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아침은 상쾌했다. 최근 자주 흐릿한 아침 하늘을 봐오다가 맑은 하늘을 보고, 청량한 바람을 쐬니 기분도 좋아졌다. 부산이 남쪽 바닷가라 기온도 높고 공기 소통도 잘되기 때문인 듯싶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부두에서 일출을 볼 수 있으련가 기대했는데, 멀리 부산항 너머로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부산대교를 건너 영도로 갔다. 다리 위에서 보는 영도의 모습은 어수선해 보였다. 영도 쪽 부두에는 소형 배들이 빼곡하게 정박해 있었고, 조선소 도크엔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움이 느껴졌고, 지붕이 깨진 채로 방치돼 있는 창고도 보였다.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 단지를 돌아 가파른 비탈길로 들어섰다. 길은 한 사람 겨우 비켜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군데군데 빈집도 눈에 띄었다. 조금 아래 새 아파트 단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어제께 본 산복도로 주변 풍경과 엇비슷했다.
봉래산 등산로에 들어섰다. 순환 둘레길에서 남파랑길 안내 리본을 따라 동쪽 방향 왼쪽 숲길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임에도 등산로에는 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쉼터 체육공원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어디를 가나 산은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휴식과 체력단련 공간이 되었다. 평탄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전망이 툭트인 곳에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가 나타났고, 조금 더 지나니 봉래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남파랑길은 순환 둘레길을 따라 계속 이어졌지만 남파랑길로 가지 않고 봉래산 정산으로 가는 등산로로 길을 틀었다. 봉래산 정상에서 부산의 전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30분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드디어 정상이 나타났다. 해발 395m,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부산시내, 부산항 그리고 부산 앞바다가 360도 막힘없이 눈에 들어왔다. 부산은 아름다웠다. 부산항, 자갈치 시장, 부산북항, 송도해수욕장, 오륙도...... 봉래산 정상은 아름다운 항구도시 부산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부산항을 가로질려 연결된 해상 다리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더해줬다. 단언컨대 부산항의 최고의 뷰 포인트는 영도 봉래산 정상이었다. 봉래산 정상에서 보니 영도 섬이 부산에서 매우 특별한 지리적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혜의 항구 입지조건을 제공하고, 도심 교통난을 해소할 수 있는 교통섬 역할을 하고, 태풍의 진로를 막는 방풍섬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영도 섬은 부산에서 없어서는 안 될 힘센 황소의 낭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래산 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니 자봉이 나타났고, 손봉이 나타났다. 남사면 길이라 바람이 거의 없었고, 따뜻한 햇볕만 가득 내려쬤다. 능선길에서 보는 부산 외항에서는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검푸른 바다는 햇볕을 받아 언뜻언뜻 옅은 황금빛으로 일렁거렸고, 군데군데 떠있는 화물선에서는 한가로움이 느껴졌다.
중리 바닷가에서 남파랑길을 다시 만났다. 약 1시간 정도 남파랑길을 벗어났었다. 그곳에서 부산 옛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 친구로 어젯밤에 만나 소주를 곁들여 저녁을 함께했었고 오늘 함께 걷기로 했었다. 조선업계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은퇴한 친구다. 함께 걸으면서 부산의 조선산업 흥망성쇠에 관한 숨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파랑길은 해안을 따라 이어졌다. 남파랑길 트레킹을 시작한지 하루 반나절만에 비로소 바닷가 다운 길을 걷게 되었다. 바닷물은 깨끗했고, 바닷길도 잘 정비돼 있고 군데군데 데크길이 놓여 있어 걷기에도 편했다. 바위 낚시를 하는 강태공 모습도 보였고,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도 보였다. 가까운 곳에서 이런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도시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해녀가 갓 잡은 해삼 멍게 성게 소라 등등을 판다는 해녀촌 주막은 손님이 드문 오전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그림같이 예쁜 풍경 속 바닷가 마을이 나타났다. '흰여울문화마을'이었다. 이곳은 625 피난민들의 애잔한 삶이 어린 곳인데, 2011년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하여 지역 예술가의 창작 마을로 거듭 태어난 곳이라 했다. 바다 풍경에 어울리게 예쁘게 단장한 해안가 집과 골목길에서는 이국적인 색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많은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연인끼리, 친구끼리 추억의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풍경을 좀 더 많이 느끼고 싶은 마음에 예쁜 카페에 들렀다. 여종업원에게 커피를 주문하고 기념사진을 부탁했더니, 멋진 배경에 멋진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근대수리조선 1번지, 영도깡깡이예술마을'
근현대 영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마을 같았다. 이곳 영도 대평동은 일제강점기 최초로 동력 엔진 조선소가 설립된 곳이라고 했다. 비록 일본 사람에 의해 설립된 것이지만 이곳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발상지인 셈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람이 불하를 받아 자체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수리조선사업의 메카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었다. 부산의 조선사업이 쇠퇴기를 맞고, 수리조선사업 능력마저 외국에 한참 뒤져 영도의 수리조선사업은 명맥만 유지한 채 쇠락하였다. 한 때 번창했던 거리는 텅 비었고, 선박 수리 도크에는 녹슨 배 몇 척만 정박해 있었고, 선박 부품 공급회사는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다. 근대 조선사업 발상지로서 각종 선박산업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되살아나 '깡깡이예술마을'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깡깡이'는 배에 두껍게 끼어있는 녹을 '깡깡' 내려쳐서 벗겨내는 망치를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영도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영도다리만큼 많은 사연을 지닌 다리도 드물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었던 625 피난민 시절 생사안녕을 확인하던 만남의 장소였으며, 볼거리 드문 시절 낮 정오에 도개하는 영도다리를 보기 위해 인파들이 몰려드는 장소였었다. 시골촌놈인 내가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맨 앞줄에 서서 신기하게 도개하는 영도다리를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도다리를 건너면 중앙동, 광복동, 남포동으로 이어지는 부산의 대표적 구 도심지다. 옛 부산시청이 있었고, 극장가가 있었고, 유명 브랜드 가게가 있었고, 음식점과 술집들이 즐비했었다. 마치 서울의 명동과 같은 곳이었다. 젊은 시절 추억이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변한 것은 옛 부산시청 자리에 롯데쇼핑몰만 덩그러니 서있을 뿐, 오히려 그때에 비해 활기는 잃은 것 같아 보였다. 부산시청이 옮겨간 자리 개발을 둘려 싸고 부산시와 롯데와의 힘겨루기가 2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최고 높이의 롯데타워를 짓겠다'는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용두산공원에서 친구 부인이 준비해준 도시락을 먹었다. 삶은 고구마, 삶은 달걀, 흰 떡 그리고 과일. 트레킹에서 먹을 수 없는 정성 가득 성찬이었다. 고맙게도 잘 먹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용두산공원 바로 뒤편에 있었다. 호기심에 두 세평 되는 책방에 들려 얘기를 들어보니, 한 때 백 곳이 넘었는데 서른 곳 정도 남았고, 그날도 한 곳이 폐점한다고 했다. 요즘 부쩍 관심이 많은 나무에 관한 책이 있나고 물었더니 '나의 소나무 답사기'라는 책을 보여주기에 두 말 않고 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양서협동조합' 안내 간판이었다. 좋은 책 보급을 통한 지역사회 교육 및 민주세력 결집을 목적으로 1978년 설립되었고,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서울 마산 대구 울산 수원 등지로 퍼졌고, 그 후 부마민주항쟁 배후로 지목되면서 강제 해산되었다고 했다.
70년대 후반, 동시대를 살았기에 많은 기억들이 되살아 났다. 숨 막히는 유신독재 시절, 숨 쉴 공간이 필요했던 젊은이들에게 해방공간과도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 양서협동조합이었다. 모일 수 있는 자유마저 없었던 시절, '페다고지'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아리랑'..... 금서가 된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동지애를 느꼈던 시절이었다. 이런 70년대 젊은이들의 고민과 몸부림이 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여는 자양분이 되었지 않나 싶다.
국제시장, 먹자골목, BIFF거리 그리고 자갈치시장이 반경 1km 이내에 인접해 있었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쓸쓸함 느껴졌다. 스타들의 핸드프린팅이 박힌 BIFF거리는 포장마차 거리로 변신했고, 국제시장도 옛날의 국제시장이 아니었다. 자갈치시장에서는 오가는 사람도 많고 부산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송도에서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해수욕장을 지나 해안 데크길로 이어진 남파랑길은 포기했다. 시간은 오후 4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기도, 걸어서 남파랑길 3 구역 끝까지 가기도 어중간했기 때문이었다. 승강장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청춘 남녀들이 두 줄로 길게 서 있었다. 젊은 사람들과 동승을 하게 되겠구나 짐작했었는데, 혼자 한 량을 독차지했다. 젊은이들은 일행끼리 또는 연인끼리 케이블카를 독차지해 저들만의 공간을 즐기고 싶었던 거였다.
남파랑길은 안남공원 해안 숲길을 따라 이어졌다. 숲은 울창했고, 단단한 흙길은 미로처럼 이리저리 뻗어 있어 호젓하게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곳은 부산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해안 절벽을 따라서는 지각변동으로 생긴 단층대가 또렷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감천항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가까운 주변에 식당이 없다는 것이 흠이었다. 저녁식사는 배달료 4천 원을 주고 시켜 먹었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식사를 거른 채 트레킹을 시작했다. 감천사거리에서 남파랑길을 따라가지 않고 감천문화마을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어젯밤 숙소에서 다음 여정을 체크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는 감천문화마을을 비켜 지나갈 수는 없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30분쯤 걸어가니 감천문화마을이 나타났다. 신기한 나라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세트장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아침 햇볕이 산비탈 마을을 비추기 시작하자 형형색색으로 꾸민 장난감 같은 집들이 산뜻하게 나타났다. 마치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가 그린 예쁜 색감의 풍경화 같았다. 고개를 넘으니 비석문화마을이었다. 공동묘지가 있던 곳에 625 피난민들이 움집을 지어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었다. 비석문화마을은 가파른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부산 도심지가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625 임시수도기념관이 바로 아래 부산대학교병원 뒤편에 있었다. 감천마을과 비석마을은 625 피난민 시절 부산의 행정 경제 중심지와 가까운 곳에 형성된 눈물겨운 생존형 마을이었다.
부산은 아름답고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었다. 흰여울문화마을, 깡깡이예술마을, BIFF거리, 자갈치시장, 감천문화마을.... 무엇보다 봉래산 정상에서 보는 부산항 뷰는 단언컨대 최고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산에 올라 본 하코다테 야경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었다. 부산을 찾는 사람들이 봉래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부산의 풍경을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
남파랑길2코스(14.5km), 남파랑길3코스(14.9km), 감천문화마을과 비석마을(2km) (총 31.4km)
<중앙역(간편조식) - 부산대교 - 해맞이전망대 - 봉래산정상 - 중리바닷가 - 흰여울문화마을 - 깡깡이예술마을 - 영도대교 - 용두산공원(도시락 점심) - 보수동책방골목 - 국제시장 - 광복동BIFF거리 - 자갈치시장 - 송도해수욕장 - (케이블카) - 암남공원 - 감천항(박,석식) - 감천사거리(간편조식) - 감천문화마을 - 비석문화마을 - 토성역>
1.19일 7시 - 17시 30분, 1.20일 7시 - 9시 (총1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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