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중심가인 상남동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24시 영업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택시를 타고 진해 편백치유의 숲으로 되돌아갔다.
상남동은 음식점, 술집, 호텔이 총 집결해 있는 창원의 원스톱 유흥 상업지구다. 오랜만에 창원에 내려온 김에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 회포도 풀었다. 한 사람은 창원관내 현직 조합장으로 내가 창원에 근무할 당시 얼떨결에 혈주를 마시고 의형제가 되어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이며, 또 한 사람은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로 수많은 일탈적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다. 놀랍게도 고등학교 친구는 고3 때 보충수업 들어가지 않고 며칠 놀다 온 내 고향동네에 최근 다녀왔다고 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수차례 빰을 맞고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참으로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고 있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두 사람은 두주불사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술을 완전히 끊었다. 그래도 상남동 횟집에서의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편백치유의 숲에서 바로 남파랑길로 가지 않고 장복산 정상에 올랐다. 장복산은 창원과 진해 사이에 있는 산이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하고 제법 돌아서 가는 길이지만 창원특례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산이기에 올라가고 싶었다. 해발 584m. 장복산 정산은 생각보다 높았다. 시간도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장복산 정상에 서니 사방으로 뻗은 창원특례시가 막힘없이 눈에 들어왔다. 북쪽으로는 정병산아래 도청 그리고 주거지역과 공업지역으로 나뉜 창원지역이 보였고, 서쪽으로는 무학산과 마산시가지 그리고 마산항이 보였고, 남쪽으로는 진해만과 진해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2010년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되어 출발한 창원시는 2022년 1월 주민 100만 이상의 도시에 부여되는 특례시로 승격되었다.
장복산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와 마진터널 고갯마루에서 남파랑길과 다시 만났다. 길은 울창한 편백나무 숲 사이로 이어졌다. 꼬불꼬불 비탈길을 내려가자 평탄한 산길이 나타났다. 너무나 느낌이 좋은 산길이었다. 옛날 나무꾼이 지게를 지고 다니던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오래전에 본 이란 영화 '올리브나무 사이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청혼을 하고 꼬불꼬불 언덕길을 뛰어 내려가 올리브나무 숲길로 사라지는 그 멋진 장면이 오브랩되었다.
숲길에는 '숲속나들이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기분 좋은 편백나무 숲길은 1.6km나 되었고, 다시 갈비가 수북이 쌓인 소나무 숲길로 이어졌다. 편백나무와 소나무에서 나는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걸으니 마음마저 정화되는 듯했다. 그 향기를 온몸으로 듬뿍 맡으며 천천히 걸었다.
숲 길을 빠져나오자 창원공단 뒤편이었고, 창원천을 건너자 바로 마산지역이었다. 그런데 마산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은 너무 불편했다. 창원지역에서 마산지역으로 넘어가는 봉암교 교차로에는 건널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화물차량이 쌩쌩 달리는 4차선 차량전용도로를 1.5km쯤이나 내려가서야 겨우 건널목을 만날 수 있었고, 다시 그 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야생동물 이동통로도 만드는데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통행로가 없었다. 편백나무와 소나무 숲 길을 내려오면서 한껏 기분이 업되었었는데,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봉암교를 건너니 바로 마산무역자유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전용공단으로 한 때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하던 곳이다. 산업화 초기 외국 자본을 유치하여 오늘의 경제대국 대한민국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곳이기도 하다. 상징탑이 우뚝 솟아 있었지만 쇠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초기 저임금을 바탕으로 유치되었던 외국기업의 역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것이다.
수출자유지역교를 건너고, 사거리 교차로를 지나서 김주열열사 흉상을 만났다.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정신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었다. 흉상 바로 뒤편 담 너머로는 그의 모교인 마산용마고등학교(구 마산상업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하얀 이팝나무 꽃잎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임항선 그린웨이에 들어섰다. 마산항으로 들어가던 기차 철길 4.6km를 공원 산책로로 바꾼 길이었다. 한 때 마산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철길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었다. 잰걸음으로 바쁘게 걷는 직장인,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유모차를 탄 손녀와 함께 걷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애완견과 함께 걷는 주부... 불편한 몸으로 한걸음 한걸음 어렵게 걸음을 떼며 재활하는 사람도 보였다. 기차선로폭 넓이의 좁은 산책로였지만 보행로와 자전거길이 나무 가로수 아래 조성되어 있었다. 누구나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곳곳에 쉬어 갈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었고, 적당한 거리마다 화장실이 갖춰져 있었다.
임항선 그린웨이를 걷다 보니 '가고파꼬부랑길 벽화마을'이 나타났다.
무학산 산자락이 내려온 비탈진 언덕배기 길에 연탄수례를 끌고 밀고 가는 모녀의 모습이 사실감 있게 형상화되어 있었다.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6,70년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단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마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많은 서민들이 사는 주거지였을 것이다. 점점 늘어나는 빈 집, 빛바래가는 벽화에서 굳세게 살아온 그 당시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었지만 쓸쓸한 풍경이기도 했다.
마산항 동쪽 끝 바닷가에 김주열열사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3.15 부정선거 항거 시위 중 행방불명된 김주열열사의 시신이 떠오른 장소라고 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방향은 남쪽 바다가 아니라 북쪽이었다. 부정선거를 저지른 이승만 정부를 향한 분노의 눈길 같았다.
두 눈에 최루탄이 박힌 끔찍한 모습을 본 마산시민들의 분노는 봉기로 폭발했고, 위대하고 거룩한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남원출신으로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수험생이었던 김주열열사의 억울한 죽음은 불의에 불같이 항거한 마산시민들의 위대한 시민정신에 의해 우리나라 민주주의 초석으로 되살아 났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숱하게 부르고 들었던 노래 '가고파'의 가사 때문이지 마산항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내륙 깊숙이 들어온 마산항은 노랫말대로 잔잔했다. 능선이 부드러운 순한 산과 섬들로 둘려 싸인 은빛 바다는 아련했다. 한가하게 상선이 떠 있는 호수 같은 바다는 산촌 출신인 나에게도 고향 같은 아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은 얼마가지 않아 금세 바뀌었다. 인공섬을 만들고, 공원을 새로 조성하고...
마산항 정비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산항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새로운 마산항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마창대교가 마산항을 가로질러 건설되었고, 마산가포 신항만이 건설 중이었으며, 고층 아파트가 산아래 전망 좋은 곳을 점령해가고 있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버스를 타고 오동동 아구찜거리로 갔다. 3대째 아구찜 식당을 한다는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메뉴를 보니 2인분 이상 주문을 받고 있었다. 어쩌지 배낭을 메고 난감해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밝은 목소리로 자리 안내를 했다. 일부러 마산 아구찜 명성을 찾아온 고객을 용하게도 알아봐 줘서 고마웠다. 그래서 그런지 아구찜은 맵고 달고 맛있었다.
다시 서부마산으로 돌아와 아파트 단지옆길, 부동산 중개사 간판이 줄지어 있는 길을 따라 걸어 산길로 접어들었다. 조금 가파른 산길을 얼마쯤 올라가니 청량산 산책로가 나타났다. 임도를 따라 아스콘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더러는 가족끼리, 더러는 친구끼리 가벼운 옷차림으로 장난치며 얘기하며 걷고 있었고, 심심찮게 조깅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청량산 산책로를 벗어나자 남파랑길은 걷기에 너무 불편했다. 인도가 없는 찻길을 걸어야 했고, 차량이 쉴 새 없이 달리는 아스팔트 지방도로를 계속 걸어야 했다. 갓길에는 독 오른 가시 같은 씨앗이 달린 도깨비바늘 풀이 왜 그렇게 많은지. 갓길에 바짝 붙여 걷다 보니 씨앗이 바짓가랑이며 소맷자락에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차량만 달리는 길을 외롭게 계속 걸었다. 구름 속에서 가끔 나타나는 태양만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남파랑길이라 하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작은 언덕 같은 고개를 넘고 또 넘어야 했다. 참 지루하고 지치게 하는 길이었다. 목적지 진동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스스로 위로하며 고개 내리막길을 걷다가 반갑게도 '무심정 찻집'을 만났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쫄래쫄래 꼬리를 흔들며 먼저 맞이했다. 오미자, 쌍화차, 커피... 라면도 파는 집이었다. 차를 타고 고갯길을 넘다 보면 어쩌다 만나기도 하는 허름한 집 안에는 나이 많은 남자 세분과 중년의 여성이 한창 얘기 중이었다. 그 분위기를 깨고 불쑥 들어온 나를 생뚱맞은 듯이 처다 보았다. 작은 강아지는 사람이 그리웠던지 내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마땅히 줄게 없어 사탕 1개를 줬더니 탁자 밑에 돌아가 혼자 놀았다.
2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옷에 붙은 도깨비풀 씨앗을 떼면서 쉬었다. 그런데 지도앱을 보니 남파랑길을 벗어나 있었다. 고개를 올라오기 전 제말장군 묘 앞에서 바닷가 길로 갔어야 했는데, 그냥 무심결에 찻길을 계속 걸어온 것이었다.
남파랑길9코스(16.6km), 남파랑길10코스(15.6km), 남파랑길11코스(8.0km) (총 40.2km)
<창원 상남동 - (택시) - 편백치유의 숲 - 장복산 - 진해드림로드입구 - 웅남동행정복지센터 - 봉암교 - 수출자유지역교 -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 마산항 - (버스) - 오동동아구찜거리(점심) - 마산항 - 청량산산책로 유천마을회관(중식) - 구산초등학교 - 제말장군의 묘 - 무심정찻집 - 광암항>
2.18일 07시30분 - 14시 30분, 3.22일 9시30분 - 16시30분 (총 14시간 30분)
* 2.18일 오동동에서 마산 아구찜 점심을 먹고 귀가, 3.22일 마산항에서 이어 트레킹
* 2023. 4. 30일 사진 재촬영을 위해 마산자유무역지역에서 마산항까지 다시 방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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