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 - 고불봉 - 풍력발전단지 - 영덕 해맞이공원 (17.8km)
* 해파랑길 19코스 일부, 해파랑길 20 코스, 영덕 블루로드 D A
* 고불봉에서 하산 영덕버스터미널에서 귀가 후, 다시 다음 달 이어 트레킹
강구에서 해파랑길은 산길로 들어선다. 작은 산을 넘고 넘어야 하는 숲길이 자그마치 17.8km에 달하는 만만찮은 거리다. 주로 바닷길로만 걸어오다 처음으로 만나는 긴 산길이다. 강구항 대게타운 뒷길에서 10분쯤 가파른 비탈 산길을 올라서니 평탄한 숲길이 나타났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에는 허리춤 높이로 이름 모르는 키 큰 식물이 도열해 있어 마치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공기도 산뜻하게 느껴졌고, 냄새도 향기로웠고, 마음도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벌써 해파랑길 트레킹 9일째, 쭉 바닷길을 걸어 갯내음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숲 길에 들어서니 고향에 돌아온 듯 흥 바람이 났다. 마주치는 나무 하나하나에도 눈길이 가졌고, 마치 나를 따라오는 듯 가까이에서 들이는 새소리에도 두리번거려졌다.
5월의 산길답게 향긋한 향기는 끊이질 않았다. 이곳 향기의 주인공은 아카시나무와 쥐똥나무였다. 수정을 끝내고 꽃잎이 떨어지고 있는 아카시 꽃 옅은 향을 베이스로 쥐똥나무 향이 코를 자극했다. 특히 쥐똥나무 향기는 강렬했다. 이렇게 향기로운 나무에 쥐똥나무라는 상스러운 이름을 붙여줬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식물은 벌이나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거나, 향기로운 냄새를 피우는 전략을 선택한다. 쥐똥나무는 꽃을 작고 볼품없게 피우는 대신 향기로운 냄새를 피우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덕분에 5월의 산길을 향기롭다.
거의 평탄한 산길 옆으로 아카시나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두 그루가 아니라 계곡 아래까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흔히 아카시아 나무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이름이고 아카시나무가 옳은 이름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열대지방에 자라는 나무로 우리나라에는 없는 나무다.
아카시나무는 우리나라 산림녹화 성공의 일등공신이다. 지난 6,70년대 나무가 없는 척박한 민둥산, 비만 오면 산사태가 일어나는 민둥산을 살리는 데는 아카시나무만큼 적합한 나무는 없었다. 뿌리혹 박테리아를 달고 있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옆으로 길게 뻗은 천근성 뿌리를 내려 흙이 빗물에 쓸러 내려가는 것을 막아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카시나무는 천대를 받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산을 망치게 하려고 심었다느니, 목재로 사용할 수 없는 쓸모없는 나무라느니 하면서. 하지만 아카시나무만큼 고마운 나무도 드물 것이다. 산을 푸르게 했을 뿐 아니라 봄에는 풍성한 흰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과 치유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꿀벌 밀원을 제공하여 양봉농가에게도 매년 많은 수익을 제공하는 경제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카시나무 숲을 지나 산 등성에 오르자 리기다소나무 숲길이 나타났다. 리기다소나무 하면 생육이 부진하고, 둥치에 솔잎이 곳곳에 난 못 생긴 나무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데, 여기 리기다소나무는 달랐다. 키도 크고 둥치도 굵게 잘 자라 재목으로 써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기다소나무도 북미가 원산지로 산림녹화 때 주로 심어졌다. 그런데 척박한 땅에 심겨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송진이 많아 목재로도 쓰임새가 부족해 천대받는 나무 중 하나다.
영덕구간 해파랑길에서 6,70년대 사방사업으로 심어진 아카시나무와 리기다소나무가 잘 자라 형성된 멋진 숲을 만난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전국에 더 잘 가꾸어진 아카시 숲과 리기다소나무 숲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 숲은 지금까지 내가 본 산림녹화 숲 중에서 최고였으며, 더구나 접근성이 좋은 해파랑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산림녹화 성공 숲'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산림녹화'라고 큼직하게 쓴 입간판이 눈에 잘 띄는 능선에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고불봉은 이 부근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그런데 높이는 232.6m에 불과하다. 영덕 읍내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종처럼 예쁘게 생긴 산이다. 영덕 사람들은 눈을 뜨면 보이는 이 산을 좋은 기운을 안기는 안산으로 여기며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싶었다. 동쪽으로는 고불봉보다 더 낮은 산들이 들처럼 넓게 펼쳐졌다. 산봉우리, 능선은 마치 잔잔한 파도가 넘실대는 것 같았다. 하늘은 뻥하니 막힘없이 열렸고, 멀리 풍력발전기가 이채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바람길을 막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었다. 영덕에 풍력발전기가 많은 이유를 지형을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는 「맑은 공기 특별시」 영덕입니다.'
영덕은 국내 최대 풍력발전단지이며 재생에너지 메카다. 풍력발전기 24기가 설치돼 있고,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풍력발전기를 가까이서 보면 어머어마하게 크다. 높이가 80m에 달하고, 한쪽 날개 길이만 무려 41m에 달한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도 상상을 초월했다. 바람을 가르는 날개 소리가 섬찟하게 들렸고, 기계 마찰음이 때로는 천둥소리처럼, 때로는 대공 기관총 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렸다.
고불봉에서 산림생태공원까지는 임도를 따라 3시간 이상 계속 걸어야 했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흙길이 번갈아 나타났고, 무엇보다 햇볕을 막아주는 나무 그늘이 드물어 여름철 걷기에는 아주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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