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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남파랑길3. 생태도시, 낙동강 하구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해안경비초소
아미산전망대에서 본 낙동강 하구 모래섬

비석마을에서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토성역까지 내려왔다.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다대포항역으로 이동해서 다시 남파랑길과 만났다. 감천사거리에서 다대포항역까지 남파랑길은 스킵한 셈이었지만 대신 감천문화마을과 비석마을을 본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다대포항 어판장은 생선 하역과 포장작업으로 바빴고, 어시장은 손님 맞을 채비로 정중동 분주해 보였다. 구경삼아 들렸는데도 말을 걸어왔고, 살 생각도 없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겸연쩍어 빠져나왔다. 작은 포구를 돌아나가자 대대포 해변공원이었고, 숲길을 조금 더 들어가니 몰운대유원지였다. 안내도를 보니 낙동정맥이 끝나는 곳이었다. 백두산의 정기가 태백산에서 갈라져 나와 동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흘려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서 용솟음하고 그 기운이 남해 바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맺힌 곳이 몰운대였다. 곳곳에 낙동정맥 종주 기념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을 보니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보였다. 창끝처럼 뾰족하게 뻗은 땅끝까지 갔다. 뭔가 특별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텅 빈 초소가 남쪽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아픔과 모순을 보여주는 상징 같았다. 그런데도 아름다웠고 편안했다. 텅 빈 초소에 기대어 오랫동안 멍하니 바다를 응시하다가 남파랑길로 되돌아왔다.

다대포해수욕장 모래사장에는 여인의 조각상만이 먼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텅 빈 백사장, 기하학적인 모래막이 구조물, 짙은 남색 바다 위 짙은 푸른 하늘... 자연과 인위가 묘하게도 멋진 겨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동경하고 기다리는 소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울 바다의 쓸쓸함이 진하게 전해왔다. 여름 해수욕철에는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니 겨울철과는 전혀 다른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백사장이 상상되기도 했다.

습지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니 낙동강이 보였고 곧바로 남파랑길은 아미산전망대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길로 이어졌다. 눈앞에 놀라운 풍광이 펼쳐졌다. 낙동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곳이었다. 맑고 푸른 물빛이 너무 좋았다. 흘려 내려온 강물과 밀려온 파도가 만들어 놓은 흰빛 모래섬은 거대한 설치 예술품 같았다. 그리고 하구의 넓은 스케일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풍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미산 전망대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보는 황금빛 낙조가 좋다고 하는데, 아쉬움을 담은 채 길을 떠났다.

낙동강 하구 노을 나루길
낙동강 하구뚝 다리에서 본 낙동강
명지 신도시에서 본 일출
낙동강 하구 갈대
명지신도시
명지신도시 앞 모래섬 숲

아미산 산책로를 따라 내려와서 신평장림산업단지로 들어갔다. 이 지역은 부산 도심지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오래전 낙동강변을 따라 공단이 조성되었었고, 아직도 많은 공장이 가동하고 있었다. 2017년 지하철 1호선이 연장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해졌다.

낙동강변에는 노을나루길이라는 이름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마주 불어오는 2월 찬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 바람에 낙동강 물은 잔 물결을 치고 있었다. 멀찌감치 아미산 전망대에서 보는 낙동강과 달리 산책로에서 보는 낙동강은 거칠게 느껴졌다. 남파랑길은 하구언 다리를 건너고 을숙도를 지나고 또 다리를 건너 명지로 이어졌다. 을숙도에서 갈대숲도 보고 철새도래지에서 철새 관찰도 할 수 있겠지 기대를 하고 갔는데, 아쉽게도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방지를 위해 출입을 금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명지에는 새로운 신가지가 조성돼 있었다. 명지하면 대파로 유명했던 곳인데, 대파밭이 아파트와 상가로 상전벽해가 되어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 좀 수수하게 보이는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인근 음식점 거리 복국집에서 활어 밀복지리를 맛있게 먹었다. 부산에 와서 처음으로 부산다운 음식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트레킹을 출발했다. 아침해는 동쪽 강 건너 산마루를 넘어 낙동강에 주홍색 긴 그림자를 비추기 시작했다. 갈대밭도 아침 햇볕을 받아 주홍빛으로 물들어갔다. 낙동강은 신비롭게 하루를 열고 있었다. 멀리 소나무 방풍림 너머 흐릿한 건물들도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렷하게 윤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침은 다소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강바람이 차가웠지만 하루의 시작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 행복했다.

명지신도시는 자연생태가 잘 보전되어 있었고, 지나치지 않고 조화롭게 개발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가까운 곳에 갈대숲이 있고, 철새도래지도 있고,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산책로와 주택가 사이에는 곰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방풍림 너머로 지나치게 높은 빌딩이 눈에 띄지 않는 점이 고마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도시 풍경이 또 있을까 싶었다. 해운대, 수영, 송도 등 전망 좋은 바닷가에는 높은 건물들이 경쟁하듯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은 초 고층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도시계획 컨셉을 환경과 어울리는 생태도시로 잡은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걷는 내내 눈 길을 끄는 것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다 건너 무인도 모래섬에 있는 그림 같은 숲 풍경이었다. 특이하게 숲이 유선형을 하고 있는 점, 그리고 데칼코마니 작품처럼 쌍둥이 모형을 하고 있는 점이 놀랍고 기묘했다. 능력 있는 정원사가 꾸민 것일까.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어 저런 숲을 만든 것일까. 숲은 여러 종류의 나무로 형성된 혼합림은 아니고 한 종류의 나무로 이루어진 순림 같았고, 물가에 잘 자라는 버드나무 종류가 아닌가 싶었다. 잎이 무성한 여름 숲이 아니라 잎이 떨어진 겨울 숲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의 형상에서 그렇게 상상되었다. 숲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햇볕과 바람이다. 햇볕은 숲을 키우고, 바람은 숲을 다듬는다고 한다. 숲 가장자리 나무는 바람의 영향으로 낮게 자라고, 중심부 나무일수록 바람의 영향을 덜 받아 높이 자란다. 바다와 강이 만든 모래섬 위에 태양과 바람이 키우고 다듬은 무인도 숲, 원형대로 잘 보존됐으면 좋겠다.

명지 신도시
대파밭
해안 산책로

 

가덕도
부산신항

남서쪽 방향으로 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궁금해서 인터넷 지도앱으로 찾아보니 가덕도였다. 이제 남파랑길 부산 구간도 거의 종점에 다다랐다. 아스콘 포장을 한 산책로는 걷기 편했고, 철새들이 한가로이 노는 모습도 가까이 보였다. 팔손이, 돈나무, 먼나무 등등 남해안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늘 푸른 상록수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녹산공단을 지나자 컨테이너를 실은 기차, 대형 트럭이 굉음을 내며 무섭게 달리고 있었다. 가덕도로 넘어가는 다리 너머로 부산신항이 모습을 드려냈다. 앞으로 가덕도에 새로운 공항이 들어선다고 하니 이 지역은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물류중심지가 될 것이다.

남파랑길 4코스 일부(13.0km), 남파랑길 5코스(21.9km) (총 34.9km)
<토성역-(지하철) - 다대포항역 - 몰운대- 다대포해수욕장(중식) - 아미산전망대 = 신평역(귀가) - 노을나루길 - 을숙도 - 명지 신도시(박, 석식,조식) - 송정공원>
1.20일 11시-16시, 2.15일 14시-17시, 2.16일 6시-11시 (총 13시간)
* 1.20일 신평역에서 귀가, 2.15일 신평역에서 이어 트레킹