채취는 해녀들에게 맡긴다고 했다. 미역 수확철 해녀들은 채취 전문꾼이며 그들에게 돌아가는 임금도 만만찮다고 했다. 우가마을에는 TV 인간세상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한 전국 최연소 남자 해녀, 해남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포구마을을 지나고 모퉁이를 돌아서자 철조망으로 둘려 쌓인 군부대가 나타났다. 철조망 옆으로 평평하게 닦은 길에는 괴석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폭격을 맞은 듯 부서진 초소가 방치되어 있었다. 겨우 하늘만 가린 합판 지붕 아래 깨진 초소 방호벽 그리고 흐트러지고 뒤엉킨 철조망으로 보아 군부대에서 관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파란 하늘, 푸른 바다, 군부대 철조망 그리고 방치된 해안초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마음이 끌렸다. 녹슨 철모속에 핀 야생화가 주는 느낌이랄까.

 

정자해변 수변공원에 도착하니 해파랑길 포토존이 설치돼 있고, '해파랑가게'란 간판을 단 가게도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관광 안내 광고판을 보니 정자해변을 중심으로 강동사랑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총 30.9km 7개 구간이 산과 바다를 따라 하트모양으로 이어져 있었다. 사랑을 테마로 믿음 연인 윤회 부부 배움 사색 소망이라는 이름도 각 구간마다 붙여져 있었다. 내가 걸은 해파랑길은 강동사랑길 2 4 5구간과 겹치고 있었다. 울산 북부 해파랑길에는 아주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매력적이었다. 아마 지자체에서 관심을 갖고 길을 닦고 관리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부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느껴졌다. 제당 길, 몽돌해변길, 군부대 옆길, 어촌 마을, 해녀마을 그리고 이러한 곳을 연결한 강동사랑길. 해파랑길중에서도 가장 해파랑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동사랑길은 멋진 힐링길이며, 다시 걷고 싶은 길이었다.

 

나아 해변에서 콜택시를 불렸다. "10,000원인데 갈래요?" 퉁명하고 다소 귀찮은 듯한 목소리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해안을 따라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바닷가를 따라 걸을 수 없었고, 국도를 따라 걸어야 했다. 대형 화물차량도 많이 다닐뿐더러 긴 터널을 지날 때 위험하기 때문에 택시를 타는 것이 안전했다. 자식 다 키우고, 때때로 원자력발전소에서 지원금이 나오고, 농협에서 출자배당도 받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기사님은 참 여유로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